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현장칼럼] 삼성종합기술원이 남긴 교훈](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2402102269731001[1].jpg "[현장칼럼] 삼성종합기술원이 남긴 교훈")
설립 이후 반도체, 디스플레이, 배터리, 에너지·환경, 소재, 인공지능 등 첨단산업 분야에서 삼성의 미래 먹거리 창출에 기여하며 혁신과 기술로 변화를 선도해왔다. 하지만 총수와 그룹 차원의 든든한 지원을 받으며 삼성의 미래를 책임지는 혁신 아이콘으로 주목받았던 삼성종합기술원에도 2015년 시련이 닥쳤다. 연구조직과 인력이 축소되고, 연구원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등 대대적인 구조조정에 들어간 것이었다.
긴 호흡을 갖고 중장기 연구를 통해 미래의 삼성을 준비하기 보다는 급변하는 기술 환경과 시장 요구에 신속하게 대응하는 현재의 삼성에 충실한다는 변신이었다. 업계에선 삼성이 미래를 포기하고, 현재를 선택했다고 평가했다. 이 과정에서 삼성 그룹의 간판 연구기관으로 R&D 최일선에서 미래 기술을 연구해온 삼성종합기술원의 연구 역량은 약화됐고, 연구방향도 단기 성과 중심으로 개편되면서 홍역을 겪어야만 했다.
삼성종합기술원의 조직 축소 이후 10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 결과적으로 봤을 때 삼성은 예전의 삼성이 아니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반도체 파운드리 분야에서 대만 TSMC와 격차는 점점 더 벌어졌고, 고대역폭메모리(HBM) 기술 주도권도 경쟁사인 SK하이닉스에 빼앗겨 자존심에 큰 상처를 입었다. 실적 악화로 주가는 5만원대로 주저앉아 지난 8월 이후 5개월 연속 하락세를 기록하고 있으며, 반도체 업황 부진에 트럼프 2기 출범 악재까지 겹쳐 위기감이 더욱 고조되고 있다.
지난 10월에는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이 부진한 실적에 주주들에게 이례적으로 사과했고, 위기 극복을 재도약의 계기로 만들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면서 위기 극복 방안으로 '기술의 근원적 경쟁력 복원'을 제시했다. 삼성 스스로가 기술 경쟁력 약화를 시인한 것이었다.
비단 삼성이라는 특정 기업의 일로 치부해선 안되는 상황에 대한민국은 처해 있다. 대통령 스스로 자처한 비상계엄을 시작으로 대통령에 대한 탄핵소추안 가결, 직무정지 그리고 탄핵 판결을 앞둔 일련의 상황에서 세계 10위 경제대국 대한민국은 끝이 보이지 않는 터널에 들어온 듯 하다. 대내적으로는 탄핵 소용돌이에 정치적 불안과 리스크가 커지고, 대외적으로 미중 기술패권 격화, 글로벌 공급망 재편,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등 우리를 둘러싼 경제안보 불확실성이 가중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대한민국의 미래는 뒷전으로 밀린 채 혁신과 성장의 엔진이 서서히 식어가고 있다. 대통령의 말 한 마디에 맥락 없이 깎여나간 정부 R&D 예산으로 과학기술인의 한숨은 깊어졌고, 우수한 젊은 이공계 인재들은 짐을 싸고 연구현장을 속속 떠나고 있다.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이공계 진학 기피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해외에 나가 있는 핵심 인재들은 한국에 돌아오길 꺼린다.
밝고 희망찬 미래로 나아가기 위해 잠시라도 머뭇거려선 뒤처질 수 밖에 없는 냉혹한 현실을 우리는 마주하고 있다. 만약 10년 전 삼성이 미래를 내다보고 도전적·혁신적 R&D에 투자를 지속하고, 기술혁신에 그룹 역량을 더 집중했다면 어땠을까.
삼성은 분명 지금보다 더 나은 기업이자 혁신의 엔진이 꺼지지 않는 기업으로 발돋움했을 것이다. 비록 대한민국은 탄핵정국에 크게 요동치고 있지만, 미래를 준비하는 일에 더 많은 에너지와 역량을 쏟아야 할 때다. 미래는 예측하는 게 아니라 철저한 준비를 통해 만들어가는 지난한 여정이기 때문이다. 이준기 ICT과학부 부장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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