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국회 심사권 보장 안 해
전향적 태도변화로 협조해야"
민생예산안 외면 비난 불가피
우원식 국회의장이 2일 국회 본회의에 더불어민주당이 주도했던 '내년도 예산 감액안'을 상정하지 않았다. 국회법상 예산안을 본회의에 부의·상정해 표결에 부칠 최종 권한은 국회의장에게 있다. 사상 초유로 야당 단독 예산을 상정하는 게 부담스러웠을 것이라는 게 정치권 일각의 관측이다. 민주당이 강행처리한 예산안이 정부의 '세입 예산부수법안'과 함께 본회의에 부의되면 수입·지출 규모가 맞지 않는데다, 예산 감액안에 민생 예산도 대거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우 의장은 이날 예산안을 상정하지 않고 10일까지 여야가 추가로 협의 해달라고 당부했다. 그 이후 국회에서 최상목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나 여야가 극한 대치 중인 내년도 예산안 처리 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우 의장은 최 부총리에게 "오늘은 환영의 말보다는 유감의 뜻을 얘기할 수밖에 없다"며 "기재부와 정부가 국회의 예산 심의에 얼마나 충실하게 임했는지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을 정부에서도 잘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일은 그냥 일어난 것이 아닌, 정부가 국회의 심사권을 제대로 보장하지 않아 생긴 것으로, 의장으로서 정부에 유감을 표한다"며 "정부의 전향적 태도 변화가 필요하다. 적극 협조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예산안 처리를 미룬 이유를 정부가 국회의 심사권을 보장하지 않은 탓으로 돌린 셈이다. 친정인 민주당이 예산 처리를 강행하는 가운데 명분을 찾으려는 발언으로 해석된다. 박찬대 원내대표는 이날 우 의장이 예산안을 본회의에 상정하지 않겠다고 밝히자마자 유감의 뜻을 밝히기도 했다.
민주당이 밀어붙인 예산안이 정부의 '세입 예산부수법안'과 함께 부의되면 수입·지출 규모가 맞지 않은 나라 살림이 짜일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한 것으로도 보인다. 통상 정부는 세수 예측치와 세법 개정에 따라 예상되는 세수 변동, 즉 예상 수입을 고려해 예산안(지출 계획)을 짜서 국회에 제출한다. 그런데 민주당 안대로 본회의를 통과할 경우 수입은 정부가, 지출은 야당이 짠 '미스매치' 세입·세출안이 마련되는 셈이다. 의장실 관계자는 "우 의장이 기재부와 국회 입법조사처 등 유관기관과 함께 야당안을 처리할 경우 '사고'가 날 위험이 없는 지를 따졌다"고 말했다.
무엇보다 감액안에 민생 예산이 대거 포함됐다는 게 가장 큰 이유로 거론된다. 민주당은 대통령실과 검찰, 감사원 예산을 삭감하면서 사이버 성범죄, 조폭, 사기 수사, 폭설·태풍 등 급작스러운 재난에 대비할 정부 예비비, 팬데믹에 대비한 mRNA 백신 개발 예산, 의대 증원의 필수 요건인 전공의 지원 예산 등도 삭감했다. 이런 상황에서 우 의장이 예산을 본 회의에 상정하면 민생을 외면했다는 책임은 고스란히 떠않을 수밖에 없다.
김세희기자 saehee0127@dt.co.kr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왼쪽) 2일 국회 의장실에서 우원식 국회의장과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