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의 중국萬窓] "나라를 다스리는 건 `예악`(禮樂)이 아니라 `법`(法)"… 동양 통치철학의 원조 법가(法家)
입력: 2024-12-22 10:08
강현철 기자
![[강현철의 중국萬窓] "나라를 다스리는 건 `예악`(禮樂)이 아니라 `법`(法)"… 동양 통치철학의 원조 법가(法家)](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2002109969058001[1].jpg "[강현철의 중국萬窓] \"나라를 다스리는 건 `예악`(禮樂)이 아니라 `법`(法)\"… 동양 통치철학의 원조 법가(法家)")
춘추전국시기, 예악이 붕괴되고 도덕이 상실한 시대 유가(儒家)와 묵가(墨家)의 사상은 현실에 맞지 않았다. 이때 사랑(愛·애)만으론 사회질서가 유지되지 않는다며 출현한 게 바로 법가다. 법가는 장주(莊周·장자)는 도깨비에 가까우며, 유가는 도덕, 묵가는 종교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법가는 법(法)·세(勢)·술(術) 셋의 결합에 의한 통치를 추구했다. 난세를 안정시킬 수 있는 새로운 권위, 왕(군주)을 중심으로 한 법의 권위를 세우는 것이 법가의 목표였다. 법은 패도를 주장하는 일종의 통치술이다.
◇'법에 의해 다스린다'… 치국(治國)의 이념 제시
"힘이 강하면 남이 입조(入朝)하고, 힘이 약하면 남에게 입조하게 된다. 그러므로 현명한 군주는 애써 힘을 기른다"며 힘을 숭상한 국가관은 법가의 특징이다. 법가의 사상가인 순자와 상앙은 "나라를 다스리는 데 반드시 옛 것을 본받을 필요가 없다"고 했다.
춘추전국 시대에 활동했던 다양한 사상 학파와 학자를 통칭하는 제자백가(諸子百家)를 맨 처음 분류한 사람은 중국 최초의 역사서인'사기'(史記)를 남긴 역사가 사마천의 아버지인 사마당이다. 그는 도덕가 음양가 유가 묵가 법가 명가 도가 등으로 백가를 분류했다.
법가는 수많은 목숨과 피의 대가로 형성됐다. 국가와 현실을 최우선으로 하는 국가주의다. 사회에 관심을 둔 묵가, 개인이 초점인 장자, 문화가 핵심인 공자와 다르다. 법가의 공헌은 새로운 국가 제도를 설계하고, '법에 의해 다스린다'는 치국의 이념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는 예와 더불어 법으로 백성을 다스려야 한다고 했다. 그의 제자가 이사와 한비다. 그래서 "2000년의 정치는 진나라의 정치요, 2000년의 학문은 순자의 학문이다"는 말도 있다.
법가는 군왕을 위한 계책을 세우는 모사(謀事)의 철학이기도 하다. 공자는 군주의 입장에서 천하를 위해 도모하고 묵자는 천하의 입장에서 천하를 위해 도모한 반면, 법가는 군주의 입장에서 군주를 위해 도모했다. 덕치와 법치는 유가와 법가가 갈리는 갈림길이다.
중국 역사에서 법가가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었던 것은 △현실을 직시하고 △시대에 발을 맞추었으며 △권모와 무력에 의한 천하지배를 추구하고 △기회를 잘 엿봤기 때문이다. 도가는 천도(天道), 묵가는 제도(帝道), 유가는 왕도(王道)를 얘기한 반면 법가는패도(覇道)를 추구했다.
법가는 유·묵·도 삼가의 학설을 개조했다. 묵가에 대해선 인애든 겸애든 애(사랑)란 모두 독약이거나 효력이 없다고 했다. 유가에 대해선 요 임금은 바보이고 순임금은 위선 군자이며, 상나라 탕왕과 주나라 무왕은 난신이라고 주장했다. 한비의 사상은 노장 사상과도 관계가 있다. "군주는 무위해야만 존귀하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무위(無爲)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이다.
