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주] 주식시장 관련 소식이 매일 쏟아지지만 뉴스에서 '개미'의 목소리를 찾기 쉽지 않습니다. 기사를 쓰는 기자도 개인 투자자고, 매일 손실과 이익 사이에서 울고 웃습니다. 일반 투자자보다 많은 현장을 가고 사람을 만나지만 미처 전하지 못했던 바를 철저하게 '개인'의 시각으로 풀어보겠습니다.
[연합뉴스 제공]
기업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뤄지는 기업가치제고계획 공시, 이른바 '밸류업 공시'는 내용보다 '하냐, 마냐'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밸류업 공시를 한 기업은 의지가 있는 곳, 하지 않은 기업은 마치 주주를 무시하는 기업처럼 비춰졌다.
정작 밸류업 공시 내용에 대한 관심은 사라졌다. 공시에 참여한 기업들은 자기자본이익률(ROE), 주가수익비율(PER), 주가순자산비율(PBR) 등 어려운 용어를 써가며 기업가치를 높이겠다고 써놨지만, 가장 중요한 '어떻게'가 빠졌다.
기업도, 투자자도 당장 눈앞의 주가에 더 관심이 높았던 것으로 보인다. 밸류업 공시를 만들어낸 한국거래소도 다르지 않다. 당장 밸류업 지수 특례 요건으로 내세운 기준만 봐도 공시 내용이 아닌 공시 유무만 봤다.
거래소가 정한 밸류업 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기업이더라도, 밸류업 공시만 했다면 지수에 편입시켰다. 이러다 보니 기업들도 내용보다는 빨리 내놓는데 초점을 맞췄다.
현재 공시한 21개 기업의 기업가치제고계획을 읽어보니 다들 지표를 5년 내에 끌어올리겠다고 한다. 연구개발에 투자해 미래 먹거리를 확보하면서 당장의 수익성도 높인다고 한다. 브랜드 마케팅, 신규시장 개척, 인수합병 등 말로는 쉬운 방법들이지만 절대 할 수 없을 것 같은 내용들을 아무렇지 않게 써놨다.
공시를 보면서 기업들의 '급함'이 느껴졌다. 어떤 기업은 공시에 적어 놓은 그 회사의 홈페이지 주소를 틀렸다. 링크를 눌러도 홈페이지에 연결이 되지 않는다. 시장과의 소통을 강조했지만, 스스로 연결고리를 끊은 것처럼 느껴지는 부분이다.
구체적인 실행 방법도 없다. 해외 어느 시장에 진출할 것인지, 현재 개발 중인 신기술은 무엇이고 언제쯤 상용화될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공시 내용만 보면 해당 기업의 수익은 '무조건' 올라갈 것 같다. 이렇게 쉽게 수익성을 개선할 수 있었는데 지금까지 왜 안했는지 궁금할 정도다.
주주환원율도 모두 높인다고 한다. 사실 투자자 입장에서 가장 먼저 살펴볼 만한 내용이다. 기업들이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가장 많이 제시한 것은 '자사주 매입'이다.
자사주를 매입하면 유통주식수가 줄어들고, 주당 가치는 높아진다. 사실 기업이 단기간에 주주환원율을 높이는 방법으로 자사주 매입만 한 것이 없다. 다만 자사주 매입이 실제 소각으로까지 이어질지, 결과적으로 회사의 자본을 줄이는 것이 밸류업이라고 할 수 있는지에 대한 의문은 남는다.
과거부터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을 주주환원이 아닌 경영권 방어수단으로 활용해 온 것에 대한 의심이 남은 것일 수 있다. 또 자사주를 매입만 한 뒤 가지고 있다가 나중에 다시 자사주를 매각하는 방식도 의심해볼 만 하다.
최근 밸류업 공시를 내놓은 롯데칠성, 롯데웰푸드, 롯데렌탈, DB하이텍 등의 주가는 공시 전보다 오히려 낮아졌다. 금융주들이 공시 이후 주가가 오른 것과 비교된다. '오너'가 없는 금융주들은 주주환원을 높이는데 적극적이겠지만, 그렇지 않은 기업들이 공시대로 주주환원을 높일지 확신이 없는 것일 수 있다.
차라리 자사주 매입에 사용할 돈을 주주에게 배당하는 직접적인 방식을 취하는게 바람직하지 않을까 싶지만, 선택은 기업의 몫이고 이에 대한 판단은 투자자가 할 것이다.
밸류업 공시를 내놓은 한 기업의 담당자가 말했다. "다른 기업들도 다 이렇게 하던데요." 밸류업 공시의 현실을 잘 보여준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 똑같은 뻔한 내용 말고 기업의 미래를 고민하는 '진짜 밸류업'을 위한 공시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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