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AGI시대, PIM·뉴로모픽이 승부수… 유기적 생태계 구축해야"

입력: 2024-12-12 18:12 이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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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서 삼성·현대전자 프로젝트 참여
DMB 수신칩 첫 개발… 국내외 기술이전
DSP·LTE 등 독보적 칩 설계기술 확보
2020년엔 국내 첫 AI반도체 'AB9' 제작
생활용 레이다 RF 등 공공분야 개발도
글로벌 경쟁 위해 기술적 완성도 높여야
韓 제조역량·혁신기술 세계 최정상 수준
단기적 NPU·장기적으론 PIM·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확보 위한 선제적 투자 필요
트럼프 2기 中 견제정책은 또다른 기회
제조역량 극대화… 美와 협업 강화해야
온디바이스 AI시장 등 틈새전략도 주효

[이준기의 D사이언스] "AGI시대, PIM·뉴로모픽이 승부수… 유기적 생태계 구축해야"

구본태 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

이준기의 D사이언스

구본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

"세계 최고 수준의 메모리 반도체와 제조 역량을 살려 우리만의 독자적인 AI반도체 생태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여기에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뉴로모픽 등 차세대 AI반도체 기술 개발에 선제적으로 투자하고,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온디바이스 AI와 범용 인공지능(AGI)을 타깃으로 해야 합니다."

구본태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은 AI시대 기술패권의 한 가운데에 자리한 AI반도체 분야에서 우리나라가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전략으로 독자적인 생태계 구축과 차세대 기술 개발 투자를 꼽았다.

정부는 지난 4월 AI G3(글로벌 3대 국가) 도약을 위한 'AI반도체 이니셔티브'를 발표하고, 2027년까지 9조4000억원을 투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반도체 설계 전문가인 구 본부장은 "우리나라는 세계 최고 반도체 제조 강국으로, 신기술 선점에 유리한 환경을 갖추고 있다"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기업을 다수 보유하고 있어 차세대 AI반도체 개발을 주도할 수 있는 충분한 역량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단기적으로 신경망처리장치(NPU) 설계기술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 PIM 반도체와 뉴로모픽 반도체에 대한 투자를 통해 기술 경쟁에서 우위를 점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해외 의존도가 높은 AI반도체 시장에서 돌파구를 마련하기 위해선 협업적 가치 사슬과 산학연 간 유기적인 공조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구 본부장은 "AI반도체에 대한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국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을 뒷받침하는 공공 수요 발굴이 필요하다"며 "이를 기반으로 AI 모델과 반도체,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서비스를 연계하는 독자적인 AI반도체 생태계 조성을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담=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구본태 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

◇대학원 시절, 반도체 설계와 첫 인연

구 본부장의 어릴 적 꿈은 의사였다. 환경이 열악해 제대로 된 의료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농어촌이나 섬 등에 사는 주민들을 돕고 싶다는 부푼 꿈을 갖고 학창 시절을 보냈다. 하지만 의대 대신 전자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수업 중 전자회로와 통신이론을 접하면서 흥미를 느껴 의사에서 과학자로 진로를 바꿨다.

대학원 시절 지도교수가 삼성전자와 협력해 사운드 음장효과를 구현하기 위한 오디오 칩 개발에 함께 참여하면서 반도체 설계와 첫 인연을 맺었다. 당시 삼성전자는 특정 공간에서 소리가 들리는 방식과 특성을 변화시키는 음장효과를 적용한 텔레비전 개발을 추진하고 있었다.

밤낮을 잊고 기술개발에 매달린 끝에 프로젝트에 성공할 수 있었고, 이후 당시 현대전자와 또다른 공동연구 기회를 갖게 됐다. 현대전자와의 프로젝트를 통해 디지털TV용 MPEG-2 비디오 코덱칩과 위성방송용 디지털 모뎀칩 개발·상용화였다.

그는 "대학원 시절 삼성전자, 현대전자와의 공동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반도체 칩 설계·개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면서 "이를 계기로 1999년 국내 최대 규모의 ICT 종합연구기관인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 입사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ETRI서 반도체 설계 한 우물… 지상파 DMB 개발 '주역'

ETRI에 적을 두면서 그의 반도체 설계 역량은 봄꽃 만개하듯 절정을 이뤘다. 입사 후 처음으로 그에게 맡겨진 임무는 방송 관련 송수신 칩 개발이었다. 모바일 TV용 MPEG4 비디오 코덱 칩 개발에 투입됐다. MPEG-4는 동영상, 오디오, 그래픽, 텍스트 등 다양한 멀티미디어 데이터를 압축하고 전송하기 위해 개발된 국제 표준으로, 우리나라가 기술 주도권을 확보하고 있다.

