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자컴퓨팅 상용화까지 약 20년 걸릴 것이라는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의 발언 이후 양자컴 업계가 들썩이고 있다. 'AI 대장주'로 불리는 엔비디아를 이끄는 황 CEO의 한마디가 상승세를 이어가던 양자컴 관련주들에 찬물을 끼얹었기 때문이다.
그의 발언을 "객관적인 분석"으로 평가하며 동조하는 목소리가 나오는가 하면 양자컴 관련 기업들은 "완전히 틀렸다"며 정면 반박하고 나섰다. 범용 양자컴을 기준으로 신중론을 펼친 젠슨 황과 특정 문제 해결에 특화된 기술도 상용화로 봐야 한다는 기업들의 입장이 대립하는 것이다. 양자컴 실용화 시기를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
◇상용화까지 20년?…젠슨 황 발언에 양자컴 주식 40% 폭락= 황 CEO는 7일(현지시간) 미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CES 2025' 간담회에서 양자컴 상용화 시기에 대한 질문을 받고 "매우 유용한 양자컴에 대해 15년이라고 말한다면 아마도 그것은 초기 단계일 것이고, 30년은 후기 단계일 것"이라며 "20년을 선택한다면 많은 사람이 믿을 것이라고 본다"고 밝혔다.
양자컴은 양자역학 원리를 적용한 컴퓨터로, 기존 슈퍼컴퓨터로 수천 년 걸릴 연산을 몇 분 안에 처리할 수 있는 잠재력을 가지고 있다. 이런 혁신 가능성 때문에 구글,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 빅테크들도 막대한 투자를 쏟아부으며 개발하고 있다. 특히 지난달 구글은 10셉틸리언 년(10의 24제곱 년)이 걸릴 계산을 단 5분만에 처리할 수 있는 양자 칩 '윌로우(Willow)'를 공개하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기술 발전 기대감이 높아지면서 양자컴 관련 주식들도 상향 곡선을 그렸다. 그러나 황 CEO의 발언 이후 시장 분위기는 급변했다. 아이온큐와 리게팅 컴퓨터 주가는 각각 39%, 45% 하락했다. 퀀텀컴퓨팅(-43%), 디웨이브 퀀텀(-36%), 아킷퀀텀(-31%) 등도 줄줄이 내렸다.
◇"분석 현실적" vs "이미 상용화 시작"= 황 CEO가 과열된 시장에서 양자컴에 대해 현실적인 분석을 내놓았다는 평가도 나온다.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이바나 델레브스카 스페어 인베스트 투자책임자는 "15~20년이라는 시간표는 매우 현실적"이라고 평가했다. 마켓워치는 "최근 몇 달간 양자컴 관련 주식이 급등했는데 이 기업들은 여전히 최소한의 수익만 올리고 있다. 양자컴 업계에서 의미 있는 수익을 찾아보기는 힘들다"며 "황 CEO가 짧은 기간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한 양자 주식에 찬물을 끼얹는 발언을 한 것"이라고 짚었다.
이승우 한국과학기술연구원 양자정보연구단 책임연구원도 황 CEO의 신중론에 공감하며 기술적으로 풀어야 할 과제가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현재 양자컴 기술은 특정 문제 해결에는 유용할 수 있지만, 범용 양자컴으로 발전하려면 큐비트 안정성과 오류수정기술 같은 핵심 과제를 해결해야 한다"며 "현재의 양자컴은 제한된 응용 범위에 머물러 있으며, 상용화를 논하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멀다"고 말했다.
반면 양자컴 관련 기업들은 황 CEO의 발언에 정면 반박하고 있다. 디웨이브 퀀텀의 앨런 바라츠 CEO는 이날 미국 CNBC 방송에 출연해 "황 CEO가 틀린 이유는 현재 디웨이브가 상업적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이라며 "마스터카드와 일본 NTT도코모 같은 기업들이 우리 양자컴을 쓰고 있다. 양자컴 상용화 시점은 지금부터 30년 후, 20년 후, 15년 후가 아니라 바로 지금"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게이트 기반 양자컴은 상용화에 수십년 걸릴 수 있지만 어닐링 접근법을 사용하면 지금 당장 구현할 수 있다. 디웨이브 시스템이 엔비디아의 용량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언제 어디서든 젠슨 황과 만나 이런 격차를 메울 수 있도록 기꺼이 돕겠다"고 덧붙였다.
◇누구 의견이 맞나…기술 접근 방식 차이?= 디웨이브 퀀텀은 세계 최초로 양자컴을 상용화한 캐나다 기업으로 양자 어닐링이라는 독자 기술을 활용한다. 양자 어닐링은 특정 유형의 최적화 문제를 해결하는 데 특화돼 있다. 범용적인 게이트 기반 양자컴과는 기술적 접근 방식이 다르며, 적용 범위가 제한적이라는 평가가 있다. 반면 젠슨 황이 언급한 게이트 기반 양자컴은 이론적으로 더 강력한 성능을 발휘할 수 있지만 안정적인 큐비트 구현과 오류수정기술 같은 장벽을 극복하려면 추가적인 연구가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에 양자컴 상용화에 대한 입장 차이는 상용화의 정의와 기술적 접근 방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풀이된다.
젠슨 황은 범용 양자컴퓨터를 기준으로 상용화를 논의해야 한다고 보는 반면 바라츠는 특정 문제 해결에 특화된 기술도 충분히 상용화로 평가될 수 있다고 본다. 아울러 젠슨 황의 관점은 기술적 완성도와 경제적 현실을 강조하며 장기적인 접근을 요구하지만 바라츠의 입장은 이미 제한적이지만 실질적인 응용 사례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있다는 점에서 현실적인 상용화를 주장하고 있다.
◇젠슨 황 양자컴 무서워 견제?= 한편 고성능 컴퓨팅에 활용되는 그래픽처리장치(GPU)를 통해 AI 칩 시장의 80%를 장악한 엔비디아가 양자컴 상용화에 대해 견제구를 날린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양자컴이 빠른 데이터 처리속도를 무기로 GPU를 대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리처드 섀넌 크레이그 할럼 분석가는 "양자컴퓨팅은 엔비디아가 가장 큰 수혜를 누리는 기존 컴퓨팅 산업에 파괴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양자컴 실용화 시점을 둘러싼 논란은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이학배 연세대 양자산업융합선도단장(응용통계학과 교수)는 "AI와 스마트폰 기술처럼 초기에는 회의적이었지만, 예상을 뛰어넘는 속도로 발전한 사례가 있다"며 "양자컴 기술 역시 기술발전 속도가 가속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당장은 기존 컴퓨터를 완전히 대체하기보다 공존하며 점진적으로 발전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