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소프트웨어(SW) 산업에 변혁의 시기가 찾아왔다. '하던 대로 계속 하기'에는 시장 환경이 녹록지 않다. 서비스형SW(SaaS) 중심으로 수출산업으로 거듭나기에 앞서 안방부터 지켜야 하는 상황이다.
SW업계에 따르면 현재 국내 SaaS 시장에서 국산SaaS가 차지하는 비중은 30%에 못 미친다. 국내 SaaS 매출 가운데 70% 이상을 외산SaaS가 가져가고 있는 실정이다.
글로벌에서 검증된 선도SW는 IT현장에서 선호될 수밖에 없고, 이는 SaaS 시대에도 마찬가지다. SAP 전사자원관리(ERP), 세일즈포스 고객관계관리(CRM), 워크데이 인적자본관리(HCM), 데이터브릭스·스노우플레이크 데이터 플랫폼 등이 민간 SW시장에서도 고속성장을 이어간다. 디지털전환(DX)에 더해 인공지능(AI) 열풍까지 불면서 국내에도 가속화된 클라우드 전환의 수혜는 외산SaaS들에 먼저 돌아가는 양상이다.
한 SW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SaaS는 일단 표준화돼있고, 또 대체로 더 풍부한 기능을 제공한다. 아직 국내엔 멀티테넌시가 갖춰지지 않아 그때그때 상당부분 시스템통합(SI) 형태의 작업이 요구되는 '무늬만 SaaS'도 적지 않다"며 "국내 SW업체들의 준비도 부족했지만, 그 원인을 제공한 고객들의 인식부터 바뀌어야 한다. SaaS를 도입한다면서 특히 국내업체엔 자사에 맞춘 추가개발을 요구하는 경우가 여전히 비일비재하다"고 꼬집었다.
더욱이 정부의 망분리 규제 개선 정책에 따라 그간 국산SW의 안방이었던 금융·공공 분야의 빗장도 풀리기 시작했다. 금융위원회가 지난 8월 '금융 분야 망분리 개선 로드맵'을 발표한 이후 주요 글로벌 SaaS 기업들은 금융보안원 클라우드서비스제공사(CSP) 안전성 평가를 속속 완료하고 금융부문 공략에 나서고 있다.
또한 공공부문에서도 국가정보원이 지난 9월 발표한 '국가 망 보안 정책 개선 로드맵'에 따라 다층보안체계(MLS)로 내년 초 전환이 예고된 가운데, 최근 마이크로소프트(MS)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클라우드서비스보안인증(CASP) '하'등급(다 그룹용) 인증을 획득하며 글로벌 클라우드 기업들의 공공 클라우드 시장 진출이 공식화됐다. 이들 플랫폼을 기반으로 외산SaaS들의 공공부문 공략도 점차 본격화될 전망이다.
김경민 한국IDC 이사는 "국산SW의 SaaS 전환이 더딘 측면도 있지만, 이와 별개로 절대적인 SW 숫자와 생태계 플랫폼 노출도 외산에 비해 현저히 떨어진다. 기술 경쟁력 문제에 앞서 국산SaaS에 대한 수요부터 부족해 보인다"며 "산업 특화 또는 국내 규제·가이드 맞춤형 제품 개발 및 생성형AI 기술 내장 등을 통해 경쟁력을 높일 수 있다. 특히 외산 오픈모델 사용에는 언어장벽이 존재하므로 이런 이슈를 해결해줄 수 있는 제품도 필요할 것"이라 조언했다.
더 이상 안주할 수 없는 시장 환경으로 변하면서 국내 SW기업들은 SaaS 전환과 함께 경쟁력 향상도 꾀해야 하는 입장이 됐다. 전문가들은 기본적인 품질을 다지면서 사용성이나 특화기능에 초점을 맞출 것을 주문한다. 국내 고객들부터 사로잡아야 글로벌 시장에서도 통할 수 있으므로, SaaS스타트업 육성을 포함해 정부가 SW산업의 SaaS 전환을 위한 마중물을 지속적으로 부어줄 필요가 있다는 견해다.
김형철 소프트웨어정책연구소(SPRi) 소장은 "국내 SW기업들은 자사 솔루션과 SaaS에 대해 둘 다 잘 아는 개발인력이 부족한 상황이고, 대부분 영세하다보니 구독형보다는 한 번에 크게 수익을 얻는 쪽을 선호해온 것도 사실"이라며 "SaaS 전환과 글로벌 수출에 성공하려면 자신만의 무기가 있어야 한다. AI도 단순히 관련 기능을 넣는 수준을 넘어, 기존 서비스나 플랫폼에서 풀지 못한 고객 페인포인트를 발굴·해결함으로써 차별화를 꾀해야 할 것"이라 짚었다.팽동현기자 dhp@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