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경기 부진에 비상계엄·탄핵정국까지 이어지면서 한국 경제가 탈출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특히 세수 부족에 따른 누적된 재정적자로 정부가 '쓸 돈'마저 바닥을 드러내고 있다. 이에 따라 한국은행의 기준금리 조기 인하카드가 대안으로 거론되고 있다. 이에 이창용 한은 총재는 검토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밝혔다.
17일 정부와 금융권에 따르면 전문가들 사이에서 한은의 기준금리 조기 인하 필요성이 대두되고 있다.
현재의 경기 상황 탓이다. 수출과 내수는 좀처럼 살아나지 않고 있다. 한은은 최근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당초 연 2.4%에서 2.2%로 낮췄다. 이창용 한은 총재는 이날 "올해 4분기 성장률을 (전분기 대비) 0.4% 정도로 보고 올해 연간으로 2.2%를 예상했는데 조금 더 지켜봐야 할 것 같다"면서 "2.0%가 될지 2.1%가 될지는 지켜봐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경제가 예상보다 더 악화할 가능성이 있음을 시시한 것이다.
내년 상황은 더 어렵다. 한은조차 내년 성장률 전망치를 1%대(1.9%)로 내려 잡았다. 현대경제연구원은 1.7%까지 낮아질 것으로 수정 전망했다.
탄핵 정국은 어려운 경기 상황에 기름을 붓고 있다. 정치적 불확실성에 '관세 장벽'을 내세운 트럼프 2기 리스크도 가중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고 한덕수 대통령 권한으로 나섰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과의 연결 고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 흔들리는 리더십에 정부도 우왕좌왕하고 기업의 위기감은 커지고 있다. 연말 송년회까지 취소하는 극도의 불안감 속에 밑바닥 실물경기는 꽁꽁 얼어붙고 있다.
정부는 내년 예산의 75%를 상반기 중 조기집행하기로 했다. 하지만 녹록지 않다. 올해 들어 10월까지 정부 살림살이는 75조7000억원 적자를 기록했다. 이에 따라 역대 최악의 세수결손을 빚었던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적자폭이 23조5000억원 더 커졌다. 10월 말 중앙정부 채무 잔액은 1155조5000억원으로 전월 대비 6조8000억원 증가했다.
결국 경제를 살리기 위해선 금리 정책만 남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조기 금리 인하 가능성과 함께 내년부터 도입되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3단계 연기 등 가계부채 옥죄기 완화 카드도 거론되고 있다. '급한 불'부터 우선 꺼야 한다는 상황 인식에 따른 것이다.
이같은 조기 금리 인하론에 이창용 총재는 일단 반대 의견을 내놓았다.
이 총재는 이날 국회에서 열린 기획재정위원회에 출석해 "이달 중 임시 금융통화위원회(금통위) 회의를 소집해 기준금리를 낮출 가능성은 검토하지 않고 있다"고 답했다. 내년 1월 기준금리 인하 여부에 대해선 "한 달 정도 경제지표를 보고 판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탄핵 사태의 경제 영향에 대해서는 "과거 두 차례 탄핵 사례와 같이 경제 정책이 정치와 분리돼 유지된다면 영향이 제한적일 것"이라며 "다만 국외 환경이 예전과 다른 만큼 국외 환경 변화에 유의해야 한다는 게 우리(한국은행)의 메시지"라고 진단했다.
박홍근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적극적 세출 확대' 필요성 관련 질문에 대해 "현재 통과된 예산안은 경제(성장률)에 마이너스(-) 0.06%포인트(p) 정도 영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지금처럼 하방 위험이 있는 상황은 재정을 조금 더 이용할 근거가 된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 현황에 대해서 이 총재는 "경제 지표를 보면 수출은 큰 변화를 안 보이는데, 카드 사용액이 좀 줄었다"며 "무엇보다 경기 심리 지표가 많이 떨어진 상태로, 경제 정책이 차질없이 진행된다는 측면을 보여줘 경제 심리를 올리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외환위기 걱정은 과하다고 밝혔다. 그는 "외채를 갚지 못하는 게 외환위기인데, 현재 외환에 대해 우리나라는 채권국이고 외환 시장 작용하는 데도 문제가 없다. 외환위기 걱정은 너무 과도하다"고 답했다.
비(非) 정례 환매조건부채권(RP) 매입 등을 통한 '무제한 유동성 공급' 대책의 물가·환율 영향에 대해서도 "무제한 유동성 공급은 시장 안정을 위한 안전판을 만들기 위한 것"이라며 "지금까지 RP 매입을 통해 공급한 유동성은 14조원 정도다. 과거나 평상시와 비교해 유동성이 풀린 것이라고 보기 어렵고 환율이나 물가가 올라가는 것과도 전혀 관계가 없다"고 말했다.주형연기자 jhy@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