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연합(EU)이 오는 4일(현지시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회원국 투표를 진행한다. 중국이 보복 관세를 시사한 만큼 고율 관세가 확정될 경우 유럽 완성차 업체도 타격을 받을 것으로 예상된다. 폭스바겐, 메르세데스-벤츠, BMW 등 유럽 주요 완성차 업체들이 중국에서 판매하는 물량이 많기에 영향은 불가피한 상황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EU 집행위원회는 당초 지난달 25일 회원국 투표를 진행할 방침이었으나, 중국이 막판 협상에 나서자 일정이 이달 4일로 연기됐다. 중국은 전기차 판매가의 하한선을 설정하고, 회원국들에 개별 접촉해 우군을 확보하는 데 애쓰는 등 고율 관세를 피하기 위해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에 볼프강 슈미트 독일 연방총리청장(장관)은 "독일은 EU와 중국이 대화·협상을 통해 전기차 사안을 적절히 해결하기를 강력히 희망하고, 추가 관세는 결코 해결의 길이 아니라고 생각해왔다"며 스페인, 이탈리아에 이어 사실상 중국 편에 서는 입장을 내놨다.
유럽 일부 회원국이 중국에 손을 들어주는 이유는 중국이 보복 관세에 나설 시 유럽 완성차 업체에도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중국은 이미 유럽산 브랜디·돼지고기·유제품에 대해 반덤핑 조사에 나서는 등 보복 관세 부과를 시사하며 유럽을 압박하고 있다. 고율 관세가 확정되면 유럽산 자동차에 대한 직접적인 관세 인상 가능성도 높다. 세계 1위 완성차 시장이자 큰 손님인 중국에서의 판매량 하락은 업계 전체에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유럽 최대 완성차 업체인 폭스바겐은 중국에서 지난해 현지 업체 BYD에게 자리를 내주기 전까지 가장 잘 팔리는 브랜드 지위를 14년간 유지해왔다. 대표적인 유럽 고급차 브랜드인 BMW와 벤츠는 지난해 전체 판매량 중 각각 32%, 36%가량을 중국에서 팔았다.
또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가 적용될 시 값싼 노동력을 제공하는 중국 생산공장의 사용도 제약이 예상된다. 볼보자동차는 중국에서 생산한 전기차의 유럽 판매 시 고율 관세 적용이 예상되기에 생산 기지를 중국에서 벨기에로 옮기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현재 유럽 전통 완성차 업체들은 전기차 전환 과정에서의 비용 절감 문제에 직면해 공장을 폐쇄하고 구조조정을 단행하고 있다. 노동력이 상대적으로 저렴한 중국의 전기차 업체들이 약 3분의 1가량 적은 비용으로 전기차를 생산하고 있기에 이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중국의 생산공장을 활용하거나, 중국 업체와 협력을 맺는 식으로 비용을 절감해야 한다.
스텔란티스는 중국 전기차 업체 립모터와의 합작회사인 립모터 인터내셔널을 통해 유럽에서 저가형 전기차 판매를 시작했다. 중국을 거치지 않고서는 전기차의 가격을 당장 낮추는 것이 어렵기에 관세 인상 조치에도 불구하고 택한 방법이다.
여러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에 유럽 완성차 업계도 중국산 전기차에 대한 고율 관세 적용을 부담스러워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최고경영자(CEO)는 중국산 수입차에 관세를 부과하는 식의 대응은 오히려 "함정"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며 "낮은 비용의 중국 업체에 대응한 서방 업체들의 구조조정을 피하게 할 수도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EU는 내달 4일 회원국 투표를 예고했으나, 현지 언론들은 EU와 중국 측의 협상 진행 경과에 따라 투표일이 다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