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1500원선을 위협해 외환보유고 타격이 우려됐지만 지난달 외환보유액은 오히려 늘어났다. 하지만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될 경우 환율 급변동으로 인한 자본유출에 따른 외환위기 가능성이 여전히 남아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특히 연말 기준 외환보유액은 5년만에 가장 적었다.
한국은행이 6일 발표한 '2024년 12월말 외환보유액'에 따르면 지난달 외환보유액 잔액은 전월말 대비 2억1000만달러 증가한 4156억달러로 집계됐다. 외환보유액은 두 달 연속 하락하다가 석 달만에 상승 전환했다.
지난해 전체로는 외환보유액이 2023년말(4201억5000만달러) 대비 45억5000만달러 줄었다. 2022년 이후 3년 연속 감소했지만 감소 폭이 2022년(-399억6000만달러)보다는 작았다. 매년 12월말 외환보유액만 보면 2024년은 2019년(4088억2000만달러) 이후 가장 적었다.
외환 방파제로 불리는 외환보유액의 심리적 저항선은 4000억달러로 평가된다. 통상 환율이 급등하면 외환당국이 달러 매도 개입에 나서 환율을 방어에 나선다. 이에 따라 외환보유고가 크게 줄면 대외 신인도 하락 등 위험이 따른다.
김영웅 국제국 외환회계팀 과장은 "환율은 변동성이 클 때만 완화 조치에 나서는데 이로 인한 외환보유액 감소보다 최근 미국 주가 오름세에 따른 외자운용원의 주식 운용과 채권 이자수익, 분기말 금융기관의 외화예수금 유입 등 증가 요인이 컸다"고 말했다.
당초 시장에선 외환당국의 달러 매도 시장 안정화 조치에 외환보유고가 크게 고갈됐을 것이란 전망이 나왔다. 지난달 원·달러 환율은 한달새 77.8원 올랐다. 비상계엄 사태 때는 한때 30원 가까이 급등했고 국무총리 탄핵 당시에는 20원 가까이 올라 1486.2원까지 치솟았다.
이에 일각에선 국제결제은행(BIS) 비율 충족을 위한 예수금 증가는 매년 분기말 예정된 계절적 효과로 간주돼, 이달 고환율 기조가 계속된다면 외환보유액이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정치적 불확실성이 장기화되면 환율이 또다시 급등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개발연구원(KDI)도 환율 관련 경고의 메시지를 던졌다. KDI는 김현정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에게 보낸 답변서에 정부·한은의 외환정책 실패가 최악의 경우 외환위기로 직결될 수 있다고 관측했다.
KDI는 답변서에 "외환보유액을 이용해 경제기초여건과 괴리된 환율 수준을 유지할 경우, 외환시장이 오히려 불안정해질 가능성이 있다"며 "다수의 신흥국에서 환율방어를 위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다가 외환위기가 발생한 경험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고 평가했다.
KDI의 이같은 분석은 향후 원·달러 환율이 고공행진할 것이란 전망에서 비롯됐다. 이번 환율 상승세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때와는 다르다는 의미기도 하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이 가결된 2016년 12월 9일 전후로 환율은 1209원까지 치솟았으나 이듬해 1월부터 하락세를 보이며 헌법재판소의 탄핵 인용이 이뤄진 2017년 3월 10일께 1130원대로 떨어졌었다. 이번 탄핵 정국 리스크가 과거보다 내용과 규모 면에서 대외신인도에 더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다.
시티그룹, 스탠다드차타드 등 해외 투자은행(IB) 환율 전망치는 내년 1분기 1435원, 2분기 1440원, 3분기 1445원으로 나타났다. 일본 노무라는 내년 3분기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주형연기자 jhy@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