칩 설계를 맡은 구 본부장은 대학원 시절 경험을 살려 프로젝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뒤이어 '내 손안의 TV 시대'를 개막해 ETRI의 대표 연구성과로 손꼽히는 지상파 DMB에 들어가는 수신 칩 설계·개발 임무를 맡았다.

그는 "DMB 수신 칩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이후 상용화까지 이어져 10개의 국내 기업에 관련 기술을 이전했고, 우리의 지상파 DMB 기술에 큰 관심을 보인 동남아와 중남미 국가에 기술을 수출하기 위해 동분서주했던 기억이 생생하다"고 말했다.

당시 동남아는 지상파 DMB 방송 규격과 인프라를 우리나라와 다른 유럽 방식으로 채택하고 있어 아쉽게도 수출성사까지는 이어지지 않았다.

구 본부장은 지상파 DMB 개발 이후 DSP(디지털 신호처리 프로세서) 칩과 LTE 모뎀 칩 개발을 연이어 성공시키며 독보적인 칩 설계 기술을 확보했다. RF회로 설계팀장을 맡았을 때는 생활용 레이다 RF 및 송수신 기술을 드론 탐지나 실종자 수색, 노인 건강 이상 탐지 등 공공분야에 활용하기 위한 반도체 칩 개발에도 참여했다.

◇추론용 AI반도체 타깃… AGI 실현 위한 저전력·고성능 구현 필요

최근에는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을 맡아 AI시대의 전략적 자산으로 중요성이 커지고 있는 AI반도체 개발에 모든 역량을 쏟고 있다. AI반도체는 기존 CPU와 GPU의 한계를 극복하고, 데이터 병렬 처리와 저전력 성능을 실현하는 차세대 반도체를 뜻한다.

그는 "AI반도체 기술은 아직 초기 단계로, 엔비디아, AMD, 인텔 등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위해 기술적 완성도를 높이고, 시장 요구에 부합하는 솔루션을 제공해야 우리가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며 "DMB칩을 비롯해 이동통신 모뎀칩, 다양한 영상용 멀티미디어 칩, 신호처리를 위한 DSP, RISC 프로세서 등을 개발한 경험과 기술력을 바탕으로 AGI 실현을 위한 저전력·고성능 AI반도체 기술을 선도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TRI는 2017년부터 AI 알고리즘에 최적화된 신경망처리장치(NPU) 연구를 시작해 2020년 국내 최초의 AI반도체인 'AB9'를 개발했고, AI반도체 구동을 위한 SW 플랫폼, 메인 컨트롤러로 RISC-Ⅴ 같은 CPU 관련 기술을 확보하고 있다. 또한 차세대 AI반도체 개발에도 뛰어들어 NPU-HBM을 이종 집적하는 PIM(프로세싱 인 메모리) 반도체와 인간 뇌 구조를 모사한 저전력 뉴로모픽 반도체 연구에 주력하고 있다.

구 본부장은 "AI반도체는 높은 전력 효율을 통해 전력 소비량을 절감할 수 있는 장점을 갖고 있다"며 "데이터센터 등 고성능 서버뿐 아니라 자동차, 스마트폰 등에 탑재되는 디바이스용으로, 학습용에서 추론용으로 시장 비중이 확대될 것이라는 점에서 우리는 추론용 서비스를 타깃으로 경쟁력을 쌓아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NPU·PIM·뉴로모픽 반도체 기술역량 모아야"

그는 우리나라가 세계 최고 수준의 반도체 제조 역량과 혁신적 기술을 무기로 미래 AI반도체 신시장을 선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단기적으로 NPU 설계기술을 확보하고, 장기적으로는 AI반도체에 혁신을 가져올 PIM반도체와 뉴로모픽 반도체 기술 확보를 위한 선제적 투자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또한 AI반도체의 핵심 경쟁력인 설계 역량을 강화하기 위한 고급 인재 양성 및 유치가 시급한 과제라고 했다.

