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기업들이 비상계엄 해제에도 노조 파업에 따른 생산 차질과 환율 등 금융시장 불확실성 확대에 불안한 기색을 내비치고 있다. 외국인들의 자금 이탈로 '코리아 디스카운트'(한국증시 저평가) 심화, 해외 수주 경쟁력 약화, 국가 신용등급 저하와 시위 확산 등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불똥이 튈 우려도 제기된다.
특히 주요 기업들은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을 통해 내년을 준비해나가는 과정에서 예상치 못한 변수를 맞닥뜨려 당황해하는 분위기다. 당장 이렇다 할 피해가 생긴 것은 아니지만, 아직은 '태풍의 눈'일 수 있다는 걱정의 목소리가 나오는 배경이다.
4일 재계에 따르면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 산하 금속노조는 이날 오후 6시에 예정됐던 국회 앞 거제통영고성조선하청지회 문화제를 취소하고, 대신 같은 시각 광화문 광장에서 윤석열 대통령 퇴진 집회에 집중하기로 했다. 금속노조는 이날 오전 11시부터 예정됐던 '한온시스템 매각 3자협약 거부하는 한국타이어 규탄 금속노조 기자회견'도 취소했다.
민주노총은 이날 오전 서울 정동 민주노총 사무실에서 중앙집행위원회 기자회견을 열고 "국민과 함께 국민의 선두에 서서 윤석열 즉각 퇴진을 위해 투쟁해나갈 것"이라며 윤 정권 퇴진 시까지 무기한 총파업에 들어가기로 했다. 실제 파업에 들어갈 경우 자동차를 비롯해 주요 기간 산업의 공장이 셧다운(일시가동 중지)에 들어갈 수 있다.
한국 경제의 불확실성 확대에 외국인이 자금을 빼면서 코리아 디스카운트의 심화도 우려되는 부분이다. 이날 코스피는 전일보다 1.44% 내린 2464.00으로 마감했으며, 삼성전자도 0.93% 하락한 5만3100원에 거래를 마쳤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자신의 X(옛 트위터)에 '한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거냐'는 글에 "충격적(this is shocking)"이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정치 거버넌스뿐 아니라 기업들도 예의주시하고 있다는 것을 방증하는 예다.
국내 기업들도 주요 일정을 취소하는 등 시장 분위기에 대응하는 모습을 보였다, MBK파트너스는 이날 오전 9시30분 여의도 FKI타워에서 예정됐던 '고려아연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가치 회복' 긴급 기자간담회를 잠정 연기했다.
권오갑 HD현대 회장은 이날 오전 7시30분에 긴급 사장단 회의를 소집하고 "각사 사장들은 비상경영상황에 준하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특히 환율 등 재무리스크를 집중 점검하라"고 지시했으며, SK수펙스추구협의회는 오전 10시 최창원 수펙스 의장 주관 긴급 대책회의를 가졌다. LG그룹의 경우 LG전자 등 일부 계열사들이 직원들에 재택근무를 권고했으며, 실제 다수 직원들이 회사를 나오지 않고 재택근무를 택한 것으로 알려졌다.
재계 한 관계자는 "비상계엄이 해제된 만큼 근무 자체가 일상과 크게 달라진 점은 없다"면서도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커진 만큼 이에 대한 영향을 면밀히 모니터링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외에 크고 작은 행사를 앞둔 일부 기업들은 다른 기업들의 행태를 모니터링하면서 '계획대로 추진'과 '잠정 연기'를 놓고 조율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재계 다른 관계자는 "많은 그룹들이 12월 초중반까지 인사를 마무리하고 내년도 계획 등을 새롭게 수립하는 과정 중에 정국이 혼란 속으로 빠져들게 따라 어려웠던 경영 환경이 더욱 앞날을 예측하기가 힘들어졌다"며 "불확실성과 불안 요인이 증폭됨에 따라 국내외 투자 등이 위축되거나 보류될 가능성이 커졌고, 환율변동과 주식시장도 출렁이는 등 금융 환경은 다소 나빠질 것으로 내다보인다"고 우려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국 경제발전에는 정치적 안정이 중요하다"며 "갑작스런 비상계엄과 해제로 인해 한국 경제에 혼란을 가져오고 있다. 정치적 불안정은 국가 신용등급에도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이번 사태로 인해 시위가 확산될 것이 우려된다"며 "한국의 정치적 안정이 외국인 투자를 유입시키고 국가 신용등급을 올릴 수 있다. 정부와 국회는 위기를 기회로 바꿔야 한다"고 밝혔다.
장우진기자 jwj17@dt.co.kr
한국기자협회가 4일 오전 10시 서울 광화문 프레스센터 앞에서 언론 현업단체들과 긴급 기자회견을 갖고 공동회견문을 발표하고 있다. 한국기자협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