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설' 홍역을 치른 롯데가 2조원대 롯데케미칼 회사채 조기상환 리스크 해소로 한숨 돌리게 됐다.
하지만 기업에 대한 재무개선·안정적 성장에 대한 시장의 요구는 더욱 빡빡해질 것으로 보인다. 일명 '지라시'(정보지) 하나에 재계 6위 기업의 주가가 곤두박질치는 것을 다양한 시장 이해관계자들이 목격했기 때문이다.
이를 의식한 듯 롯데는 롯데렌탈 매각, 헬스케어 청산, 화학 사업개편, 롯데마트 일부 점포 정리와 신규출점 추진 등 '선택과 집중' 전략 실행에 들어갔다. 중장기 전략에 부합하지 않는 사업과 유휴 자산을 정리하고 주력사업을 강화하면서 바이오·인공지능(AI) 등 신사업에 집중적으로 투자하는 게 골자다. 신성장 동력 가운데 낮은 사업성이 지적돼 온 헬스케어의 청산 절차도 밟는다. 그룹 양대축에도 큰 변화가 감지된다. 화학 부문은 긴축에 긴축을 더하고, 유통군에서는 최근 롯데마트 수원 영통점을 성공적으로 매각했고 신규 출점과 기존 매장 재단장에 집중한다.
롯데는 증권사·기관투자자 등과의 소통을 강화해가며 이 같은 재무구조 개선 현황을 시장에 적극 알리는데 집중할 것으로 전망된다.
우선, 롯데케미칼은 약 2조500억원 규모의 14개 공모 회사채에 대한 조기 상환 위험을 성공적으로 해소했다. 그룹의 상징인 6조원 가치의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한 조치 덕분에 사채권자 대다수의 동의를 얻었다.
롯데케미칼이 마련한 신용 보강 조치가 사채권자들의 신뢰를 얻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는 평가다. 롯데월드타워를 담보로 제공하고 신한·KB국민·하나·우리 등 4대은행과 2조5000억원 규모의 회사채 신용보강 계약을 체결한 덕분이다. 또 은행권 보증 외에 사채권자들에게 채권의 잔여 기간과 관계 없이 액면금액의 10bp인 0.1%에 해당하는 금액의 특별이자도 제공하기로 했다.
롯데케미칼은 이번에 단기 유동성 우려를 해소하면서 본격적으로 자산 매각과 투자 전략 조정에 돌입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미 에셋라이트 전략 방향에 따라 저효율 사업의 구조조정과 비핵심 사업의 매각을 추진 중이다. 기초화학 포트폴리오 비중을 2030년까지 60%에서 30% 이하로 줄이고, 첨단소재와 정밀화학·전지소재·수소에너지 등의 사업 비중을 높이는 방향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에는 말레이시아 합성고무 생산법인 롯데우베합성고무(LUSR)를 청산했다. 인도네시아(LCI) 지분으로 6500억원 규모 자금을 조달하는 등 모두 1조3000억원의 자금을 확보할 계획이다.
다만 한국신용평가 측은 "실적 부진과 높은 재무부담으로 인해 신용도 하향압력이 여전히 높은 상황"이라며 "최근 확대된 재무부담을 완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사업구조 효율화, 비핵심자산 정리 등의 실지리적인 성과창출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유통군에선 재무 건전성을 높이기 위해 비효율 점포, 유휴 자산 매각, 부동산 가치 재평가가 진행된다.
롯데쇼핑은 2009년 이후 처음으로 자산 재평가에 들어갔다. 7조6000억원 규모의 토지자산을 재평가해 15년간 오른 실질 가치를 반영하면 자본 증가와 부채비율 감소, 신용도 상승 등 재무 건전성 개선 효과가 나타날 전망이다.
백화점은 코로나19 사태 이후 지속해온 부진 점포 정리 작업이 가속화될 전망이다. 롯데백화점은 작년 기준 매출이 740억원에 불과한 마산점을 올해 폐점했고, 실적이 부진한 부산 센텀시티점도 인수자 찾기에 나섰다. 롯데백화점의 5개점(분당·일산·상인·포항·동래)은 매각 후 재임대(세일앤리스백) 점포로 건물주인 캡스톤자산운용 등이 매각을 추진 중이다.
롯데마트의 경우, 작년 1월 인천터미널점, 올해 9월 수원 영통점을 각각 폐점했다. 롯데마트의 점포 수는 2019년 6월 125개에서 현재 110개로 15개가 문을 닫았다. 실적이 부진한 마트를 판 돈은 신규 출점, 노후점포 리뉴얼 등에 투입한다. 최근 영통점을 870억원에 매각하는 계열이 체결됐다.
롯데쇼핑은 롯데백화점 미아점과 롯데마트 권선점 주차장 등 유휴부지도 매각하고, 사업 주체에도 변화를 준다. 롯데온은 내년 2월 1일부터 모바일상품권·쿠폰 사업을 롯데멤버스에 양도한다. 롯데멤버스는 엘포인트·엘페이 간편결제 서비스 제공 사업자로서 모바일 상품권·쿠폰 사업을 같이 운영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됐다. 롯데온의 온라인 식료품(e그로서리) 사업단 조직은 롯데마트·슈퍼로 넘겼다. 롯데칠성음료는 가정용과 유흥용 주류 영업 조직을 통합했다.
호텔롯데와 부산롯데호텔은 매각자금을 차입금 상환에 투입해 부채비율을 낮추고 글로벌 경쟁력 강화를 위한 재원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또 롯데는 렌터카업체 롯데렌탈을 1조6000억원에 홍콩계 사모펀드 어피너티에쿼티파트너스에 넘기기로 했다. 헬스케어도 사업성이 낮아 접는다. 롯데바이오로직스 의약품 위탁개발생산(CDMO) 사업, 전기차 충전 인프라, 2차전지 소재, 롯데이노베이트의 메타버스 플랫폼 칼리버스 등 4대 신사업을 집중적으로 육성한다.
한편 신동빈 회장은 지난 11일 한국거래소를 찾아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 야마지 히로미 일본거래소(JPX) 대표와 만남을 갖고 롯데그룹 밸류업 방안 등에 대해 논의했다.
김수연·박한나기자 newsnews@dt.co.kr
지난 19일 시그니엘 서울에서 열린 롯데케미칼의 사채권자 집회에서 사채권자가 입장하고 있다. 사진= 박한나기자 park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