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재근 문화평론가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아이돌이 첫 목소리 냈다](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1802102269058002[1].jpg "[하재근의 족집게로 문화집기] 아이돌이 첫 목소리 냈다")
윤일상, 윤종신, 빅마마 신연아와 이지영, 조정치, 루시드폴, R.ef 이성욱, 김창열, 김이나 등 대중음악인 762명도 시민들 속에서 함께 투쟁한다며 탄핵을 요구했다. 시각예술(미술) 분야 작가와 기획자 638명도 긴급 성명을 발표했다. 그밖에 많은 연예인들이 이번 탄핵 요구 집회와 관련해 지지발언을 하거나 직접 집회에 참여했다. 규모면에서 역대 최대일 것으로 보인다.
그 속에서 특히 눈에 띄는 건 아이돌들까지 목소리를 냈다는 점이다. 아이즈원 출신 이채연은 "정치 얘기할 위치가 아니라고? 정치 얘기할 수 있는 위치는 어떤 위치인데? 국민으로서 시민으로서 알아서 할게. 연예인이니까 목소리 내는 것"이라고 했고, 이달의 소녀 출신 루셈블의 혜주는 "오늘 여의도 가는 크루들 정말 멋지고 대단하고 고맙고, 여건이 안 돼서 멀리서 소리 내는 크루들도 멋지다. 아이돌이기 전에 국민이기 때문에 이게 맞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SF9 재윤, 에이티즈 우영, 샤이니 온유, B1A4 공찬, 이달의 소녀 이브, 제로베이스원 박건욱, 스테이씨 등 많은 아이돌들이 이번 집회에 참여한 팬들에게 격려 메시지를 보내거나, 자신의 SNS에 촛불 이모티콘을 남겼다. 아이유, 소녀시대 유리 등은 집회에 참석하는 팬들을 위해 여의도 인근 업소에 선결제를 하기도 했다.
소녀시대 서현은 집회 때 많이 불려진 '다시 만난 세계'의 한 구절을 SNS에 올리며 '소년이 온다' 사진을 첨부했다. 이 작품은 80년 비상계엄령 상황을 배경으로 한 한강의 소설이다. 원더걸스 예은은 직접 집회에 참여했다.
그동안 배우나 중견 스타들이 정치적 발언을 한 적은 있었어도 아이돌이 나선 적은 없었다. 아이돌들은 워낙 첨예한 관심을 받고, 말 한 마디가 논란의 불씨가 될 위치에 있기 때문에 의사표현을 극히 조심한다. 정치적 언행은 절대 금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아이돌들이 이번에 처음으로 정치적 의사표시를 집단적으로 한 것이다.
그럴 정도로 계엄 사태에 많은 국민들이 분노했다는 이야기다. 범국민적인 반발이 터지는 가운데 아이돌 등 연예인도 예외가 아니었다.
아이돌뿐만 아니라 아이돌의 팬덤까지 나섰다. 보통 아이돌 팬덤은 정치 이슈와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이번엔 집회장을 아이돌 응원봉이 수놓을 정도로 수많은 아이돌 팬덤이 나섰다. 1세대부터 4세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전현직 아이돌을 총망라한 거대 팬덤 군단의 집결이었다.
운동권 문화와 거리가 먼 이들이 모였기 때문에 현장에서 운동가요가 아닌 대중가요가 많이 울려 퍼졌다. 소녀시대 '다시 만난 세계'를 필두로 한 아이돌들의 노래, 그리고 그 밖의 히트곡들이 불렸다. 이외에도 많은 젊은이들이 기존의 조직들과 상관이 없는, 자신의 취향을 드러내는 다양한 깃발들을 들고 나서 주목 받기도 했다.
이렇게 평소 정치적 행동을 잘 하지 않던 젊은이들을 비롯한 다양한 국민들이 목소리를 내면서 계엄이 초고속으로 저지됐고 탄핵도 비교적 순조롭게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외신이나 해외 누리꾼들이 경악했다. 처음에 외국인들은 군대가 국회에 진입하는 모습을 보고 군사정변이나 전쟁 등을 떠올리며 충격 받았다. 발전된 나라인 한국에서 제3세계 저개발 국가 같은 모습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한국의 신뢰도가 하락했다.
하지만 수많은 국민들이 자발적으로 나와 계엄군을 막아서고, 평화로운 케이팝 집회로 탄핵을 이끌어내는 모습을 보며 한국에 경탄했다. 한국은 민주시민들이 지키는 선진국이고, 대통령이 잘못된 판단을 해도 국민이 그것을 교정하는 안정된 민주주의 국가라는 인식이 생겨났다.
특히 마치 음악 페스티벌처럼 보이는 케이팝 집회의 모습에 외신이 뜨겁게 반응했다. 한국인을 배워야 한다는 말이 세계 곳곳에서 나왔다. 계엄 사태로 추락한 국격을 아이돌까지 나설 정도의 국민적 열기로 올려 세운 셈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집회가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텐데, 다만 앞으로 다시는 범국민적 분노를 초래할 일이 없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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