법가는 하지만 상당한 비판을 받아온 것이 사실이다. 군왕의 통치를 유지하기 위한 수단일뿐 백성을 위한 게 아니었다는 것이다. 유가 도가 묵가는 '세상의 병을 치료하는 약'이지만 법가는 '사람을 죽이는 칼'이라는 지적이다. 너무 몰인정하고 진실함이 없으며, 극단적인 군주의 권위론 속에서 길을 잃었다는 것이다. 후한의 역사가인 반고는 법가를 평해 "몰인정한 자가 법가의 학문을 하게 되면, 교화함이 없고 인애를 저버리며 오로지 형법에 맡겨 다스리려 함으로, 지친(至親·지극히 친한 사람)에게 해를 입히며, 은혜를 다치게 하고 후한 것을 각박하게 만든다"고 했다.
◇ 군주의 통치술 '양면삼도'(兩面三刀)
법가는 이법위본(以法爲本) 명법자강(明法者强)이라고 해서 법(法)을 근본으로 삼아 부국강병을 추구한다. 법을 밝히는 자는 강해지고, 법에 태만한자는 약해진다고 한다(慢法者弱·만법자약).
법가의 통치술은 '양면삼도'(兩面三刀)로 요약된다. 양면은 두개의 칼자루로 죄인을 처벌하는 형(刑)과 상을 주는 덕(德)이다. 여기서 덕은 도덕과는 무관하다. 삼도는 법(法)·세(勢)·술(術) 세가지다. 법(法)은 군주가 정하는 규범을 뜻하며, 술(術)은 법을 행하는 수단을 뜻한다. 세(勢)는 군주가 신하를 관리하고 주도권을 잡는 방법론을 말한다. 세를 통해 위신을 세우고, 술을 통해 신하를 지배하며, 법을 통해 백성을 통제한다.
구체적으로 법(法)은 군주·신하 간 상하관계에 대한 규정이며, 백성을 다스리는 상과 벌이다. 풍습의 교화, 저울과 도량형 등 평준화도 법에 포함된다. 법가는 "덕(德)으로 형(刑)을 제거하고, 덕을 위주로 하고 형으로 보완한다"는 유학의 예치 사상을 비판한다. 법을 세워 인간이 사사로운 일을 하지 못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세(勢)는 권세와 지위다. 권세(權勢)는 자연적인 것이며, 위세(威勢)는 인위적인 것이다. 백성이 따르는 것은 인정(仁政)이 아니라 세에 있다. 군주는 반드시 세를 점유해야 한다. 술(術)은 신하를 다스리는 기술이다. 이름에 따라 사실을 밝히는 '형명'(刑名)과, 다방면으로 고찰하고 사실을 확인하는 '참오'(參伍)다. 군주는 절대적인 권위를 지키고 법령을 실행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술로써 제어하고 다스려야 한다.
법치의 3원칙은 △상은 후하고 확실히 해 백성이 이롭게 여길 것 △벌은 무겁고 단호해 백성이 두려워하도록 할 것 △법은 통일되고 변함없어 백성들이 잘 알고 있도록 할 것이다.
◇ '동양의 마키아벨리' 법가(法家)의 한비
한비는 법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만이 모든 사람이 나쁜 짓을 하지 못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하늘 아래 가장 중요한 네가지로 군왕의 신체, 군왕의 지위, 군왕의 명망, 군왕의 권세를 꼽았다.
한비(?∼BC 233)는 전국시대 말기 한(韓)나라 출신의 법가 사상가다. 말을 더듬고 눌변이었으나, 재주와 식견이 남다르고 글을 잘 썼다. 젊을 때 순자에게서 배웠는데 동문수학한 이사(李斯)가 한비를 따르지 못했다.
진나라 왕 정(政·후에 시황제)은 한나라를 공격한 끝에 인재로 소문난 한비를 데려왔지만, 이사의 모함에 넘어가 그만 한비에 자살을 명하고 말았다. 진왕은 비록 한비를 죽였지만 그의 저서 '한비자'를 읽고 감동했으며, 상앙의 '법(法)', 신불해(申不害)의 '술(術)', 신도(愼到)의 '세(勢)'를 종합한 한비자의 정치 전략을 수용해 전국을 통일할 수 있었다. 제갈량이 죽으면서 촉나라 황제 유선에게 읽도록 한 책도 '한비자'다.
한비자는 '난언'(難言·말히기의 어려움) 등 55편으로 이뤄져 있다. 노자의 냉정함, 묵가의 공리(功利)와 실용, 순자의 성악설 영향을 받았다. '군주는 허정(虛靜)과 무위(無爲)의 태도로 법도에 의해 통치하고, 인자함으로 대할 것이 아니라 상벌의 권한을 갖고 강한 카리스마를 보여야 한다고 했다. 상을 남발하는 것도, 형벌을 가볍게 하거나 면제해 주는 것도 피해야 할 일이며, 상벌 권한을 신하에게 위임해서도 안된다고 강조했다.
