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코로나 엔데믹(풍토병으로 굳어진 감염병) 전환으로 팬데믹에 대한 불안은 줄어들었지만, 방역 최전선을 지키고 있는 질병관리청은 넥스트 팬데믹을 경계하며 가능한 방안을 총동원하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당시 국민들을 가장 힘들게 한 PCR 검사 대신 하수 기반 감시체계를 도입하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 하수 농도를 측정해 바이러스 발생 패턴을 확인하는 방법을 표준화함으로써 감염병 추이를 지역별로 빠르게 확인한다는 계획이다.
하수 감염병 감시사업을 맡고 있는 정윤석 질병관리청 고위험병원체분석과장(50)은 "하수감시로 얻은 데이터는 이전에 없던 데이터"라고 강조했다. 이어 "임상 감시는 환자가 증상을 보인 후 감염 여부를 확인하고, 병원체를 채취하는 병원을 중심으로 감시가 시작된다. 결국 환자의 증상이 명확히 나타난 후에야 작동된다"고 말했다.
반면 일상생활 속에서 바이러스가 배출되는 만큼 하수를 감시하면 증상이 나타나기도 전에 감염을 감지할 수 있다. 정 과장은 "코로나19의 경우 평균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까지 5~6일 걸리지만, 하수를 감시하면 증상이 나타나기 2~3일 전부터 바이러스 배출을 파악할 수 있다"면서 "무엇보다 하수 감시는 개인정보 노출 없이 집단 단위로 빠르게 감염 확산을 확인할 수 있는 강점이 있다"고 말했다. 예를 들어, 서울 특정 지역에서 환자가 집단으로 발생하면, 개인이 병원에 방문하지 않아도 감염 징후를 조기에 인지할 수 있다.
이런 방법으로 올여름 코로나19가 확산될 때 하수감시 검출율과 임상감시 데이터를 확인한 결과 거의 일치했다. 정 과장은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 사업에 쓰이는 실시간 중합효소 연쇄반응(리얼타임 PCR) 분석과 디지털 PCR 검사법의 원리에 대해 "코로나19 당시 선별진료소에서 진행한 PCR 분석은 유전자를 증폭하는 방법으로, 상대적 정량법을 사용해 농도를 비교 분석하는데, 디지털 PCR은 절대적 정량법을 이용해 개수를 세는 방식"이라고 설명했다. 정량 곡선을 이용한 추정이 아니라 하수 내 바이러스의 개수를 세어 정확한 농도를 측정하는 방식인 만큼 하수에서 PCR 저해 물질 때문에 오류가 발생하는 문제를 줄일 수 있다.
정 과장은 "이전에 무안공항과 제주공항을 중심으로 코로나19의 해외 유입사례를 분석한 적이 있는데, 항공 하수를 통해 해외에서 유입되는 변이를 파악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질병청 주도로 2023년 4월에 시작된 국가 하수 기반 감염병 감시사업(KOWAS)에는 17개 시도의 19개 보건환경연구원이 협력하고 있다. 주 1회 이상 하수 샘플을 통해 코로나19, 노로바이러스, 인플루엔자 등의 병원체를 검사하고 있다. 내년에는 엠폭스를 포함해 5종을 감시할 계획이다. 정 과장은 "처음 하수 기반 감시를 시도한 유럽은 박멸 사업이 진행중이었던 폴리오 바이러스(Poliovirus)를 대상으로 했다"면서 "이후 코로나19가 발생하자 호흡기 바이러스도 확인 가능하다는 결과를 얻었다"고 말했다.
현재 유럽, 미국뿐 아니라 일본, 태국, 싱가포르 등도 하수감시를 확대하고 있다. 우리나라도 전국 데이터를 빠르게 만들어내며 신뢰성을 인정받고 있다. 정 과장은 "하수감시 방법을 더 신뢰성 있게 표준화하고자 한다"면서 "우리나라의 현재 감시율은 62% 정도인데, 향후 감시율을 75%가량으로 높이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강민성기자 km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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