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대 가전·IT 전시회인 'CES 2025'의 주인공은 단연 인공지능(AI)의 선두주자 엔비디아였다. PC는 물론 자동차, 로봇에 이르기까지 주요 업체들의 전시 부스에는 온통 '엔비디아 파트너'라고 적혀있는 녹색 간판으로 숲을 이뤘다. 마치 'AI=엔비디아'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올해 CES의 시작을 알리는 기조연설의 주인공 역시 젠슨 황 엔비디아 최고경영자(CEO)였다. 8년 만에 CES 무대에 선 그는 '인공지능(AI) 패권'을 자신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전 세계 이목이 집중됐다.
인공지능(AI) 시대가 구체화되고 가까워지는 과정에서 엔비디아의 입지는 확연히 달라졌다. 과거 모든 컴퓨터에 '인텔 인사이드'라는 스티커가 붙어 있었다면, 이제는 '엔비디아 인사이드'의 시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황 CEO의 한마디는 강력했다. 젠슨 황이 이날 양자 컴퓨터의 상용화 시기에 대해 "20년 정도 걸릴 것"이라고 말하자, 대장주인 아이온큐는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고 주요 테마주의 주가는 30~40%가량 급락했다.
엔비디아가 7년 새 시가총액을 70배나 끌어올리며 AI의 지배자가 되기까지는 숨은 조력자가 있었는데, 바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였다. 엔비디아가 만드는 그래픽카드(GPU) 등 주요 칩에는 고대역폭메모리(HBM)가 들어간다. 세계 HBM 수요의 80% 이상을 SK하이닉스·삼성전자가 공급한다. 엔비디아에 처음 HBM을 공급한 회사도 삼성전자였다.
젠슨 황은 자사 신제품에 삼성 GPU도 들어간다고 확인했고, 최태원 SK그룹 회장과도 HBM 공급에 속도를 내자고 의기투합했다. 한국이 키(Key) 플레이어임을 보여주는 사례다.
이번 CES에서는 AI 패권을 잡기 위한 기업 간 '합종연횡'이 치열하게 이뤄졌다. 삼성·LG전자는 마이크로소프트(MS)와, 엔비디아는 도요타와 각각 손을 잡았다. 지금 AI 주도권을 놓치면 영영 도태될 수 있다는 위기감 때문이다. 최태원 회장은 이날 기자간담회에서 "AI는 선택 사항이 아니고 모든 분야에 걸쳐 변화를 이끌어내고 있다"며 "앞장서서 변화를 이끌지 뒤따를지에 따라 부침의 형태도 달려 있다"고 말했다. 한종희 삼성전자 부회장 역시 이건희 선대회장의 '여러분이 하는 사업이 10년 뒤에도 성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전하며 의지를 다졌다.
올해 CES는 'A부터 Z까지' 모두 AI였다. 어디를 둘러봐도 AI가 없는 곳이 없었다. 10년 전 디지털 컨버전스로 제조·서비스 생태계가 탈바꿈했듯, 지금은 AI 엔진으로 제조·서비스가 또 한번 대전환을 이루는 'AI 컨버전스'와 'AI믹싱', 그리고 'AI일체화(unification)'가 진행되고 있다. 젠슨 황이 데이터 센터에 머무는 AI칩에서 벗어나 로봇, 자율주행차로 칩을 개발하며 물리(Physical) AI로 확장하고 있는 것도 이러한 흐름을 보여준다.
세계는 이렇게 치열하게 경쟁 중이고 우리 기업들의 마음도 급해지는데 정치권은 딴 세상이다. 탄핵 정국에 내수 침체와 투자환경 불확실성은 깊어지고 각종 규제는 발목을 잡고 있다.
미 스탠퍼드대의 '글로벌 AI 파워 랭킹'에 따르면 한국의 AI 경쟁력은 세계 7위다. 그럴듯 해 보이지만 1~2위인 미국, 중국과 비교하면 투자와 기술 인프라 수준에서 큰 격차가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반도체의 기적을 만들어난 경험이 있다. 1970년대 전자시계용 집적회로나 만들던 한국은 20년 뒤 세계 1위 메모리반도체 제조강국으로 도약했다.
엔비디아가 세상을 뒤흔든 것 처럼 우리도 언젠가 CES서 '삼성 인사이드', 'SK 인사이드'를 볼 날을 기대해 본다.
라스베이거스(미국)=장우진기자 jwj17@dt.co.kr
세계 최대 가전·정보기술(IT) 전시회 CES 2025가 열린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퐁텐블루 호텔 엔비디아 전시장에서 관람객들이 제품과 기술을 살피고 있다. 라스베이거스(미국)=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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