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김세희의 정치사기] 위정자의 재난 수습 자세](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3102102269038001[1].jpg "[김세희의 정치사기] 위정자의 재난 수습 자세")
문제는 그 다음, 재난을 수습하는 위정자의 자세다. 역시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조선 태종 3년(1403년) 경상도에서 오던 조운선 34척이 바다에서 침몰돼 1000여명 이상 죽고 쌀은 만여석이 잠겼다. 당시 태종은 "책임은 내게 있다. 만인을 몰아서 사지에 나가게 한 것이 아닌가"라고 자신을 책망했다. 그러면서 "쌀은 비록 많더라도 아까울 것이 없지만, 사람 죽은 것이 대단히 불쌍하다. 그 부모와 처자의 마음이 어떠하겠는가"라고 탄식했다. 그 이후 태종은 각지에서 내는 곡물을 육로로 운반하게 했다.
재난으로 인한 '분노한 민심'을 다스리는 데도 정성을 기울일 수 밖에 없었다. 재난 자체가 사람들을 슬픔과 충격에 빠뜨리기 때문이다. 배점모 호원대 교수가 쓴 논문 '고려 및 조선시대에 있어서의 재난구호(휼) 정책'을 보면, 조선시대에 재난을 겪은 이후 민심을 진정시키기 위해 실시된 각종 구휼정책을 확인할 수 있다. 조세감면 539회, 진휼·휼전 512회, 설죽(굶주린 자에게 죽 제공)·시음식(굶주린 자에게 음식제공)·설진(진휼을 위한 기관설치) 207회,환곡감면 150회 등이다. 당시 위정자들은 재난으로 인한 혼란 상태가 지속되면 민심이 분노로 변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김세희의 정치사기] 위정자의 재난 수습 자세](http://contents.dt.co.kr/images/202412/2024123102102269038001[2].jpg "[김세희의 정치사기] 위정자의 재난 수습 자세")
600여년이 지난 2024년 12월 29일. 예상치 못한 사고가 터졌다. 이날 오전 9시 3분쯤 태국 방콕에서 출발한 제주항공 7C2216편 항공기는 전남 무안국제공항 착륙을 시도하던 중 활주로를 이탈해 외벽을 충돌했다. 사고 원인으로는 '버드 스트라이크'(조류 충돌)를 비롯해 다양한 해석이 제기된다.
이번 사고는 대참사였다. 승객 181명 중 2명을 제외한 모두가 사망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들려왔다. 2021년 태어난 세 살 아기는 부모와 함께 첫 해외여행을 다녀오던 길이었고, 위암 투병 치료가 끝나 친구들과 방콕으로 골프 여행을 간 중년여성은 뜻하지 않은 참변을 당했다. 남편은 일 때문에 한국에 남고 아내와 두 아들, 딸만 여행을 떠났다가 돌아오지 못한 사연도 있었다.
사고 현장을 찾은 유가족들은 오열했다. 가족을 차가운 주검이나마 다시 품고 싶은 이들의 애끓는 절규는 밤새 무안공항을 뒤흔들었다. "아이고, 얘야 이렇게 가면 안 된다"고 울부짖던 부모는 결국 망연자실했다. 참사 직전 사망한 피해자들과 카카오톡으로 대화를 나눈 유가족들은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치며 휴대전화만 계속 쳐다봤다. 곁에서 지켜보는 주변인들도, TV로 상황을 지켜보는 국민들도 이들의 심정을 대신할 수 없었다.
제1야당의 수장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유가족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이 대표는 직접 오열하는 유가족들의 손을 잡고, 이들의 요구 사항을 직접 수첩에 메모하기도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30일 유가족을 위로하고 재발 방지 대책에 대한 의견을 들었다. 탄핵 정국에서 헌법재판관 임명과 '쌍특검법'(내란·김건희 특검법)을 둘러싸고 대치를 이어온 여야 수장이 일제히 사고 수습의 최전선에 선 것이다.
두 수장 모두 유가족들 앞에서 한 약속을 잊지 말아야 한다. 지금은 차기 권력을 잡기 위해 다툴 때가 아니다. 한 마음 한 뜻으로 재난 수습책과 슬픔에 빠진 유가족들을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할 시기다. 이런 어려운 일을 하라고 국민이 표를 주는 것이다.
이 사태를 기점으로 차기 대선 표심을 얻기 위한 무의미한 경쟁도 하면 안된다. 유권자들은 생각하는 것만큼 어리석지 않다. 가면 갈수록 정쟁만 일삼는 당신들이 이때마저도 제대로 하지 않으면 민심의 분노는 폭발할 것이다.
김세희 정치정책부 기자 saehee0127@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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