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아 도시 스토리텔러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라진 `당연함`, 당신의 `숨 값`은 대관절 얼마입니까](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0502102269058002[1].jpg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라진 `당연함`, 당신의 `숨 값`은 대관절 얼마입니까")
실내에서만 자라는 아이들, 새파란 하늘은 사치일까
영화 '토탈 리콜'이 경고한 미래, 공기는 이제 '상품'
환경 불평등의 심화,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해야하나
산 좋고 물 맑다던 곳에서도 해가 지기 시작하면 하늘은 검은 연기와 메스꺼운 냄새로 가득 찬다. 누군가는 논밭에서 썼던 비닐을 태우고, 누군가는 그날의 생활 쓰레기를 당연하게 태운다. 맑은 공기를 찾아온 사람에게는 이보다 더한 날벼락은 없다. 대도시만 몸살을 앓고 있는 것이 아니다.
"굶어 죽지 않고, 맞아 죽지 않고, 곱게 늙어 죽는 것이 꿈입니다." 드라마 '옥씨부인전' 속 노비가 토로한 말이다. '당연함'이 너무도 간절했던 시대가 있었다.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는 또 다른 '당연함'을 갈구한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깊은 숨을 들이쉬는 것, 그것이 우리 시대의 '사치'가 되어가고 있는 것이다.
부모가 탯속 아이의 존재를 느끼는 순간, 고요함과 정적마저 흐르는 가운데 의사가 가장 먼저 하는 말이 있다. "손가락 10개, 발가락 10개입니다. 정상입니다."
그 짧은 순간 '정상'이라는 단어가 얼마나 감격스러운지 부모들은 그리도 좋아한다. 그러나 이 '정상'이라는 상태를 누릴 권리는 점점 위협받고 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사는 일조차 당연하지 않은 세상에서, 우리는 어떤 미래를 그려나가야 할까.
30년 전, 생수를 사 마신다는 것은 낯설 뿐만 아니라 법적으로도 금지된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수돗물이 충분히 안전하다며 생수 판매를 사치로 간주했다. 그러나 1991년 낙동강 페놀 오염 사건은 이 믿음을 송두리째 흔들어놓았다.
국민은 수돗물을 신뢰할 수 없었고, 생수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니라 생존의 문제가 되었다. 1994년 대법원은 깨끗한 물을 선택해 소비할 권리를 인정하며 생수 판매 금지를 무효화했다. 행복추구권으로 말이다. 이는 단순한 정책 변화가 아니었다. 그런 우여곡절 끝에 생수가 일상의 필수품이 된 것이다.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라진 `당연함`, 당신의 `숨 값`은 대관절 얼마입니까](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0502102269058002[2].jpg "[김은아의 도시스카프] 사라진 `당연함`, 당신의 `숨 값`은 대관절 얼마입니까")
이제는 공기마저 사고팔아야 할 상황이 오고 있다. 마스크는 더 이상 낯선 풍경이 아니며, 미세먼지가 심한 날이면 전국의 공기청정기가 쉴 새 없이 돌아간다. 일부 시민들은 이미 산소캔을 휴대하며 숨을 보충하고 있다.
아이들은 체육 시간에도 실내에서 운동을 한다. 맑은 하늘 아래에서 뛰어노는 것이 건강에 해로울 수 있다는 역설적인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놀이터는 텅 비어있고, 실내 놀이터는 예약이 넘쳐난다. 우리의 아이들은 이미 '실내 세대'가 되어가고 있다.
1990년 영화 '토탈 리콜' 속 화성에서, 산소는 생존을 위한 필수품이자 독점기업이 통제하는 자원이었다. 부유층은 값비싼 산소를 구입해 안전한 공간에서 편하게 살아가지만, 가난한 이들은 질 낮은 산소에 의존하며 생명을 위협받는다.
'숨을 쉰다'라는 기본적인 행위가 더 이상 권리가 아닌 상품이 되는 세상. 당시에는 과장이 섞인 공상과학 영화로 여겨졌던 '토탈 리콜' 이야기가 이제 서서히 우리의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이제 도시는 공간만 차별하는 것이 아니라, 공기까지 차별하는 세상으로 치닫고 있다.
인도의 수도 뉴델리는 초미세먼지 농도가 세계보건기구(WHO) 기준의 20배를 초과한 날들이 일상이다. 심각한 대기오염으로 신음하고 있다. 시민들은 마스크로 무장한 채 거리로 나서 깨끗한 공기를 마실 권리를 요구하고 있다. 정부는 차량 운행 제한과 공장 가동 제한 등 임시방편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책은 여전히 요원해 보인다.
도시 전체가 거대한 스모그 구름 아래 질식한다. 부자들은 공기청정 시스템을 갖춘 고급 주택가로 이주하고, 가난한 이들은 오염된 공기 속에서 살아야 한다. 도시는 가진 자와 없는 자를 공기로도 구분 짓게 되었다.
중국의 주요 도시들은 대규모 도시 녹화 사업과 첨단 기술을 활용한 공기 질 개선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다. 하지만 이런 노력은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뿐, 잃어버린 푸른 하늘을 되찾기에는 역부족이다. 도시 곳곳에 설치된 공기정화 타워들은 마치 디스토피아 영화의 한 장면 같다. 이것이 우리가 선택한 미래의 모습일까?
이미 여러 선진국들에서는 탄소 배출량에 세금을 부과하고 있다. 지난 1990년 핀란드는 세계 최초로 탄소세를 도입했고, 스웨덴은 현재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의 탄소세를 부과하고 있다. 기술의 발전은 또 다른 가능성을 열었다. IBM의 환경 정보 통합 플랫폼이 그것이다. 이 플랫폼은 인공지능(AI)을 활용해 대기오염의 원천을 추적하고, 데이터를 통해 적절한 조치를 제안한다.
언젠가는 집집마다 유해가스 계량기가 달리고, 전기세처럼 '공기세'라는 공과금이 추가될지도 모른다. 편의점에서는 다양한 향의 공기를 골라 구매할 수 있는 날이 올지도 모른다. 다양한 디자인의 마스크처럼 '솔향', '민트향', '로즈향' 등등 취향대로 기분대로 말이다. 이것이 우리가 그리던 미래였을까? 공기까지 돈으로 사야 하는 세상이 정말 다가오고 있는 걸까?
'옥씨부인전'의 노비가 꿈꾸던 '정상적인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절실하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고, 건강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환경운동가들만의 구호나 특정 집단의 목소리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지키며 살아가기 위한 기본적 권리다.
우리는 일상에서 이 권리를 서서히 잃어가고 있다.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안전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당연한 일이 아니라 특별한 혜택처럼 느껴진다. 쓰레기를 소각하고, 공장을 가동하고, 기업의 이익을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그리고 그 값으로 '숨'을 지불한다.
영화 '토탈 리콜'의 화성처럼 산소를 사고파는 세상이 도래하기 전에, 우리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일상이 과연 '정상'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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