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케미칼발(發) 유동성 위기설 이후, 롯데지주와 주요 계열사의 주가가 내리막을 걷고 있는 가운데, 롯데가 혼란을 키우는 시그널을 최소화하고 현 상황에 대한 극복 계획을 보다 구체화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투자시장에서는 오너, 신동빈 회장이 문제해결에 대한 의지를 직접 밝혀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4일 금융투자업계와 유통업계에 따르면, 현재 롯데지주 핵심계열사인 롯데케미칼이 2조원에 달하는 회사채에 대한 기한이익상실(EOD) 사유가 발생한 상태다. EOD는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빌려준 자금을 만기 이전에 조기에 상환하도록 하는 것이다.
문제가 된 것은 롯데케미칼이 발행한 공모사채 중 14개 회사채에사 걸려 있는 사채관리계약서 상 '추가특약'이다. 해당 특약은 원리금 지급의무 이행이 완료될 때까지 '3개년 누적 평균 에비타(EBITDA, 법인세 등 차감 전 영업이익)를 이자비용의 5배 이상'으로 유지해야 한다는 의무를 지켜야 한다는 게 골자다. 이자 지급 능력을 계속 체크하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롯데케미칼이 비우호적인 업황 속 3분기 실적이 악화하면서 특약조건 미준수 상태가 됐다. 이 회사 3분기 실적을 보면 에비타는 2977억원, 이자비용 대비 EBITDA의 배율은 0.9배다. 이로 인해 올해 3분기 기준 3개년 누적 평균 EBITDA/이자비용은 4.3배로 떨어졌다. 기한이익 상실 사유가 발생하게 된 것이다.
롯데케미칼의 이자비용 대비 상각전영업이익의 배율은 2021년 27.8배에서 급격히 떨어져지고 있다. 업황 악화 속에 2022년에는 1.2배까지 하락하기도 했다.
이러한 가운데 금융투자 시장에선 롯데가 롯데케미칼의 EOD 사유 발생에 따른 위기를 당장은 넘기겠지만, 그 다음이 문제라는 전망이 나온다.
롯데케미칼 지원으로 버티고 있는 롯데건설이 부동산 침체 속 정상화 기미가 보이지 않는 점, 롯데케미칼의 업황 회복도 기약할 수 없다는 점 등 근본적인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롯데케미칼같은 대기업 계열의 큰 회사가 재무 약정 하나 위반했다고 해서, 사채권자들이 바로 채무불이행·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진 않을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되면 시장 자체가 해리돼 버리기 때문이다"라며 "2조 넘는 사채권 모두에 기한이익상실을 선언하기에는 서로가 부담스러운 상황이기에 조건 변경을 하든지, 한번은 유예를 해주는 식으로 위기를 넘길 가능성이 커 보인다"라고 내다봤다.
그러면서 "문제는 그 이후다. 롯데케미칼이 번 돈을 롯데건설에 쏟아부어왔지만, 롯데건설 정상화가 쉽지 않은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면서 "롯데건설은 부동산 PF(프로젝트파이낸싱) 사업장이 너무 많고, 우발채무가 너무 많은데, 부동산 시장은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고 있어 악순환 탈출이 쉽지 않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지난 상반기 말 기준으로, 롯데건설의 PF우발채무는 4조9000억원에 달한다.
이와 관련해 롯데건설 관계자는 "올3 분기 매출이 전년 동기 대비 12%늘었고 부채비율은 작년 말 대비 18% 줄었으며, 올해 말기준 100%대 부채비율을 예상하는 등 정상화되고 있다"면서 "올 봄 이후엔 케미칼등 계열사 신용보강 없이 두차례 회사채를 성공리에 발행한 바 있다. 계열사 지원이 정상화에 큰 도움이 된 건 맞지만 대부분 이자까지 상환 완료했으며 자체적으로 건전성을 강화해 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앞서 롯데케미칼은 올해 2월 발행된 롯데건설 채권에 보증을 서기도 했다.
롯데건설을 살리기 위한 롯데의 노력이 지주, 핵심 계열사의 여유현금 부족 상태를 초래하지 않게 하겠다는 신뢰성 있는 메시지를 오너, 신동빈 회장이 시장에 직접 전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또 다른 금융투자업계 관계자는 "지금 롯데에 필요한 것은 시장에 혼란을 줄 수 있는 시그널을 최소화하고, 상황 극복을 위한 계획을 최대한 명확히 하는 것"이라며 "담보, 유동자산이 충분하다고 말만 할 게 아니라 부동산 등 비(非)현금성 유동자산이 즉시 현금화 가능한 것인지, 이런 상황에서 제 값을 받고, 제 때 팔 수 있는 것인지에 대한 투명한 설명이 문제해결에 대한 오너 의지와 함께 피력돼야 부정적 이슈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을 수 있을 것"고 말했다.
당장 롯데가 자구책으로 검토 중인 롯데렌탈 매각부터 제 때, 제 값에 팔 수 있을지 미지수라는 의문이 시장에 존재하는 상황이다.
롯데케미칼은 지난달 기준 4조원의 가용 유동성 자금을 확보해 회사채 원리금 상환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한편 롯데는 다음 달 중 사채권자 집회를 개최해 특약 사항을 조정할 예정이다. 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