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에너지솔루션이 전기차 캐즘 여파에 3년 만에 분기 적자를 기록했다. 삼성SDI와 SK온 또한 적자 전환이 예상되면서 북미·유럽 시장의 수요 약세와 정책 불확실성, 중국업체의 공세 확대 등으로 국내 배터리 업계 전반에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은 9일 잠정실적 공시를 통해 지난해 4분기 매출 6조4512억원과 영업손실 2255억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19.4% 감소했고, 영업이익은 적자로 전환했다. 이는 지난 2021년 3분기 볼트 전기차 리콜에 따른 충당금(6200억원)으로 적자를 기록한 이후 약 3년 만의 분기 적자다. 지난해 4분기에 수령한 미국 인플레이션감축법 첨단제조생산세액공제 보조금(AMPC)인 3773억원을 제외하면 적자 규모는 사실상 6028억원에 달한다.
지난해 연간 전체 매출은 25조6196억원과 영업이익 5754억원으로 집계됐다. 매출은 2023년 대비 24.1% 줄었고, 영업이익은 73.4% 감소했다.
이는 장기화되고 있는 전기차 캐즘의 직격탄을 맞은 영향이다. 북미 주요 고객사인 GM의 물량 감소에 따라 고수익성 제품 출하 비중이 줄은 데다 고정비 부담 증가와 연말 불용 재고 처리라는 일회성 요인까지 악재로 작용했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미 전사 차원의 위기경영 체제에 돌입한 상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임원 해외 출장 시 8시간 미만 거리는 이코노미석 탑승을 의무화했으며, 일부 신사업 분야 외에는 당분간 신규 증원보다는 내부 인력 재배치를 활용할 계획이다.
전기차 캐즘과 각국의 친환경·에너지 정책 변화로 인한 위기 상황을 극복하고 2026년 이후로 예상되는 회복기에 누구보다 빨리 시장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한 결정이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지난 2일 신년사에서 "현재의 위기는 일시적이며 더 큰 도약과 성장의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적 발표를 앞둔 삼성SDI와 SK온 역시 사정이 어렵기는 매한가지다. IBK투자증권은 삼성SDI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을 3조8490억원, 영업손실은 1740억원으로 적자 전환을 예상했다. 지난해 3분기 창사 첫 분기 흑자를 기록한 SK온 역시 다시 적자 전환이 유력하다.
문제는 올해 역시 전기차 수요 회복에 기미가 없는 데다 정책 불확실성이 높다는 점이다. 여전히 전기차 가격은 내연기관차 대비 높으며, 유럽의 경기 부진이 지속되고 있다. 부족한 충전 인프라도 단기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다.
여기에 트럼프 행정부의 재집권으로 국내 영업이익에 반영되는 인플레이션 감축법(IRA) 보조금이 폐지되거나 축소될 가능성이 높다. 유럽연합 역시 올해부터 시행 예정이었던 이산화탄소 배출 규제 완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중국 로컬업체들의 공격적인 글로벌 확장이 본격화되고 있는 점도 위협 요인이다. 중국은 제품은 물론 메탈, 설비 등 밸류체인 전반에서 원가 경쟁을 심화시키며 글로벌 시장에서 국내 배터리 3사의 입지를 위협하고 있다. 국내 3사의 글로벌 점유율 하락 추세는 이어지고 있다.
김호섭 한국신용평가 기업평가본부 연구위원은 "올해 이차전지 산업에 대한 신용등급 전망은 '부정적'"이라며 "주력 해외시장인 북미와 유럽에서의 수요 약세와 정책 불확실성 확대, 중국업체의 점유율 상승 등은 생산, 판매량 회복에 지속적인 제약 요인"이라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