사마천은 한비에 대해 "일을 단호하게 잘 처리했으며 옳고 그름에 대한 판단이 명쾌했지만, 그의 사상은 너무 가혹하고 각박하여 은덕이 부족했다"고 평가했다.
◇법가의 사상가들
법가의 기원은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와 제나라 재상인 관중으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관중 이후 신도(愼到)를 중심으로 한 유파(군주의 권세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세파·勢派), 신불해(申不害)를 중심으로 한 유파(정치적 모략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술파·術派), 상앙(商앙)을 중심으로 한 유파(법에 의한 통치를 주장하는 법파·法派)의 세 유파가 생겼다. 이들 세 유파를 집대성한 게 한비이다. 진시황은 법가의 사상을 채택, 천하 통일에 성공했다. 고대 제국의 형성에 대한 이론적 기초를 제공함으로써 봉건적 지배를 약화시키고 관료제적 성격을 강화해 중앙집권화를 크게 앞당겼다.
상앙은 진(秦)나라의 재상이다. 상나라를 분봉받아 후작이 돼 상앙으로 부른다. 거열형의 창시자였는데, 후일 그 자신이 거열형으로 죽음에 이른다. 5가구를 1통으로 편성, 통내 가호에 연대 책임을 부과해 사회를 통제한 오가작통법(五家作統法)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십오제(什伍制)를 만들었다. 부국강병을 위해 대대적인 변법(變法)을 추진해 귀족의 각종 특권을 폐지하고, 평민이라도 전투에서 뛰어난 공적을 세운 이에게는 관직과 토지를 주었다. 작은 고을을 통합하고 현(縣) 제도를 시행해 권력의 중앙 집중과 농민에 대한 직접적인 통제를 강화했다. 저서로는 '상군서'(商君書) 가 있다.
상앙과 관련해선 유명한 일화가 있다. 어느 날 수도의 남문 앞에 큰 나무를 심어 놓고 '이 나무를 북문으로 옮기는 자에게 10냥을 내리겠다'고 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런 하찮은 일에 10냥을 걸 리 없다고 생각해 누구도 나무를 옮기지 않았다. 이에 상앙은 상금을 50냥으로 올렸다. 그러자 한 건달이 나무를 옮겼고, 그에게 50냥을 내렸다. 이 소문이 퍼져나가자, 사람들이 나라에서 공포한 법에 대해서는 철석같이 믿게 됐다. 여기서 나무 기둥을 옮겨 신뢰를 얻는다는 '이목지신'(移木之信)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이사(李斯)는 초나라 사람이다. 여불위 천거로 진나라 조정에 출사해 시황제를 섬겼다. 유학자였으나 사상적 기반은 법치주의이며, 도량형의 통일, 분서 등 실시해 진시황을 도와 진의 법치주의 기반을 확립하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시황제 사후 환관 조고와 권력 싸움에 패하고서 살해당했다. 주나라의 봉건제를 반대하였고 강력한 군현제의 시행을 주장했다.
한비가 법가 이론의 완성자라면 이사는 법가의 완성자로 평가된다. 한비를 모살한 일이나 유생을 철저하게 탄압한 분서 갱유에 깊게 관여, 후세는 평가절하하지만 진의 중국 통일에 있어 가장 큰 역할을 했다. 사마천도 사기에서 "이사가 길을 잘못 들지 않았다면 그 공적은 주공, 소공에 비견했을 것이다"라고 했다.
신불해(申不害)는 한(韓)나라의 명재상이다. 법가 사상 중 술(術)을 강조하였으며, 한나라의 소후(昭侯) 밑에서 재상으로 나라를 다스렸다. '사기'(史記)에 "신자(申子: 신불해를 높여 부른 말)의 학문은 황로(黃老·황제와 노자)를 교조로 하며, 도가철학을 주축으로 상앙과 순자 및 한비 계열의 법가와 다른 흐름이 혼합된 정치사상에 근거를 두고 형명(刑名·형벌의 종류와 명칭)을 주로 하였다"라는 기록이 있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 저작권자 ⓒ디지털타임스,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