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준기의 D사이언스] 수십만㎞ 떨어진 달 신호 포착… 여기가 심우주 통신 `최전선`

입력: 2025-01-09 18:15 이준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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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첫 달 궤도선 '다누리' 교신 장비
주 반사판 무게만 100톤… '국내 최대'
다누리 발사 이후 첫번째 교신 예정국
호주보다 먼저 신호 잡으며 역량 입증
美 NASA·日 JAXA 등 잇단 협업 문의
글로벌 호환성도 탁월… 활용가치 높아

[이준기의 D사이언스] 수십만㎞ 떨어진 달 신호 포착… 여기가 심우주 통신 `최전선`

국내 우주안테나 설계 전문가로 여주 심우주지상안테나를 이끌고 있는 박덕종 항우연 박사

이준기의 D사이언스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심우주지상안테나'를 가다

지난 3일 경기도 이천시 장호원읍을 지나 20여 분 가량 국도를 타고 여주 방향으로 달리자, 멀리서 접시 모양의 거대한 안테나가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논 사이로 구불구불하게 이어진 좁은 언덕길을 따라 들어갈수록 안테나의 모습이 보다 선명하게 한 눈에 들어왔다. 생각했던 것보다 큰 규모에 위압감이 느껴졌다. 안테나가 설치된 SK브로드밴드 여주위성센터에 도착해선 고개를 90도 가까이 뒤로 젖혀야 볼 수 있을 정도로 웅장하기까지 했다.

거대한 안테나의 실체는 지난 2022년 8월 5일 국내 최초로 발사된 달 궤도선 '다누리'와 교신을 위해 설치된 '심우주지상안테나(KDSA)'다. 심우주안테나는 지구에서 수 십만㎞ 떨어진 달을 포함한 심우주의 아주 미세한 신호를 감지해 지구와 통신할 수 있는 국내에서 몇 안 되는 유일한 거대 우주관측 장비다.

국내 최대 규모의 심우주지상안테나로, 주 반사판의 지름이 35m에 달한다.

◇반사판 지름만 35m… 하루 평균 6∼7회 교신

여주 심우주안테나는 주 반사판 지름이 35m에 달하는 국내 최대 규모다. 충북 보은 32m, 충남 금산 27m, 한국우주전파관측망 21m 등에 설치된 안테나보다 크다. 반사 장치와 받침대, 지지대 등으로 구성된 심우주안테나의 높이는 42m, 총 중량은 709톤으로 어마어마한 대형 구조물이다. 안테나의 핵심 장비인 주 반사판의 무게만 100톤에 이른다.

심우주안테나는 대전의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지상국과 지구로부터 38만㎞ 떨어진 달 상공 100㎞ 원궤도를 돌고 있는 다누리와 교신하기 위해 지어졌다. 다누리에 탑재된 6개 탑재체에서 보내오는 각종 과학임무 데이터를 받아 지상국에 전송하는 가교 역할도 한다.

심우주안테나의 방위각은 ±270도로, 다누리에 어디에 있든 모든 방향에서 교신할 수 있다. 초당 0.8도씩 움직이며 다누리를 정밀 지향하고, 자동 추적하는 기능을 갖추고 있다. 센터를 찾은 날에 심우주안테나는 오후 1시 첫 교신을 시작해 오후 3시, 5시, 7시까지 총 네 차례 다누리와 통신했다. 다누리가 달 궤도를 따라 달 뒷면으로 이동할 때는 교신이 이뤄지지 않아 30∼40분 가량 잠시 쉬는 시간이 주어진다.

김인수 SK네트웍스서비스 매니저는 "안테나는 다누리와 하루 평균 6∼7회 교신을 하고 있다"며 " 한 번 교신하는 데 대략 1시간 가량 걸리는데, 가장 길게 교신할 때는 8∼9시간 지속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다누리 교신 업무는 항우연으로부터 운영권을 가지고 있는 SK네트웍스서비스가 맡고 있다. 센터에는 2명이 교대 근무하며 365일 24시간 다누리 통신와 관제를 진행하고 있다.

2022년 8월 달 궤도선 '다누리' 발사 이후 교신과 관제를 담당하고 있는 항우연의 심우주지상안테나.

◇놀라운 우리의 안테나 성능… 호주 안테나보다 먼저 다누리 교신 성공

2021년 11월 준공된 심우주안테나는 다누리 교신에 앞서 가동 시험에 나섰다. 미국의 달 정찰위성 'LRO'와 교신을 시도했다. LRO 위성은 다누리의 궤도 속도나 임무 고도가 비슷해 최적의 시험 대상이었다. 그 결과, 38만㎞ 떨어진 달에서 초속 1.6㎞ 속도로 돌고 있는 LRO 위성과 지상 교신 시험을 성공적으로 끝냈다. 다음은 LRO 위성보다 더 멀리 떨어져 있는 미국의 목성 탐사선 '주노(Juno)'와의 교신 시험였다. 당시 주노는 지구로부터 7억6000만㎞ 떨어져 있었는데, 심우주안테나는 주노로부터 아주 미세한 신호를 감지해 내는 기대 이상의 성능을 보여줬다.

