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유가가 중동 지역의 갈등 고조로 일제히 상승 전환함에 따라 고유가 시대가 다시 시작될 지 관심이 쏠린다. 키는 이란이 쥐고 있다.
3일 한국석유공사 유가정보시스템 오피넷에 따르면 수입 원유가격 기준인 두바이유는 지난 2일 전일 대비 4.41센트(6.23%) 오른 75.17달러를 기록했다. 75달러대로 올라선 것은 지난 9월 3일 이후 약 한 달 만이다.
영국 브렌트유 역시 이달 1일 배럴당 73.56달러였지만 이달 2일 73.90달러로 올랐다. 브렌트유 가격은 장중 76달러를 상회하기도 했다.
같은 기간 인도분 서부텍사스산원유(WTI)도 69.83달러에서 70.10달러로 70달러대에 진입했다.
국제유가가 일제히 상승세로 돌아선 것은 이란이 이스라엘에 탄소미사일을 약 180발을 발사한 영향이다. 이란이 이스라엘 영토를 직접 공격한 것은 지난 4월에 이어 여섯 달 만이다. 지난 4월에는 공격 72시간 이전에 공격 계획을 통보했지만 이번엔 예고 없는 공격이었다.
여기에 이스라엘도 이날 "대가를 치를 것"이라며 보복을 예고했다. 그간 국제유가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공격으로 확대된 가자전쟁과 레바논 무장단체 헤즈볼라와의 무력 충돌에도 안정적이었지만, 이번 사태로 '제5차 중동전쟁' 가능성이 거론되고 있다.
이에 따라 '유가 100달러'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경고 메시지가 나오고 있다. 호주 리서치업체 MST마퀴의 사울 카보닉 수석에너지분석가는 CNBC방송 인터뷰에서 "이스라엘이 이란 원유 시설을 공격하거나 미국이 더 강력한 제재를 꺼내들 경우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로 치솟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향 안정세를 이어오던 국내 기름값은 적신호가 켜졌다. 이날 기준 전국 주유소의 휘발유 평균가격은 전날보다 0.99원 하락한 리터당 1584.88원, 경유는 1.37원 떨어진 1416.91원이다. 주간 기준으로는 9주 연속 하락세다.
국제유가는 통상 2~3주 시차를 두고 국내 기름값에 반영되는 만큼 소비자 물가에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9월 물가 상승률은 2021년 3월 이후 3년 6개월 만에 1%대에 진입했다. 유가 안정이 가장 큰 이유였는데 이번에 석유류 제품값이 다시 오르면 물가가 다시 출렁일 수 있다. 당초 이달 말 종료되는 유류세 인하 조치도 연장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현행 유류세 인하율은 휘발유 20%, 경유와 LPG(액화석유가스) 부탄은 30%다.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90달러대로 치솟을 경우 소비자 물가 안정을 위해 12번째 유류세 인하 조치를 연장할 수 있는 것이다.
다만 산유국 모임인 '석유수출국기구 플러스'(OPEC+)의 생산량이 중동발 유가 급등 우려를 일부 상쇄시킬 것이라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OPEC+는 이날 회의에서 일부 원유 공급 과잉 징후에도 불구하고 연말 증산 계획을 그대로 유지, 오는 12월부터 1년간 하루 18만 배럴을 증산하기로 했다.
미즈호증권 미국지사의 로버트 야거는 "OPEC+에 580만 배럴의 유휴 생산능력이 있다"면서 "이스라엘이 이란의 석유 인프라를 공격해도 그에 따른 틈을 메울 충분한 원유가 있다"고 평가했다. 그러나 반대로 UBS의 지오반니 스타우노보 애널리스트는 확전 시 실제 OPEC이 증산할 수 있는 양이 추정치를 크게 밑돌 것으로 보면서, 서방 국가들이 전략비축유를 써야 할 가능성을 점치기도 했다.
김태환 에너지경제연구원 석유정책연구실은 "이스라엘과 하마스 전쟁의 전개 양상과 중동 정세 변화, 이란 핵 합의 복원 여부, 미국 대선 결과 등은 석유시장 분위기는 물론 석유수급 밸런스에도 일부 영향을 미치면서 유가 변동성을 심화시킬 수 있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3일 이스라엘의 공습이 남부 베이루트의 한 지역을 타격한 후 연기가 치솟고 있다. 이스라엘은 이날 레바논 국경 근처에서 8명의 지상군이 사망한 이후 베이루트 중심부에서 공격을 감행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