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의 의대 정원 대폭 증원에서 비롯된 갈등으로 인한 의료현장 파행을 수습해야 할 여·야·의·정 협의체가 출범 20일 만에 가동을 멈췄다.
의료계 참여단체인 대한의학회와 KAMC(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가 참여 중단을 선언했다. "국민들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을 안겨드릴 수 있도록 하겠다"던 여당의 약속도 공염불이 될 위기에 처했다.
국민의힘 측 대표자로 참가한 이만희 의원은 1일 국회에서 여야의정 협의체 제4차 전체회의 후 브리핑에서 "의료계가 2025년도 의대 정원 변경을 지속적으로 요청해왔지만 입시가 상당히 진행된 상황을 감안하면 현실적으로 수용하기 참으로 어려운 요구였다"며 "협의체 대표들은 당분간 공식적 회의를 중단하고 휴지기를 갖기로 했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회의 재개에 합의하지 못했다며 "휴지기 동안 정부·여당은 의료계와 대화를 지속해서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의료단체는 "그건 정부·여당의 입장"이라고 일축했다.
이진우 대한의학회장은 참여 중단 선언과 함께 "정부·여당 쪽에서 의대 정원에 대한 확실한 태도변화나 정책 변화를 보여주면 그때 가서 다시 판단할 것"이라고 했다.
의학회와 KAMC는 공동입장에서 "2025년 의대 정원 관련 현실적으로 가능한 방안을 충분히 검토해 구체적인 조정안을 제시해 2026년 증원 유예와 함께 합리적인 추계기구를 신설해 2027년 이후 정원 논의를 진행하자는 제안도 협의체에 전달했다"며, 입시가 진행되는 급박한 상황에도 "정부는 어떤 (정책)유연성도 보이지 않았다"고 비판했다.
이어 "정부·여당은 '의료계가 대화의 장으로 나오지 않는다'고 비난했었지만 정작 협상장으로 나온 의학회와 KAMC 제안을 납득하기 어려운 이유로 거부하며 '정책 변화는 있을 수 없다'며 한치도 물러나지 않았다"고 했다. 더불어민주당 불참에 대해서도 "수수방관"했다며 "정부여당을 비난한 야당이 원한 결과는 뭔가"라고 의구심을 드러냈다.
이 회장과 이종태 KAMC 이사장은 '참여 성과가 무엇인지' 질문에 정부의 내년도 정원 논의 시도와 '의대생 조건부 휴학 승인 철회'를 꼽았다. 한국의학교육평가원 '자율성 확보', 대통령직속 의료개혁특별위원회 '의료계 추가 참여' 일부 공감대 등도 평가했다. 그러나 이들은 "(의정 간) 정말 인식차가 크다"며 신뢰회복이 난망하다고 봤다.
의평원 자율성의 경우 당정 쪽에서도 "고등교육기관 평가인증에 대한 규정과 일부 개정령 변경은 당분간 중지한다"고 밝혔다. 의평원 등이 의대 평가·인증 기준을 바꿀 때 교육부 사전 심의를 거치게 하거나, 의대 불인증 처분 전 '1년 이상 보완기간'을 주는 등 시행령 개 시도에 의료계는 부실의대를 걸러낼 의평원 '무력화'라고 반발해왔다.
의학회와 KAMC 측은 협의체 재개의 '마지노선'을 설정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중요한 건, 12월6일 수능 성적 발표 전까지 정부가 의대 정원에 대해 변화된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면 저희가 '더 이상 참석하지 않겠다'는 결정을 하게 된다"고 통첩했다. 한지아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은 "비공식적인 물밑 협상으론 대화를 이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이진우(오른쪽) 대한의학회 회장과 이종태(왼쪽)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KAMC) 이사장이 1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여·야·의·정 협의체 제4차 전체회의를 마친 뒤, 의료계 단체의 협의체 참여 중단 입장을 발표하고 있다.<연합뉴스 사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