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호황기에 건설사와 부동산신탁사를 각각 인수한 유진그룹과 패션회사 LF가 부동산 경기 불황의 장기화로 고심이 깊어지고 있다.
유진은 계열사인 동양의 도급사업 부문을 축소하며 사업 재편에 나섰다. LF도 코람코자산신탁을 3인 각자대표 체제로 개편하고, LF 최고경영진이 직접 코람코 경영에 나서는 등 자구책을 마련하고 있다.
25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동양은 최근 단순 도급사업을 축소하고 자체 개발사업과 고부가가치 개발사업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했다.
동양이 시공 관련 부문 인력에 대한 구조조정에 나선 것으로 알려지면서 2016년 유진에 인수된 이후 적자행진을 이어간 동양의 건설부문이 정리 수순에 돌입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동양 건설부문은 2016년 93억원 영업손실을 기록한 데 이어 2017년에도 122억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이후 2018년 흑자전환 한 뒤 2019년에도 이익을 거두긴 했지만, 2020년에 다시 적자로 돌아섰다.
부동산 경기가 좋았던 2021년에도 큰 수익을 올리지 못했던 동양은 지난해 부동산 경기 침체 장기화에 또 한번 적자를 기록하는 등 좀처럼 실적을 개선하지 못하고 있다. 올해는 한 물류센터 사업장에서 책임준공 기한을 지키지 못하며 시행사의 1800억원 채무를 떠안는 등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위기에 직접적인 피해를 입기도 했다.
동양은 유진에 인수된 뒤 한때 200위 밖으로 밀렸던 시공순위를 70위까지 끌어올렸지만, 이 역시 모기업의 재무지원 영향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이다. 이 같은 상황에서 사업재편과 구조조정 등을 실시하는 것은 사실상 정리 수순이라는 것이 업계의 평가다.
이에 대해 동양 관계자는 "최근 건설경기 침체가 심각해 기존 진행하던 단순 도급사업에서 벗어나 보유 자산을 활용한 자체 개발사업과 고부가가치 개발사업 중심의 포트폴리오에 집중하려는 것"이라며 "특히 시공 분야에서 프리콘 등 전략적 시공관리 역량을 강화해 개발사업과의 시너지를 높이는데 주력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2019년 부동산 신탁사 코람코자산신탁을 인수한 LF도 비슷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리츠 부문에서는 꾸준히 수익을 내고 있지만, 부동산 PF와 직접적인 연관이 있는 신탁부문의 손실이 확대되고 있다는 것이다.
지난 2022년 1000억원이 넘는 영업이익을 기록했던 코람코자산신탁은 지난해 40억원 적자로 돌아섰다. 부실 부동산 PF 여파에 2000억원이 넘는 대손충당금을 쌓으며 재정상황이 급격하게 악화됐다.
아직 올해 실적이 나오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400억원 수준의 영업이익을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14개 부동산신탁사 중 코람코와 한국토지신탁 등만 실적 개선세가 나타나며 현재 상황 대비 선방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다만 대부분의 수익이 서울 서초구 '더 에셋 강남' 빌딩 매각 등 리츠 부문에서 발생했고, 신탁부문은 올해도 손실이 유력하다는 평가다. 특히 최근 대주단과의 소송에서 패소하고, 책준 사업장 손실이 확대되는 등 리스크도 커졌다는 것이다. 2020년 400억에 달했던 신탁 관련 수수료 수익이 지난해 190억원으로 반토막 난 것도 업황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다는 분석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LF가 코람코를 2000억원 수준에 인수했는데, 지난해 쌓은 충당금만 2000억원이 넘는다"며 "특히 최근 대주단과의 소송 패소와 지방 사업장 엑시트 과정에서 나타난 손실 등을 고려하면 LF 입장에서 코람코의 신탁부문이 곱게 보이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앞서 코람코는 리츠·펀드 부문과 신탁 부문의 계열 분리를 검토하기도 했다. 당시 시장에서는 계열 분리 후 결국 매각에 나설 것이란 전망까지 나왔다. 당시 코람코 측은 리츠와 펀드, 신탁사업의 분리는 당연한 것이라고 설명하며 매각설을 부인했다. 다만 금융당국이 부동산 신탁업계 불황을 이유로 허용하지 않으면서 분리는 무산됐다.
최근 5년간 코람코를 이끌어 온 정준호 대표가 올해를 끝으로 회사를 떠나고 신탁과 리츠, 펀드 부문 각자대표 체제를 구축한 것도 현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다만 코람코 측은 정 대표의 임기와 연령을 고려하고 각 부문 대표의 책임을 강화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한 결정이라고 설명했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내년부터 코람코 경영회의에 LF 회장이 참여한다는 소문도 있다"며 "지금 코람코 내에 회장실을 새로 만들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모기업 최고경영자가 직접 경영에 관여한다는 것은 결국 기존 대표가 나가는 것이 책임을 물은 경질이라는 의미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코람코 관계자는 "정 대표는 그동안 안정적인 사업 관리로 부동산 신탁사 가운데 몇 안되는 실적 개선을 이끌어 냈다"며 "신탁부문 대표에 그동안 신탁사업을 이끌어온 내부 인물이 임명된 것도 신탁부문에 대한 믿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반박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