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과 인력 등 자원을 투입해 만들어낸 기사 콘텐츠가 인공지능(AI) 학습에 무단 사용되는 것에 대해 언론사들이 법정다툼을 불사하고 있다. 생성형AI 선두주자 오픈AI에 집중돼온 비난의 화살은 경쟁사들에도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관련 논의가 본격화될 전망이다.
더버지와 테크크런치 등 IT외신들은 글로벌 미디어그룹 뉴스코퍼레이션 산하 다우존스와 뉴욕포스트(NYP)가 AI검색 스타트업 퍼플렉시티AI를 저작권 및 상표권 침해로 21일(현지시간) 뉴욕남부지방법원에 제소했다고 보도했다. 다우존스는 월스트리트저널(WSJ)의 모회사이기도 하다.
뉴스코프 측은 소장에 "퍼블리셔의 저작권 있는 저작물을 대량으로 불법복제하고 해당 저작권자로부터 고객과 중요한 수익을 앗아갔다"고 강조했다. 퍼플렉시티의 AI기반 검색 서비스가 자사의 기사와 분석 및 사설·기고문 등에 대한 '콘텐츠 도둑질'을 저지르고 있다는 주장이다. 지난 7월 먼저 서한을 보내 콘텐츠 계약 등으로 문제를 풀려고 했지만 퍼플렉시티 측이 응답하지 않았다고 한다.
소장에 따르면 퍼플렉시티의 AI '답변 엔진'은 저작권 있는 콘텐츠를 내부 데이터베이스(DB)에 대규모로 복사해 입력하고, 사용자 질문에 대한 답변 생성에 이를 활용한다. AI모델 기반으로 웹스크레이핑 결과를 학습시켜 답하는 과정에서 사용자로 하여금 해당 온라인 기사들에 대한 접근을 건너뛰도록 한다는 점에서 기존 구글 등 검색사이트와도 성격이 다르다는 지적이다.
앞서 포브스, 와이어드 등 여러 매체들도 '구글 대항마'로 떠오르는 퍼플렉시티 AI검색의 유료콘텐츠 우회접근 문제와 함께 이런 콘텐츠 베끼기를 비판해왔다. 오픈AI와 저작권 침해에 대한 소송을 벌이고 있는 뉴욕타임스(NYT)도 최근 퍼플렉시티 상대로 자사 콘텐츠 사용 중단을 요구하는 서한을 보낸 바 있다.
뉴스코프 측은 콘텐츠 도용뿐 아니라 잘못된 정보를 답변으로 제공함으로써 WSJ·NYP 브랜드 가치를 훼손하는 일까지 벌어졌다고 주장한다. 이에 따라 저작권 침해 건수당 15만달러(약 2억원)를 배상하고 무단 수집한 자료를 DB에서 삭제하도록 할 것을 퍼플렉시티 측에 요구했다.
지난해 말 NYT가 오픈AI를 고소하며 포문을 연 이래 언론사들이 저작권을 보호하기 위해 AI기업들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사례가 잇따르고 있다. 시카고트리뷴 등 8개 신문사도 지난 4월부터 오픈AI와 마이크로소프트(MS) 등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 중이며, 6월에는 미국 탐사보도 전문 비영리단체 탐사보도센터(CIR)도 유사한 소송을 제기했다.
오픈AI는 우선 주요 언론사들과 콘텐츠 이용 제휴를 연이어 맺으며 진화에 나서는 모습이다. 이번 소송의 원고인 뉴스코프 측과도 지난 5월 다년간의 수익공유 계약을 맺은 바 있다. 피고인 퍼플렉시티 또한 타임지와 포천지 등 언론사들과 제휴하기도 했다. 다만 이런 형태가 언론 전반의 저작권을 지킬 수 있을지는 지켜볼 일이다.
로버트 톰슨 뉴스코프 최고경영자(CEO)는 성명을 통해 "우리는 AI의 잠재력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무결성과 창의성이 필수적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오픈AI와 같은 원칙적인 기업에 박수를 보낸다"며 "퍼플렉시티는 지적 재산을 남용하는 유일한 AI회사가 아니며, 우리가 강력하고 엄격하게 추적할 유일한AI 회사도 아니다"고 덧붙였다.
국내에서도 AI 학습에 쓰이는 기사 콘텐츠에 대한 보상 문제는 잠재된 불씨다. 한국신문협회는 생성형AI 학습에 뉴스 기사를 활용하는 것은 네이버 등의 기존 콘텐츠 제휴 범위를 넘어서는 것이라는 의견서를 공정거래위원회에 제출한 바 있다.
최근 국회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의 방송통신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증인으로 출석한 김수향 네이버 뉴스서비스총괄 전무는 관련 질문에 대해 "보상 문제는 해외에서도 아직 정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 언론계와 함께 검토해보겠다"고 답했다.
국내 실정에 맞는 논의를 시작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도 제기된다. 최경진 한국인공지능법학회장(가천대 법학 교수)은 "기본적으로 큰 틀에서는 글로벌과 보조를 맞춰야 하겠지만, AI업계와 언론계 모두 미국 등과 환경이나 상황이 같다고 볼 수 없고 법제도 또한 다른 측면이 있다"며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선 AI산업 성장을 저해하지 않으면서 콘텐츠 생산자에 적정한 보상이 주어질 수 있도록 우리 실정에 맞는 방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우선 서로 터놓고 대화하며 조율해나갈 수 있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팽동현기자 dhp@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