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2시간짜리 계엄` 놓고 벌어지는 소극(笑劇)들](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2102109951660001[1].jpg "[기획]`2시간짜리 계엄` 놓고 벌어지는 소극(笑劇)들")
야당 의원이 계엄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여당 의원들을 '내란공모자'라고 비난하자, 여당 의원이 역시 표결에 참여하지 않은 야당 의원들을 '내란죄 공범'으로 고발하겠다고 나선 것이다. '내란죄 매카시즘' 돌풍에 겁에 질린 여당의원들이 역공을 한 것인데, 그 모습이 자못 진지하다.
'내란죄' 주장은 야당이 윤석열 대통령을 탄핵하기 위해 주장하는 논리다. 그것을 받아 여당이 야당의원들을 반박하는데 이용하는 것을 보면 여당도 그 주장을 수용하는 것이냐는 의문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이 같은 주장은 19일 최형두 국민의힘 의원이 국회에서 거듭 밝혀 더 논란이 됐다. '내란죄 공모' 공격을 받고 있는 상당수 여당 의원들이 야당의 위협을 모면하기 위한 방편으로 이런 논리를 펴고 있다는 것이 새삼 확인됐기 때문이다. 여전히 긴가민가 하는 표정이 없지 않았으나 여당 의원들의 얼굴은 심각했다.
중진을 포함한 적잖은 여당 의원들은 그날 계엄 해제 표결에 참여하지 '못한' 것은 경찰과 국회경비대, 시민들이 운집해 있어 국회로 들어올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소연했다. '나는 계엄 해제를 요구하기 위해 애썼으나 불가항력이었다'는 식이다. 야당으로부터 면죄부를 받으려는 모습이 안쓰럽다.
윤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은 가결됐으나 국민의힘은 지난 7일 1차 탄핵소추안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뜻을 모으고 절대 다수가 그렇게 했다. 지난 14일 2차 탄핵소추안 표결에는 참여했으나 부결 당론은 변하지 않았다. 야당의 소추 근거는 대통령이 '내란죄'를 범했다는 것이다. 국민의힘의 '탄핵 당론 반대'는 거기에 동의하지 않는다고 봐야 한다.
물론 비상계엄 해제 요구와 탄핵 반대를 동일 선상에 놓을 순 없다. 하지만 탄핵에 반대한다면서 내란죄라는 야당 논리에 의탁해 자신들을 변호하는 모습은 이상해보인다. 웃지 않을 수 없다.
두 번째 소극은 때 아닌 국회의장의 부상이다. 이번 계엄 사태로 뜬 사람 중 한 사람이 우원식 국회의장이다. 우리나라 국회의장은 국가 의전서열 2위긴 하지만, 서열만 높지 권력은 회의의 사회를 보는 등 요식적인 것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이번에 그 요식이 '공중부양' 하는데 힘이 된다는 것이 입증됐다.
그가 뜬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한 장의 사진이다. 12·3 계엄의 밤, 그는 한남동 의장 공관에서 있다가 대통령의 계엄 선포 사실을 보고 받고 부랴부랴 국회로 갔다고 한다. 11시 쯤 도착했지만 이미 국회경비대 등이 국회를 통제하고 있었고, 시민들도 많이 모여 있었다. 의장 차량이 정문으로 들어갈 수 없었던 것 같다. 이때 그는 '재치 있게' 월담을 결정했다. 1m 남짓한 국회 담을 넘기로 한 것이다. 이 모습을 의장 경호대장이 찍었다고 한다. 사진은 삽시간에 인터넷에 뿌려졌다. 이 사진으로 우 의장은 비상계엄을 온몸으로 막아낸 1등 공신이 됐다.
그런데 의문이 든다. 우 의장이 국회에 도착한 11시쯤은 특전사 계엄군 200여명이 국회에 진입하기 1시간가량 전이었다. 정문에서도 의원 신분을 밝히면 경내로 들어가도록 했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당시 국회로 들어가지 못한 의원들도 경찰이 막아서가 아니라 시민들이 운집해 있어 길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상황보다 비교적 일찍 국회에 도착한 우 의장이 차에서 내려 의장 신분을 밝히고 정문으로 당당히 걸어들어 갈 수 있었을 텐데, 왜 고생스러운 길을 택했는지 안타깝고 또 궁금하다.
이 '사건'으로 우 의장은 일약 스타가 됐다. 한 여론조사에서는 신뢰할 수 있는 정치인 1위에 올랐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앞선 것이다. 차기 대선후보로 언급되기도 했다. 급기야 외신기자 회견에선 대선 출마 의사가 있냐는 질문까지 받는 데 이르렀다.
이에 힘입은 것인지 우 의장은 지난 19일 헌정사 처음으로 한국은행을 방문해 이창용 총재와 사진을 찍었다. 국회의장이 개인적으로 한국은행 내에 있는 화폐박물관을 방문한 적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공식적으로 중앙은행을 방문한 것은 매우 이례적이다. 중앙은행은 독립적인 기관으로 정부와도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다. 하물며 국회의장과 중앙은행 총재 간에는 무슨 특별한 사무가 없어 보인다.
이밖에도 이번 계엄 사태에는 기이하고 웃음을 자아내는 일들이 적지 않았다. 윤 대통령의 계엄 선포 자체부터가 그렇다. 허술하기 짝이 없는 준비와 우왕좌왕한 계엄군의 행태, 가소롭다고 할 수밖에 없는 동원 병력 규모를 볼 때 해제 길을 터놓고 몇 시간용 계엄을 설계했다는 말로밖엔 설명이 안 된다. 조롱을 받아도 싸다는 의미다.
한동훈이라는 여당 대표의 그날 밤 언행도 소극같다. 집권당의 대표인 그는 계엄 소식을 듣고 국회 본회의장으로 향했다. 의원 신분도 아닌데 국회 본회의장 들어가 있었다. 나중에 알려진 사실이지만 그에게 닥칠지 모르는 위해를 피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는 말이 나온다. 상식적이라면 대통령과 통화 등을 통해 접촉을 시도하면서 계엄 선포의 진상을 파악하고 사태가 악화되는 것을 막는 일을 먼저 했어야 했다. 그는 사태 파악보다는 늘 그래왔듯이 "국민과 함께 (계엄을) 막겠다"고만 했다.
어쨌든 계엄 선포는 윤 대통령이 했고, 그 해제에 가장 공이 큰 사람도 윤 대통령이라는 점은 인정해야 할 것 같다. '12·3 비상계엄'은 50대 중반 이상 세대에게 각인돼 있던 삼엄하고 살벌한 계엄의 통념을 완전히 깨버린 '웃긴' 해프닝이었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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