삭감된 예산에 전기료도 미납
젊은 연구자 등 인재유출 심각
정치리스크에 관련 정책 표류
AI위원회 등 리더십 공백 커
젊은 연구자 등 인재유출 심각
정치리스크에 관련 정책 표류
AI위원회 등 리더십 공백 커
위기의 K-과학기술 (上)
12·3 비상계엄과 탄핵정국 속에 2024년이 저물고 있다. 불안한 정치적 상황에서 국가 미래 성장엔진과 혁신을 선도해야 할 과학기술 근간이 심하게 흔들리고 있다.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위축된 연구 생태계가 계엄과 탄핵이라는 연이은 악재를 만나 길을 잃었다. 정부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3대 게임체인저 기술 육성과 선도형 R&D 시스템 구축, 글로벌 R&D 협력 등 주요 과학기술 정책들은 멈춰섰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해소되기까지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으로 예상되면서 대한민국 과학기술 미래는 어두운 긴 터널 속으로 점점 빠져들고 있다. 과학기술계의 현 상황을 3회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주>
과학기술계 현장은 R&D 예산 삭감에서 시작해 비상계엄, 탄핵정국 여파로 혼란과 시련이 이어지고 있다. 과학계에선 이 모든 것이 과학기술에 대한 국가 지도자의 몰이해와 불통에서 비롯됐다는 비판이 나온다.
대통령의 R&D 카르텔 발언 이후 정부의 R&D 지출 구조조정 명목으로 올해 R&D 예산이 전년 대비 14.8% 삭감된 26조5000억원으로 편성됐다. 이로 인해 연구현장은 과제 중단 및 축소, 학생연구원 인건비 부족 등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R&D 예산 삭감 후유증…위축되는 연구생태계
국회 예산정책처에 따르면 올해 R&D 예산 삭감으로 14개 세부사업에서 중단 과제가 발생했고, 약 1만2000개 과제가 중도에 협약이 변경되는 등 연구현장이 흔들렸다. 협약서상 해당 과제들의 연구비는 3조9000억여 원이었으나, 예산에 반영된 연구비는 2조7000억원으로 당초보다 29.2% 삭감돼 연구의 발목을 잡았다.
특히 슈퍼컴퓨터, 가속기 등 대형 연구시설에 심각한 재정 압박으로 작용해 시설 가동을 일부 중단하거나 늦춰야 하는 일이 벌어졌다. 유지보수나 전기료 등을 내지 못하는 사례까지 발생했다. 상황이 이렇자, 젊은 연구자들은 연구실을 자의반 타의반으로 떠나갔고, 4대 과학기술원 학생뿐 아니라 미래 과학자를 꿈꾸던 학생들은 이공계 대신 의대 진학을 목표로 진로를 바꾸는 일도 현실화됐다.
연구현장의 반발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공계 연구생활장려금, 대통령과학장학금 확대, 신진 연구자 지원 강화 등 과학기술 인재 성장 전략과 이공계지원법 등의 대책을 꺼내 들었지만, 예산 삭감 부작용은 해소되지 못했다. 내년 R&D 예산은 29조6000억원으로 올해보다 11.5% 늘어나지만 삭감 이전인 작년(31조1000억원) 수준에 못 미친다.
◇계엄·탄핵 정국, 과학기술 퇴보 길 들어서
이런 상황에서 초유의 비상계엄과 탄핵정국이 빚어지며 과학기술이 정치에 갖힌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 갈수록 격화되는 글로벌 기술패권 경쟁에서 전력질주 해도 모자란 상황에서 정치적 리스크로 옴짝달싹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우리와 경쟁하는 주요 선도국들은 첨단기술 선점과 기술 안보 강화에 올인하는데 우리만 뒤걸음치는 꼴이다.
여기에다 내년 R&D 예산이 정부안보다 1000억원 감액돼 어려움이 가중될 전망이다. 이른바 3대 게임체인저 기술인 AI·반도체, 첨단바이오, 양자 등 초격차 전략기술 육성에도 빨간불이 켜졌다. 각 분야의 컨트롤타워를 위해 신설된 국가AI위원회, 국가바이오위원회, 국가양자전략위원회의 리더십 공백으로 제대로 된 역할을 할 수 있을 지도 미지수다. 민관 역량을 결집해 총력 육성체계를 완성하겠다는 당초 계획도 흔들리고 있다.
글로벌 R&D 협력 역시 계엄과 탄핵 여파로 국가 신인도가 영향을 받으면서 첫단추를 잘 끼울 수 있을지 장담하기 어렵다. 글로벌 R&D 특별위원회, 범부처 글로벌 R&D 협의체, 글로벌 R&D 추진전략, 과학기술 글로벌 협력 종합 전략 등 정부가 수립한 관련 정책들이 축소 또는 표류될 가능성도 있다.
이덕환 서강대 명예교수는 "R&D 예산 삭감과 탄핵 이슈 등으로 과학기술계는 재앙 수준의 쓰나미가 덮친 상황이나 마찬가지"라며 "지금의 정치적 불안과 리스크가 계속된다면 과학기술 분야는 돌파구를 찾기 어려워 보인다"고 말했다.
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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