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경애 ICT과학부장
![[안경애 칼럼] AI기본법은 첫발떼기일 뿐이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411/2024112502102269650001[1].jpg "[안경애 칼럼] AI기본법은 첫발떼기일 뿐이다")
1945년 7월 16일 새벽, 인류 최초의 핵실험 '트리니티 실험' 현장에서 거대한 폭발을 지켜보던 제임스 코넌트 하버드대 총장은 실패를 직감했다. 계산한 것보다 훨씬 강력한 폭발이 지구 전체를 집어삼킬 기세였다. 맨해튼 프로젝트의 주역 중 한명인 코넌트 총장은 강력한 섬광 때문에 한동안 눈이 멀었다. 그러나 실험은 성공이었다. 1942년 9월 미국 정부가 세계 최초의 핵폭탄 개발사업 '맨해튼 프로젝트'를 시작한 지 3년도 안됐을 때였다.
과학자들조차 실패의 불안 때문에 숨죽이며 지켜본 이 실험의 성공은 2차 세계대전 종식으로 이어졌다. 단 한번의 실험 후 미국은 실전에 나섰다. 2개 더 만든 핵폭탄을 그해 8월 6일 히로시마, 8월 9일 나가사키에 연이어 투하했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단순한 과학실험이나 군사작전이 아니었다. 20억달러(현재가치 약 30조원)를 투입하고 3000명 넘는 과학자와 13만명 넘는 제조인력이 참여해 3년간 진행한 프로젝트를 계기로 세계 패권이 미국에 집중됐다. 인류 원자력 시대의 개막을 알린 사건이기도 하다.
미국에서 '인공지능(AI)판 맨해튼 프로젝트' 논의가 나오고 있다. 미국 의회의 초당적 자문기구인 미중 경제안보검토위원회(USCC)가 최근 의회에 범용 인공지능(AGI) 개발을 목표로 맨해튼 프로젝트 스타일의 프로젝트를 띄우고 자금을 투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여기에는 인간을 넘어서는 지적 능력을 가진 AGI 패권을 잃으면 안 된다는 절박함이 있다. 위원회는 주요 기술 기업과 장기 보조금 지원계약을 맺고, 국방부가 이 프로젝트를 국가 안보 최고 우선순위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AI는 글로벌 역학관계에 원자력 이상의 변화를 가져올 가능성이 크다. 핵이 '가진 국가'와 '못 가진 국가'로 나뉘었다면, AI는 가장 강한 국가와 나머지 국가로 구분될 것이다. AI가 핵과 다른 또 다른 특징은 한번 승자가 영원히 가지 않을 것이란 점이다. 또 맨해튼 프로젝트에 30조가 들어갔다면 AI 맨해튼 프로젝트는 훨씬 많은 자금이 더 오래 들 것이다.
그러나 포기할 수 없다. 핵은 없어도 생존 가능했지만 AI는 최강자가 모든 것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국방과 안보 역시 AI가 가장 중요한 열쇠이자 자물쇠이다.
오래 끌어온 AI기본법안이 지난 21일 국회 상임위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것은 반가운 일이다. 여야가 핵심 쟁점에 합의하면서 연내 법안 통과가 기대된다. 법안은 '금지 AI' 규정을 제외하는 대신 위험 기반 규제를 도입했다. 사람의 생명, 신체, 건강, 안전, 국가안보, 공공복리 등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AI를 고영향 AI로 분류해 사업자가 신뢰성·안전성 확보 조치를 하는 내용을 담았다. 산업계는 그동안 고영향 AI의 개념과 정의를 명확히 해 규제의 투명성을 확보해 달라고 요청했는데 받아들여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AI 데이터센터 투자, 벤처 지원 등 AI 진흥책 근거도 담겼다. 법 제정을 서둘러서 정부와 기업이 모두 AI 전선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어야 한다.
AI기본법은 AI 전쟁에서 첫발떼기일 뿐이다. 절대강자 미국도 '영끌' 하는 판국에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돈도, AI칩도, 인력도, 전력도 딸리는데 법·제도마저 뒤처지면 희망이 없다. 법 통과 후에는 AI의 '근력'을 좌우할 인프라 확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전력부터 데이터센터, 반도체까지 정부와 기업이 뭉쳐서 불가능을 가능으로 만들어야 한다.
맨해튼 프로젝트는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의 R&D 사업이면서 진행 속도가 상상을 초월했다. 논문에 실린 이론을 토대로 초대형 입자가속기와 대형 우라늄·플루토늄 추출 공장, 원자로를 건설하고 핵폭탄을 만들어 실험을 하기까지, 지금의 과학기술로도 족히 10년 이상 걸릴 일이 3년도 안돼 끝났다. 이후 트루먼 대통령은 "과학자들이 '실험실 전쟁'에서 승리했다. 역사상 조직화된 과학이 이뤄낸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고 말했다. 물러설 곳이 없는 상황에서 수많은 시행착오와 실패를 견뎌가며 끝까지 매달린 결과다. 전쟁 종식 한달 전에 실시한 첫 실험조차 실패의 두려움 속에 이뤄졌다.
AI 경쟁 앞에서 불안해하고 주저할 시간이 없다. 제2의 CDMA, D램 신화를 못 해낼 게 없다.
안경애 ICT과학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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