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유튜브 등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와 사업자 공세에 국내 미디어 산업이 고사 위기에 놓였다. 지난해 방송산업은 10년 만에 역성장했고, 방송광고 매출은 10년 전의 3분의 1로 줄었다. 특히 제작비가 급증하는 가운데 규제는 덩치 큰 OTT를 피해 기존 유료방송사업자만 옭아매고 있다. K-미디어의 고사를 막기 위해 방송광고 규제를 푸는 등 '한국판 DSA'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 유료방송 미증유 위기인데 방송정책은 제자리 = 27일 방송·미디어 업계에 따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토종 OTT가 50% 점유율로 시장을 방어하는 곳은 우리나라와 일본뿐이다. 문제는 글로벌 OTT 사업자의 점유율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날 한국언론학회, 한국방송학회, 한국미디어정책학회가 연 공동 세미나에서 이종관 법무법인 세종 수석전문위원은 "글로벌 사업자의 미디어 시장 재원 잠식은 갈수록 심화할 것"이라며 "방송 시장을 지탱해온 제작 시장이 한계에 달하면서 콘텐츠 시장마저 갈수록 열악해지는 만큼 올해와 내년이 국내 방송 시장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방송콘텐츠 제작 환경의 핵심 문제로는 △콘텐츠 제작 재원 축소 △콘텐츠 제작 투자의 낮은 수익률 △콘텐츠 제작비 부담 급증 △콘텐츠 제작 관련 경직적 규제 등이 꼽힌다. 지상파 방송은 방송광고 매출이 2015년 1조9112억원에서 지난해 9273억원으로 1조 가량 줄었다.
특히 지난해 방송광고 매출은 전년보다 23.3% 감소했다. 올해는 작년보다도 약 10% 감소한 8000억원 초반대를 기록할 전망이다. 10년 전에 지상파방송 3사가 각각 8000억원 이상 광고 매출을 거뒀는데 이제 3사가 합쳐야 겨우 8000억원이 되는 것이다.
제작비 상승 부담도 크다. 넷플릭스 등 글로벌 사업자와 투자여력에 큰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국내 기업들은 힘겨운 투자를 이어가고 있다. 가령 2022년 방영된 ENA의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는 16부작에 총 제작비 200억원이 들었지만, 넷플릭스의 '더글로리'는 같은 16부작에 3배인 600억원을 투입했다. OTT 오리지널 콘텐츠로 인해 제작비가 급등했고 이는 제작 시장의 '거품'으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드라마 제작 편수는 2022년 141편에서 2023년 123편, 2024년 100편, 내년 80편(추정) 수준으로 급감하고 있다.
반면, 광고 등 규제는 국내 사업자에게만 적용되고 있다. 넷플릭스에서 인기몰이를 한 '흑백요리사'의 성공 요인으로는 막대한 제작비와 세트뿐 아니라 문신도 허용되는 문턱 없는 심의, PPL 활용 등이 꼽힌다. 업계에서는 요지부동인 방송정책으로 인해 "10년 전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호소한다. 10년 전부터 규제 완화를 외쳐 왔지만 입법으로 이어지지 않으면서 막다른 길에 몰렸다는 지적한다. 지상파뿐 아니라 SO, 위성방송도 같은 상황이다. 최근 LG헬로비전, KT스카이라이프 등이 '유료방송 위기발' 희망퇴직에 나서면서 위기감이 더 커졌다.
◇ 방통위 "방송 광고·편송 규제 완화 추진할 것"…"'한국판 DSA' 도입해야" 목소리도 = 전문가들은 이를 타개하기 위해 재원, 심의, 유통 등 전반적인 규제를 풀어야 한다고 제언한다. 거대 온라인 플랫폼이 촉발하는 이용자 피해를 막을 수 있도록 '한국판 DSA'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2022년 유럽연합(EU)은 온라인 플랫폼에서의 이용자 보호와 여론 왜곡 문제 해결을 위해 디지털서비스법(DSA)을 도입했다.
권헌영 고려대 교수는 "국내 규제 체계는 새로운 디지털 서비스와 사업자들을 규제하지 못하는 실정"이라며 "글로벌 표준과 규제 동향을 고려한 제도 보완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방통위는 '한국판 DSA' 도입 방안을 연구 중이다. 방송콘텐츠 제작 재원의 안정적 확보를 위해 방송 광고와 편성규제 완화를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권희수 방통위 방송광고정책과장은 "규제 완화와 시청자 보호의 균형이 중요하다"며 "규제 완화 평가와 설계 작업을 구체화하고 사후 규제를 강화하는 방안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