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
![[박원갑 칼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두 시선](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2402102269058002[1].jpg "[박원갑 칼럼] `젠트리피케이션`에 대한 두 시선")
박해일은 사회자로부터 최근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으로 임대료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이 오르는데 이를 해결할 실질적인 대안이 없느냐는 질문을 받는다. 박해일은 가장 손쉽게 떠올릴 수 있는 '임대료 통제 카드'를 거부한다. 그는 세입자는 임대료를 당연히 내야 할 뿐만 아니라 올리지 말라고 하는 것은 말이 안되며,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상대편 토론자(정치인)는 박해일에게 "눈물로 쫓겨나고 있는 소상공인들의 권리 회복을 위해 비장하게 토론하고 있는 마당에 무슨 생뚱맞은 소리냐"고 핀잔을 준다. 하지만 박해일도 가만있지 않고 재반박에 나선다. "세입자도 시민이고 건물주도 시민이다. 돈이 좀 더 있고 덜 있고 차이일 뿐 모두 보호받아야 할 시민이다. 공존과 상생을 목표로 해야 한다. 어느 쪽 편을 들어야 표를 더 얻을 수 있을까만 생각하니 정치인들이 합리적인 해결책을 못 찾는 것 아니냐."
박해일은 젠트리피케이션의 대안으로 '시민은행 설립'을 제시한다. 장기 저리로 소상공인에게 돈을 빌려줘 임대료를 낼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박해일의 처방은 건물주의 일방적인 횡포에 분노하는 세입자의 밑바닥 정서와는 동떨어져 낯설게 느껴진다. 더욱이 자금을 저리에 빌려주면 임대료가 더 오르는 부메랑도 초래한다. 비싼 임대료를 낼 수 있는 유효수요를 더 만들어내는 역효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박해일의 해법에는 분명 문제가 있어 보이지만 그의 공생 시각은 공감이 간다. 젠트리피케이션을 초래하는 건물주를 무조건 비난만 할 게 아니라 세입자와 상생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는 게 중요하기 때문이다. 소리만 지른다고 답이 나오지 않는다.
요즘 사회적 이슈가 된 젠트리피케이션은 지주계급 또는 신사계급을 뜻하는 '젠트리'(gentry)에서 파생된 용어다. 젠트리 계층이 살 정도로 낙후 지역이 민간 주도로 재개발되어 고급 주거지역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말한다. 1964년 영국의 사회학자 루스 글래스가 처음 사용했다. 이후 젠트리피케이션은 주거지역뿐만 아니라 도심 상업·업무지역의 재생을 포함하는 의미로 넓어졌다.
우리나라에서는 젠트리피케이션이 서구의 주택지역보다 상업지역에서 집중적으로 일어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에 초점을 맞춘다. 사실 서울 홍대나 서촌, 북촌 등 구도심에서 세입자들이 애써 상권을 일구어 놓으면 거대자본 유입으로 임대료가 오르고, 결국 세입자들이 오히려 설 자리를 잃고 쫓겨나는 문제가 생기고 있다. 젠트리피케이션의 유발자, 혹은 약탈적 임대인으로 인식되니 건물주에 대한 국민적 감정이 좋을 리가 없다. 하지만 건물주는 악이고 세입자는 선, 들어온 자와 내쫓긴 자라는 도식적 구조로 언론에서 자주 보도한 영향이 크다. 한 측면만 부각한 프레임 탓이다.
젠트리피케이션이 세입자의 '둥지 내몰림'으로만 협소하게 쓰이는 것은 문제다. 도시재생이라는 젠트리피케이션의 긍정적인 면도 있어서다. 가령 일본 도쿄의 롯폰기힐스나 미드타운, 아자부다이힐스처럼 재정비를 통해 도심을 부흥시키는 발전적인 측면도 함께 고려되어야 한다. 산업구조 변화, 인구 유출 등으로 쇠퇴하는 구도심을 그대로 방치할 순 없다. 과도한 개발 규제는 오히려 구도심을 슬럼화시키고 도시의 경쟁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을지로나 광화문 일대의 도시재정비를 통해 곳곳에 들어선 스마트 빌딩을 가보라. 도심의 화려한 르네상스를 떠올리게 한다. 노후 지역을 고층 오피스로 재개발해서 일자리를 만들고 도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 역시 젠트리피케이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선 젠트리피케이션을 부정적인 측면에만 맞추고 있어 편향적인 시각이 굳어지지 않을까 걱정이다.
핫 플레이스에서 사회문제로 부상되는 상가 젠트리피케이션의 부작용은 최소화하고 긍정 효과는 극대화하는 것이 필요하다. 다행히 공생과 공존은 최근 들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상생 협약을 통해 임대인은 임대료를 적정 수준으로 유지하고, 세입자는 상권의 유지와 지속 성장을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코로나19 사태 여파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에게 임대료를 낮춰준 '착한 건물주'를 대상으로 재산세 감면을 해주는 것도 정책적인 본보기가 될 수 있다.
건물주와 세입자는 사실상 한 몸이다. 건물주는 자본을 대고 세입자는 노동과 기술을 투자하는 동업 관계다. 건물주는 세입자의 부가가치 창출에 공간을 제공하는 사람이다. 장기적으로 한쪽이 이득을 보면 다른 한쪽은 손해를 보는 제로섬 게임이 아닌 플러스 게임 관계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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