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부가 내년도 의대 정원과 관련해 "지금은 변동이 불가능한 상황"이라는 입장을 내놓은 가운데 의료계는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붕괴한 의료현장에 대한 정상화를 촉구하고 나섰다. 의대 증원을 밀어붙여 온 윤석열 대통령이 탄핵소추를 당하고, 전담부처인 보건복지부 장관도 비상계엄 사태에 연루돼 책임론이 나오는 상황에서 윤석열 정부의 '의료개혁'이 기로에 섰다.
전국의과대학교수 비상대책위원회(전의비)는 16일 성명을 내 "의대 증원이 이대로 진행돼 고착화된다면 의학교육과 의료 정상화의 길은 점점 멀어진다"면서 국회와 정부를 향해 현 의료대란 사태를 빠르게 수습하라고 촉구했다. 전의비는 "국회와 정부는 윤석열의 '사이비 의료개혁'을 중지시키고, '의대증원'을 원점에서 재검토해 현 사태를 수습하기를 바란다"며 "의대 입시 선발 절차를 일시 멈춘 후 총장, 의대 학장, 교수들과 함께 논의해 대학별 상황에 맞는 감원 선발 대책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이들은 "내년부터는 올해 휴학한 24학번까지 최소한 기존 정원의 2배나 되는 학생들을 향후 6년간 함께 교육해야 하는 초유의 상황"이라며 "내년도 예과 1학년 학생 상황을 고려하면 선발을 대폭 줄이거나 선발하지 않는 게 올바른 결정"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국정안정협의체도 좋고 어떤 구조든 여야를 떠나 국회와 정부가 대승적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하라"며 "이대로 수수방관하면 의대와 수련병원의 위기는 되돌릴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의료계는 국회와 정부를 비롯해 사법부를 향해서도 의대생의 학습권 등을 고려해 정부의 의대 증원에 제동을 걸어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의료계는 이달 31일 내년도 정시모집 원서 접수를 앞두고 의대 증원 변경 효력 정지를 요구하는 '대학입시계획 변경승인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신속한 결정을 내려달라고 대법원에 촉구했다. 전국 의대들은 지난 13일 내년도 의대 수시모집 합격자 발표를 마무리한 데 이어 정시 모집 원서 접수를 이달 31일부터 내년 1월3일까지 할 예정이다. 2025학년도 의대 모집 정원은 기존 3058명에서 (약 50%)증원된 1509명을 합쳐 총 4567명으로, 이중 수시모집을 통해 합격자 총 3118명이 정해졌다.
의료계에선 내년에 의대 증원에 반대해 휴학한 의대생 3000여명이 복귀하면 신입생 4567명까지 포함해 기존의 두 배가 넘는 7500명 이상이 예과 1학년 수업을 받게 돼 의학 교육 파행을 빚을 것을 우려하고 있다.
전국 의대생과 교수, 전공의 등이 의대 정원 2000명 증원·배분 결정의 효력을 멈춰달라며 정부를 상대로 낸 집행정지 가처분 신청은 현재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경기도 의사회는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의대증원 변경 효력의 정지를 구하는 '대학입시계획 변경승인 효력정지 가처분소송(대법원 2024마7445)'에 대한 신속하고 합리적인 결정이 내려진다면 망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의료를 지킬 수 있는 첫 단추가 될 수 있다"고 했다. 광주시의사회도 "대법원은 의과대학 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해 신속하고 정의로운 결정을 내려달라"고 이날 촉구했다. 광주시의사회는 "대한민국의 의료를 지탱해온 우리는 비상계엄 포고령에 적시된 처단 대상이었다"며 "의대 증원을 포함한 윤석열 정부의 졸속 정책이 국민 건강과 무관하게 통치자의 감정적인 부분에서 추진됐음을 깨닫게 한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잘못된 정책을 되돌리고 의료 발전 방안을 원점에서 고민하기 위한 선결 과제는 대책 없이 진행 중인 내년도 의대 입시의 즉각적인 중단"이라며 "시간이 얼마 나지 않은 만큼 신속한 결정을 촉구한다"고 강조했다.
서울의대·서울대병원 교수 비상대책위원회도 "현재까지 대법원은 위 사건에 관한 결정을 하지 않고 있다"면서 "입시 관련 사건은 법원에서 수능 이전에 결정을 내리는 것이 통상적인 점에 비춰보면 매우 이례적"이라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의대정원 증원은 계엄과 같이 즉흥적으로, 협의 없이 진행됐음은 이미 명백히 밝혀졌고 이번 의대 증원으로 고등교육법령상의 사전(수업 개시 1년 10개월 이전)예고제가 보호하고 있는 법률상 이익인 입시의 안정성과 공정성이 심각하게 무너졌으며 의대생의 학습권 또한 중대하고 심각하게 침해됐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더 이상의 피해를 막기 위해 대법원에서 정의롭고 공정한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주실 것을 절박한 심정으로 다시 한 번 강력하게 촉구한다"고 말했다.
경남도 의사회도 "대법원에 계류 중인 의대 증원 효력정지 가처분 소송에 대한 법원 결정이 수능이 지난 현시점까지 내려지지 않았다"며 "입시 관련 사건은 법원이 수능 이전에 결정 내리는 것이 통상적이다"고 주장했다. 이어 "이런 이례적인 판결 지연은 다분히 정치적인 이유 때문이었을 것으로 사료된다"며 "잘못된 의료정책을 이끈 장본인인 대통령이 탄핵당하면서 의대 정원 증원 또한 어떤 경위로 추진됐는지 추정할 수 있는 상황이 됐다"고 강조했다. 한편 대한의사협회 비상대책위원회는 오는 22일 오후 2시 의협회관에서 의료계 전 직역이 참여하는 전국의사대표자회의를 열기로 했다.
비대위는 "의료·교육 농단을 막기 위해 2025년 의대 신입생 모집을 중단하고 붕괴한 의료현장이 정상화되도록 끝까지 나아가겠다"며 투쟁의 수위를 점차 높이고 있다. 의협 비대위는 의과대학 교수, 봉직의, 개원의, 전공의, 의대생이 참여하는 대표자회의에서 "의대 증원을 비롯한 부당한 의료정책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하고, 전 직역이 함께 행동해 나가는 큰 방향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비대위는 "일방적인 의대 증원과 이후의 불법적 행태, 탄핵 정국 속에서 국민과 의사의 생명 및 안전을 위협한 행태에 대해 강력히 규탄할 것"이라며, "의료농단의 책임자에 대한 처벌을 비롯해 전공의 및 의사를 '처단'하겠다는 계엄포고령 작성자 색출과 처벌을 요구하겠다"고 강조했다.강민성기자 kms@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