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내년 반도체 수출액이 올해보다 줄어들 것이란 관측이 고개를 들고 있다. 중국 기업의 메모리 물량 공세로 범용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이 커졌고, 스마트폰·PC 시장 수요도 부진한 영향이다. 업계에선 HBM4(6세대 고대역폭메모리) 공급을 앞당기는 등 인공지능(AI) 메모리 라인업을 강화하는 것이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유일한 돌파구가 될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22일 업계에 따르면 한국반도체산업협회는 내년 한국의 반도체 수출액이 1350억달러(195조원)로, 올해 예상치인 1390억달러 대비 3% 가량 낮아질 것으로 전망했다. 고종완 한국반도체산업협회 전략기획실장은 19일 한국산업연합포럼(WIAF) 반도체산업 전망 발표를 통해 이처럼 밝혔다.
반도체협회가 내년 반도체 수출액이 올해보다 낮을 것으로 예측한 것은 범용 반도체 가격 하락 폭이 기존 예상보다 커졌기 때문이다. 시장조사업체 D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지난달 범용 메모리 DDR4 8Gb 가격은 전달보다 20.6% 내린 1.35달러를 기록했다.
이 제품의 지난 7월 가격은 2.10달러였으나, 4개월 새 36%가 떨어진 것이다. 이에 증권가에선 삼성전자의 내년 예상 영업이익을 기존 25조6000억원에서 16조7000억원으로 대폭 낮춘 사례도 나왔다.
김광진 한화투자증권 연구원은 "여전히 강한 수요가 확인되는 AI 서버 시장과 대조적으로 모바일, PC 등 전통 수요처 부진이 기존 예상 대비 심화됐다"고 말했다. 다만 중국의 저가 공세에도 불구하고 내년 AI 서버 시장과 HBM 제품 수요는 올해보다 견고할 것으로 전망된다. HBM은 중국 업체의 메모리 공급 과잉 영향을 받지 않는 시장이다. 현재 미국 빅테크가 HBM 제품을 공급할 수 있는 메모리 회사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뿐이다.
업계에선 엔비디아가 내년 하반기 출시할 차세대 AI 가속기인 '루빈' 출시에 맞춰 HBM4를 적기 공급하는 것이 최대 화두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 루빈에는 HBM4 메모리가 8개 들어가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 AI 서버 수요가 엔비디아 외 다른 빅테크로 넓어지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HBM 공급처가 구글과 메타 등으로 늘어날 가능성도 있다. 미국 메모리 업체 마이크론은 최근 실적 발표를 통해 내년 HBM 시장이 3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하기도 했다. 이는 마이크론이 지난 9월 제시한 250억달러 대비 대폭 상향된 수치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내년 IT 수요가 크게 늘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삼성전자·SK하이닉스가 선택할 수 있는 실적 방어 수단은 HBM이 유일할 가능성이 크다"며 "엔비디아의 루빈 출시 시기에 맞춰 HBM4 조기 공급을 반드시 성사시켜야 할 필요성이 커졌다"고 말했다.박순원기자 ssun@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