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1위 전기차 배터리 생산업체인 중국 CATL과 세계 4위 다국적 완성차 업체 스텔란티스가 스페인에 전기차 배터리 합작공장을 세운다. CATL은 유럽의 전기차 폭탄 관세를 피해야 하고, 스텔란티스 역시 경영 돌파구를 함께 할 파트너가 절실한 만큼 양사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로 풀이된다.
10일(현지시간) CNBC 등에 따르면 CATL과 스텔란티스는 50%씩 공동 출자해 스페인 북동부 사라고사 지역에 41억유로(약 6조1683억원) 규모의 LFP(리튬인산철) 배터리 합작공장을 건설할 계획이다. 이 공장은 최대 50GWh 규모로 2026년 말부터 배터리를 생산할 예정이다.
로빈 쩡 CATL 회장은 "우리의 첨단 배터리 기술과 사라고사 현지에서 수십 년간 사업을 운영해온 스텔란티스의 경험이 결합해 성공 스토리를 만들어낼 것"이라며 "목표는 전 세계에서 탄소 제로 기술을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유럽 정복 위한 전략 동맹
이번 합작 투자 결정은 양사가 유럽 시장에서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전략적 선택이다. CATL은 유럽연합(EU)의 전기차 폭탄 관세를 피하기 위해선 유럽 현지에서 직접 배터리를 생산할 수밖에 없다.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C)는 중국산 전기차에 대해 최고 관세율 35.3%를 부과하기로 결정하고 지난달 30일부터 5년 기한으로 적용하고 있다. 기존 일반 관세율 10%에 7.8~35.3%p의 추가 관세가 부과돼 최종 관세율은 17.8∼45.3%가 됐다.
CATL은 이번 공장 건설로 유럽에 총 세 개의 생산거점을 구축하게 됐다. CATL은 독일 튀링겐에 연산 14GWh 규모의 LFP 공장을 가동 중이다. 또 지난해 10월에는 연산 100GWh 규모의 헝가리 공장을 착공해 내년 생산에 돌입할 예정이다.
스텔란티스는 실적 부진을 돌파할 전기차 보급 모델이 필요한 상황이다. 카를로스 타바레스 스텔란티스 CEO(최고경영자)는 이달 1일 중국에서의 판매 부진과 전동화 전환 지연 책임 등의 경영 악화로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사임했다.
스텔란티스와 CATL의 합작 공장에서 생산되는 LFP 배터리는 유럽의 좁은 도로와 골목길 특성을 반영해 소형 전기차와 소형 SUV 등에 중점적으로 탑재될 것으로 예상된다.
스텔란티스는 지프, 시트로엥 등 15개 브랜드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가격 강점이 있는 LFP를 무기로 소형 전기 SUV 라인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다양화할 계획이다.
◇스페인, 교통요지·저렴한 인건비
양사가 생산기지로 선택한 스페인은 모로코와 인접해 있다는 점에서 매력적인 생산기지라는 평가다. CATL은 광물자원이 풍부한 모로코에 100% 양극재 자회사를 설립하는 방안을 검토 중인데 스페인과 모코로는 지브라르탈 해협으로 서로 매우 가깝게 마주하고 있다.
원자재 조달 등 공급망 구축에 이점이 크다는 평가다. 특히 모로코는 유럽시장 접근성 보장 뿐 아니라 전기차 시장의 잠재적 성장 지역인 중동과 아프리카 시장으로의 진출을 위한 전략적 거점 기능까지 가능하다.
여기에 스페인은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건비가 낮아 제조업의 허브로 자리잡은 상황이다. 노조의 강한 영향력과 높은 노동비용 때문에 생산 기지를 해외로 이전하는 독일과 같은 다른 유럽 국가들 대비 비용 효율적인 제조 기반을 구축하기 적합한 위치다.
이에 따라 유럽 시장에서의 한국과 중국 배터리업체 간의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전망된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 삼성SDI, SK온 등 국내 배터리 3사의 EU 전기차 배터리 사용량 점유율은 2021년 70.6%에서 올해 1분기 51%로 줄었다. 반면 중국은 같은 기간 22.6%에서 45%로 상승 추세다.
이항구 자동차융합기술원장은 "유럽에서는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이지 못하는 자동차 제조사에 벌금 부과를 강화할 계획이어서 하이브리드 차량만으로는 규제 기준을 만족시키기 힘들다"며 "전동화로의 전환은 스텔란티스에게 선택이 아닌 필수"라고 말했다.
이어 "스텔란티스는 배터리 기술이 부족한 전동화 후발주자로서 이를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며 "반면 CATL은 높은 유럽 관세를 회피하기 위해 현지 생산을 선택해야 하는 만큼 두 회사의 합작은 상호 이익을 추구하는 자연스러운 결과"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