장기표 원장은 22일 오전 1시35분 입원 중이던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숨을 거뒀다. 지난 7월16일 SNS를 통해 '담낭암 말기' 판정을 전한 지 두달여 만이다. 당시 고인은 "당혹스럽긴 했지만 살 만큼 살았고, 할 만큼 했으며, 또 이룰 만큼 이루었으니 아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려 한다"고 담담한 입장을 밝혔다.
마지막으로 SNS 소통을 한 8월11일에도 장 원장은 '우리민족의 대이동-아메리카 인디언은 우리민족이다'(손태성 저)의 서평을 쓰는 등 활발한 지적 행보를 했다. 이때 "그동안 저의 암 질환과 관련해 많은 걱정과 격려를 보내주신 모든 분에게 깊이 감사드린다. 여러분의 격려에 힘입어 암을 극복하도록 열심히 노력하겠다"고 했었다.
고인은 1997년부터 출범시킨 신문명정책연구원을 최근까지 이끌며 장외에서 '186개 국회의원 특권 폐지'를 외쳐왔다. 정당인으로서 마지막 족적도 남겼다. 특권폐지국민운동본부에서 나아간 특권폐지당 창당을 추진하다가 원외정당 가락당과 합류해 '가락특권폐지당'으로 지난 4·10 총선에 후보를 냈다. 원내 입성엔 실패했다.
장 원장은 '실패'에 굴하지 않는 길을 걸어왔다. 국민의힘 소속으로 2021년까지 3차례 대선 출마, 2020년 21대까지 7차례의 총선 출마에서 고배를 마셨다. '기득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1945년 경남 밀양 출생, 1966년 서울대 법대 입학 후 전태일 열사 분신(1970년)을 계기로 학생·노동운동에 뛰어든 그는 1995년에야 졸업했다.
고인은 1970년 전태일 열사 사후 전태일의 어머니인 이소선 여사와 만나 시신을 인수하고 서울대 학생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데 앞장섰다. 서울대생 내란음모사건을 시작으로 민청학련사건, 청계피복노조 사건, 민중당 사건 등으로 9년간 수감 생활하는 등 1970~80년대 수 차례 투옥과 석방을 거듭했고, 12년간 수배 생활을 했다.
'전태일 평전' 집필에도 기여한 그는 2009년 전태일기념사업회 이사장을 지냈다. 고인은 정계에선 1980년대부터 재야운동 핵심으로 떠올라 민주통일국민회의(국민회의), 민주통일민주운동연합(민통련) 창립의 주역이 됐다. 1990년엔 이재오 전 의원·김문수 현 장관과 함께 민중당을 창당하며 진보정당 대중화에도 노력했다.
장 원장은 민주화 운동 보상금을 일체 수령하지 않아 소위 '운동권 정치인'들과도 결을 달리했다. "국민 된 도리, 지식인의 도리"를 강조했다. 유족으로 부인 조무하씨와 딸 하원·보원씨를 뒀다. 장례는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장(葬)으로 치러지며 서울대병원에 빈소가 마련됐다. 발인은 26일, 장지는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이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영원한 재야' 장기표 신문명정책연구원 원장이 담낭암 투병 끝에 22일 오전 1시35분쯤 일산 국립암센터에서 별세했다. 향년 78세. 사진은 2002년 7월 22일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였던 노무현 전 대통령과 고인이 서울 영등포을지구당 개편대회에 참석해 악수하고 있는 모습.<연합뉴스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