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4년만에 대한민국에 '비상계엄'이 선포됐다. 지난 3일 밤 10시 28분부터 다음날인 4일 새벽 4시26분까지 약 6시간 사이의 짧은 비상계엄이었지만 대한민국 전체가 극도의 혼란에 빠졌다.
윤 대통령은 전날(3일) 오후 10시25분경 긴급 대국민담화를 열었다. 별도의 안내 없이 시작된 담화에서 윤 대통령은 약 6분에 걸쳐 준비된 긴급 담화문을 낭독했다. 그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국민 여러분께 호소드린다"며 서두를 열고 "민주당의 입법 독재로 국정은 마비되고 국민들의 한숨은 늘어나고 있다"면서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의 연이은 공무원 탄핵 추진과 예산 삭감을 비판했다.
그러면서 "지금 우리 국회는 범죄자 집단의 소굴이 되었고, 입법 독재를 통해 국가의 사법·행정 시스템을 마비시키고, 자유민주주의 체제의 전복을 기도하고 있다"며 "북한 공산 세력의 위협으로부터 자유대한민국을 수호하고 우리 국민의 자유와 행복을 약탈하고 있는 파렴치한 종북 반국가 세력들을 일거에 척결하고 자유 헌정질서를 지키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한다"고 선언했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발표였다. 여야는 물론 대통령실 다수 참모조차 모르게 극비리에 준비된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비상계엄을 통해 망국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자유 대한민국을 재건하고 지켜낼 것"이라며 "지금까지 패악질을 일삼은 만국의 원흉 반국가 세력을 반드시 척결하겠다"고도 했다.
대국민담화는 그대로 종료됐고, 이후 상황은 급박하게 흘러갔다. 비상계엄 선포에 따라 계엄사령관으로 박안수 육군참모총장(대장)이 임명됐고, 박 총장은 오후 11시부로 대한민국 전역에 '계엄사령부 포고령(제1호)'을 발표했다. 포고령에는 국회·정당 등 모든 정치활동을 금지하고, 파업과 집회행위를 금지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언론과 출판에 대한 계엄사 통제와 의료인 본업 복귀도 계엄령에 포함됐다.
담화 직후 여야는 각각 비상총회를 소집했고, 우원식 국회의장도 오후 11시께 "모든 국회의원은 지금 즉시 국회 본회의장으로 모여달라"고 공지했다. 국회의원들은 국회의사당으로 재빠르게 발걸음을 옮겼다. 계엄을 해제할 수 있는 사실상 유일한 방법인 국회 표결을 위해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국회 이동 중 자신의 SNS 채널을 통해 라이브를 켜고 국민들에게 "국회로 모여 지켜달라"고 호소하기도 했다.
국회로 의원들이 들어가는 과정에서도 혼선이 지속됐다. 일찍 도착한 의원들은 제지 없이 국회로 들어섰지만, 이후에는 경찰이 차벽을 만들고 국회 진입을 금지하면서 대부분의 의원과 보좌진, 취재진들이 담을 넘어 경내로 들어가기도 했다. 민주당과 조국혁신당 등 야당 의원들은 대부분 국회 본청 안 본회의장으로 모여들었으나, 여당 의원들은 의총 장소로 공지된 국민의힘 당사로 향했다.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를 비롯한 일부 친한계 의원들만이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의원들이 모여드는 동시에
계엄군 역시 헬기 등을 타고 국회로 진입했다. 계엄군이 본회의장이 있는 본청으로 다가서면서 여야 보좌진과 당직자들은 정문 앞에서 인간 띠를 만들고 국회 기물 등으로 바리케이트를 쳤다. 계엄군이 창문을 깨며 진입을 시도하자 이에 보좌진들이 소화기를 뿌리는 등 일부 충돌도 발생하기도 했다.
본회의장에 모인 의원 수가 계엄 해제 가결 정족수(재적 의원 과반)를 넘자 우 의장도 본회의장에 모습을 드러냈다. 다만 안건 상정이 늦어지면서 새벽 1시가 넘어서야 계엄 해제 요구안이 가결됐다. 표결에 참여한 의원 190여명이 전원 찬성했다. 더불어민주당에서 154명의 의원이 출석했으며, 국민의힘은 18명만이 표결에 모습을 드러냈다. 조국혁신당 12명, 진보당 2명, 개혁신당, 기본소득당, 사회민주당, 무소속 의원은 각 1명씩 자리했다.
이후 국회 내 있던 군인들은 여야 의원들의 철수 요구에 따라 별다른 물리적 충돌 없이 철수하고, 국회도 오전 2시께 윤 대통령과 국방부 장관에 계엄 해제 요구 통지서를 보냈다. 이후 두 시간 이상 침묵을 지키던 윤 대통령은 4시27분께 생중계를 통해 "저는 어젯밤 11시를 기해 국가의 본질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자유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붕괴시키는 반국가 세력에 맞서 결연한 구국의 의지로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그러나 조금 전 국회의 계엄 해제 요구가 있어 계엄 사무에 투입된 군을 철수시켰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윤 대통령은 "그렇지만 거듭되는 탄핵과 입법 농단, 예산 농단으로 국가의 기능을 마비시키는 무도한 행위는 즉각 중지해 줄 것을 국회에 요청한다"고 말했다. 이후 국무회의가 열렸고 국회가 요구한 계엄 해제안이 의결되면서 6시간에 걸친 비상계엄이 끝났다.전혜인기자 hye@dt.co.kr
4일 새벽 국회 본청에 진입한 군 병력이 국민의힘 당대표실쪽에서 본회의장 으로 진입하려 하자, 국회 직원들이 소화기를 뿌리며 진입을 막고 있다. 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