무엇보다 AI반도체 전반에 걸친 협업적 가치사슬과 유기적인 산학연 생태계 구축이 중요하다고 피력했다. 그는 "국내 수요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 개발에 최적화된 AI반도체를 설계·개발·제조하는 가치사슬과 생태계 구축을 통해 경쟁력을 높여가야 한다"면서 "산학연이 연구개발에 협업하고, 엔디비아 등 외산 중심의 국내 AI반도체 시장에서 우리 기업들이 수요를 견인해 시장을 주도하는 생태계로 전환해야 한다"고 피력했다.

현재 국산 AI반도체는 대부분 스타트업 팹리스가 개발하고 있어 엔비디아를 비롯해 AMD, 인텔 등 글로벌 빅테크가 가지고 있는 기술 노하우, 경험, 자본력 등 모든 면에서 취약한 상황이다. 그는 "국내 AI반도체 스타트업들이 제품 개발을 통해 시장 공략에 나서고 있지만, 진입장벽이 여전히 높아 사업화 측면에서 많은 어려움이 있다"며 "공공분야를 중심으로 국산 AI반도체 수요를 발굴해 기업들이 사업을 지속할 수 있는 선순환 구조의 생태계가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구본태 ETRI 지능형반도체연구본부장

◇"트럼프 2기, K-반도체 업계 위기와 기회 공존"

그는 내년 1월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에 따른 국내 반도체 업계에 우려 섞인 전망을 내놨다. 구 본부장은 트럼프 대통령 당선인의 말을 언급하며 "한국과 대만 등 반도체 제조 국가들이 미국 땅에 공장을 짓게 하려면 보조금이라는 당근보다는 관세라는 채찍을 쓸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어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칩스법을 폐기하거나 보조금을 축소할 경우 미국에 반도체 제조 공장을 짓고 있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에 차질이 예상되고, 관세 부과 시 우리 기업의 반도체 수출에 타격을 입을 것"이라고 봤다.

삼성전자는 전체 낸드 플래시메모리 생산량의 28%, SK하이닉스는 전체 D램의 40%를 각각 중국에서 생산하고 있어 만약 미국이 이들 제품을 중국산으로 분류하게 되면 미국 수출 시 관세 폭탄을 맞을 우려가 있다. 또한 중국 모바일과 PC 제조기업들은 한국산 메모리를 상당수 구입해 쓰고 있는데, 이들 제품 역시 미국 관세장벽에 부딪히게 되면 메모리반도체를 포함해 IT제품 수요 침체를 가져올 수 밖에 없다는 게 구 본부장의 생각이다.

다만, 그는 트럼프 2기 행정부의 중국 견제 강화 정책이 오히려 우리에게 반사이익을 가져다 주는 기회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구 본부장은 "트럼프 행정부의 강력한 대중국 견제가 강화될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우리의 강점인 반도체 제조 역량을 앞세워 미국과 협업을 강화한다면 우리 반도체 업계가 반사이익을 얻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초저전력화·온디바이스 AI 노려야… 강력한 기술혁신 필요"

녹록지 않은 반도체 공급망 상황에서 구 본부장은 AI반도체에 대한 선제적 투자와 함께 차별화된 기술 전략, 틈새 시장 공략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AI 확산으로 AI 반도체는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이고, 다양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새로운 시장이 계속적으로 창출될 것"이라며 "전력 소모가 많은 현재의 AI반도체를 초저전력화하고, 다양한 분야에서 특화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엣지형 AI반도체 개발에 역량을 모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데이터센터 시장에 비해 상대적으로 진입 장벽이 낮은 온디바이스 AI 시장을 타깃으로 수요를 넓혀가는 틈새 전략도 추진할 만하다"고 덧붙였다.

AI와 반도체가 국가의 명운을 좌우하는 핵심 기술로 떠오르고 있다. AI패권 경쟁의 중심에는 AI반도체가 자리하고 있다.

이에 대해 구 본부장은 "저전력(뉴로모픽 반도체), 고용량(NM-PIM), 고성능(NPU) 반도체 기술을 확보하고, 이들 반도체를 병렬 분산 배치할 수 있는 '칩렛' 기술을 통해 AGI 시대를 준비해야 한다"며 "이런 담대한 도전을 위해 보다 강력한 기술혁신과 유기적인 산학연 협업을 통해 차세대 AI반도체 개발을 선도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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