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란 커지는 '상법 개정'
정부와 국회 모두 상법 개정안에 대한 명확한 결론을 내리지 못하면서 개인 투자자와 기업 모두에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병환 금융위원장은 24일 한 방송에 출연해 "기업 지배구조가 좀 더 투명하게 가야 한다는 데는 동의하지만, 그 방법이 상법 개정이냐 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기업 경영이나 자본시장에 미치는 부정적 영향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연초 상법 개정안이 국내 자본시장의 투명성을 높이는 '밸류업 정책'이라고 평가했던 금융당국이 이제는 시장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해석했다.
그는 "지금 이사가 회사에 대해 충실의무를 다하게 돼 있는데 주주까지 포함하면 의사결정이 굉장히 지연될 수 있다"며 "소송도 많이 일어날 거라는 걱정이 있고 이를 빌미로 외국의 투기자본들이 기업에 과도한 요구를 하거나 경영권을 위협하는 사례가 생기면 기업가치에는 오히려 마이너스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투기자본들이 들어왔다가 단기적으로 이익을 빼먹고 나가는 과정에서 주가에도 영향을 줄 수 있고, 자본시장 측면에서도 상법 개정이 반드시 바람직한 면만 있느냐, 부작용이 더 크지 않느냐에 대한 우려가 있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이같은 상법 개정이 올해 정부 주도로 논의가 시작된 점을 고려하면 정부의 입장 변화가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다.
윤 대통령은 올해 초 증권·파생상품시장 개장식에서 "이사회가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액주주의 이익을 책임있게 반영할 수 있도록 하는 상법 개정 역시 추진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반기까지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이복현 금융감독원장 등도 상법 개정에 대한 필요성을 제시했다. 이 원장은 "상법상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 및 주주의 이익 보호'로 확대하는 방안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필요한 시점이 됐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지난달 국회 국정감사에서 이 원장은 "한국 경영 현실을 보면 배임죄 등 과도하게 처벌받을 우려까지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균형있게 볼지 깊이 고민하고 있다"고 한발 물러섰다.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반대 입장을 견지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더 강화된 상법 개정안을 내놓자 16개 대기업 사장단이 긴급 성명을 내놓기도 했다. 이들은 정부나 여당, 야당이 상법 개정 관련 방향성을 잡지 못하면서 새로운 내용이 나올 때마다 대응 내용을 달리하고 있지만, 상법 개정 자체에 대한 반대는 꾸준히 이어오고 있다.
개인 투자자들의 혼란도 이어지고 있다. 소액주주를 중심으로 기업의 지배구조 개선을 위한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는 커지고 있지만, 쉽사리 결론이 나지 않으면서 시장에 대한 신뢰가 떨어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개인 투자자는 "한국 증시 약세는 이어지고 있고, 국내외 기관 투자자들도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위해 우리나라의 지배구조 문제를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며 "그동안 개인 투자자들을 위해 온다던 정부가 이제는 재계 주장을 그대로 읊고 있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에 대해 이상복 서강대 교수는 "개인 투자자뿐 아니라 기관, 외국인 등 시장 전체에서 신뢰를 잃고 있다"며 "시장 밸류업을 위해 지배구조 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하던 대통령실과 정부, 당국이 눈치를 보다 정치적 결정을 하면서 정책 신뢰도를 스스로 훼손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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