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칼럼] 우연의 가치를 높게 새겨라](http://contents.dt.co.kr/images/202411/2024111902102269058001[1].jpg "[박원갑 칼럼] 우연의 가치를 높게 새겨라")
이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이 아닌 우리 자신이 저지른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순식간에 무너진다. 주식을 거래할 때 주문 가격과 거래량을 잘못 입력해 손실을 보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온라인으로 주식을 거래하는 25년 주식 베테랑 김순환(가명·54) 씨는 황당했던 과거 경험담을 털어놓았다. "사려는 회사의 주가가 갑자기 올라가는 거예요. 깜짝 놀랐죠. 무슨 일인가 알아보니 제가 주문 가격과 거래량을 뒤바꿔 입력한 겁니다."
그날은 1만주를 9500원에 매수 주문을 내야 하는데, 9500주를 1만원에 사는 것으로 잘못 입력했다. 이 바람에 주가가 잠시 껑충 뛰었으나 곧바로 내렸다. 결국 그는 주식 평가손실을 봤다. 그는 주식을 오래 거래하다 보면 주문 단가뿐만 아니라 매도를 매수로 잘못 주문해 손실을 보는 경우도 많다고 말했다.
법원 경매에서도 웃지 못할 일들이 수시로 일어난다. 입찰가에 '0'을 하나 더 붙이거나, 평과 제곱미터(㎡)를 혼동해 잘못 기재하는 것이다. 이런 실수로 재매각되는 경매 건수가 전체의 5~6%에 달한다. 이런 실수를 하는 사람들은 초보자만이 아니다. 한 경매 전문가는 "경매 입찰이 빈번할 경우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며 "경매 베테랑들도 간단한 숫자 입력 실수로 손실을 보는 경우가 있다"라고 말했다.
주식이든 부동산이든 재산을 크게 잃는 경우는 일상적인 평범한 상황에서는 드물다. 평소에 잔재주로 약간 벌었다가 어처구니없는 일이나 극단적인 상황이 닥쳤을 때 모든 것을 잃어버린다. 바로 '두꺼운 꼬리'(fat tail) 위험이다. 충분한 위험 통제 범위인 종 모양의 정규분포곡선에서 벗어나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일(두꺼운 꼬리)이 너무 자주 발생한다는 뜻이다.
가령 한국인 성인 남자의 평균 키는 172.5㎝(2020~2021년 기준)인데, 주변에서 작은 사람이라고 해봐야 120㎝ 미만은 거의 없을 것이고, 큰 사람이라고 해도 210㎝를 넘지 않을 것이다. 종 모양의 정규분포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이렇듯 일상적인 삶에서 이례적이고 극단적인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는다(가는 꼬리). 하지만 자산시장에서는 투기적 금융이 넘쳐나면서 정규분포를 벗어나는 극단적인 일이 불규칙적으로 생긴다.
두꺼운 꼬리의 출현은 마치 키 210㎝의 성인 남자들이 길거리에 쏟아져 나온 장면으로 비유할 수 있을 것이다. 고니(오릿과의 물새)는 모두 흰색인 백조라고 생각했던 유럽 사람들이 호주에서 전혀 상상하지 못했던 '검은 백조'를 발견하고 놀란 것처럼 말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미래를 점치기보다는 불확실성을 대비하는 힘이다. 미국 주식 투자의 전설적인 인물인 제시 리버모어는 "태양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따금 날벼락을 맞게 된다"고 말했다. 세상을 살다 보면 예상 밖의 일로 큰 위험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외환위기나 글로벌 금융위기, 미국발 고금리 쇼크처럼 예기치 못한 우연적 사건이 우리의 생사를 가르는 경우가 많다. 앞으로의 부동산시장은 금융 상품화와 투자 자산화 현상에 빠른 정보의 유통 속도까지 겹치면서 극단 값이 언제든지 나타날 수 있다. 더욱이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취임하는 2025년은 글로벌 경제의 변동성이 커질 것으로 보인다. 그래서 내년 주식이나 부동산 시장에서 중요한 것은 불확실성에 대비한 포트폴리오 조정과 마음 가짐이다.
극단 값은 우연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그러니 미래를 함부로 예측하지 말고, 함부로 전망하지 말라. 예측이나 전망대로 세상이 움직이지 않는다. 전문가의 전망에 관심은 갖되 그 전망에 목숨을 걸지 말라. 전망은 그냥 봄날 옷깃에 스치는 바람처럼 지나가는 것이다. 전망보다 우연적 사건이 터졌을 때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를 고민하라. 무엇보다 우연의 가치를 높게 새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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