혹독한 시험을 거쳐 놀라운 성능을 보여준 심우주안테나는 드디어 공식 데뷔전을 가졌다. 2022년 8월 5일 오전 8시(한국시간) 미국 케이프커내버럴 우주군기지에서 팰컨9에 실려 발사된 다누리와 교신에 실전 투입됐다.

발사 이후 다누리는 호주 캔버라에 있는 심우주안테나와 가장 먼저 교신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예정된 시간을 넘겼는데, 다누리 교신 소식이 들려오지 않았다. '다누리에 무슨 문제가 생긴게 아닐까'라는 반응이 항우연 연구진 사이에서 조심스럽게 나왔다. 속이 타 들어가긴 심우주안테나 제어실을 지키고 있었던 엔지니어들도 마찬가지였다.

호주로부터 교신 소식이 전해지지 않자 팽팽한 긴장감과 긴박감이 점점 더해졌다. 애타게 교신 소식을 기다리던 안테나 제어실 엔지니어들의 얼굴에 엷은 미소와 함께 안도의 한숨이 터져 나왔다. 호주보다 여주 심우주안테나가 먼저 다누리에서 보내온 신호를 감지했기 때문이다.

박덕종 항우연 박사는 "우리의 심우주안테나가 호주보다 먼저 다누리 신호를 감지했다는 것은 우리의 안테나 성능과 우리 연구진의 관제 역량이 호주보다 뛰어났음을 보여준 것이라는 점에서 속으로 쾌재를 불렀던 기억이 난다"고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여주 심우주안테나가 다누리 교신에 성공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호주 캔버라 안테나도 교신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져 연구진과 이를 지켜보던 국민들은 안도의 한숨을 쉴 수 있었다.

경기도 여주 SK브로드밴드 위성센터에서 구축된 국내 최대 규모의 심우주지상안테나.

◇심우주안테나, 다누리와 '2년 더 함께'

심우주안테나는 다누리 초기 운영을 지원하며 지금까지 2개월 6개월 가량 안정적으로 가동되고 있다. 다누리 수명이 당초 2023년 12월에서 2025년 12월까지 연장됨에 따라 심우주안테나는 2년 더 다누리를 지킬 수 있게 됐다.

심우주안테나는 다누리와 교신하기에 앞서 철저한 준비 과정을 거친다. 먼저 안테나를 통해 다누리와 거리를 측정해 그 거리와 궤도 데이터를 운영 소프트웨어에 입력해야 교신에 착수한다. 안테나는 다누리가 위치해 있는 방향으로 서서히 움직이며 파킹 포지션(Parking Positin)에 이르면 상태 점검을 실시하고,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면 다누리와 탑재체 임무에 관한 명령을 보낸다.

이후 다누리와 탑재체가 수행한 임무에 대한 각종 데이터를 보내오면 이상이나 오류 여부를 확인해 지상국으로 연결해 준다. 이런 역할을 심우주안테나가 제대로 할 수 있도록 제어실에는 각종 첨단 장비와 설비들이 갖춰져 있다. 극저온 환경에서 신호를 증폭시키고 잡음을 최소화하는 극저온 저잡음 증폭기를 비롯해 안테나와 다누리의 교신 시간을 정확히 맞추기 위한 수소원자시계, 안테나의 두뇌 역할을 하는 운영 소프트웨어, 주파수 변환기, 탑재체 데이터 처리장치 등을 구비하고 있다. 이들 장비가 내는 기계음에 작업자들은 소음방지 귀마개를 착용하고 근무하는 열악한 환경에 놓여 있다.

심우주지상안테나 제어실에 있는 실외 날씨 정보 안내 디스플레이.

◇K-우주안테나에 반하다… 해외로부터 잇딴 '협력 러브콜'

여주 심우주안테나에 글로벌 협력을 제의하는 해외 국가와 기관의 러브콜이 잇따르고 있다. 미국 NASA, 일본 JAXA, 유럽 우주국(ESA) 등 우주 선진국들은 우리의 안테나를 활용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직접 여주위성센터를 찾았을 정도다.

협력 제안도 구체적이다. 미국 NASA는 유인 달 착륙 임무를 목표로 추진되고 있는 '아르테미스'에 안테나를 활용할 수 있게 요청했고, 유럽 ESA는 태양과 지구의 중력이 균형을 이루는 제5 라그랑주점(L5)에 2030년 발사 예정인 탐사선의 교신을 제안했다. 실제 우리가 지원할 수 있는지에 대한 기술적 검토가 진행되고 있다. 일본 JAXA도 자국의 심우주 통신에 우리 안테나를 지원 및 활용 여부를 문의했다. 최근에는 달 운영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노르웨이 기업이 찾아와 네트워크에 우리의 안테나를 참여시키는 방안에 대해 논의하는 등 심우주안테나를 매기로 한 글로벌 협력 활성화에 대한 기대감을 키워주고 있다.

이를 가능케 한 것은 심우주안테나가 국제표준에 따라 설계·제작돼 국제적으로 호환성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라고 항우연은 설명했다. 여기에 2년 넘게 다누리와 교신하면서 안정적으로 운영하고 있는 항우연의 우수한 역량과 목성의 주노 탐사선까지 통신에 성공한 경험이 더해져 앞으로 심우주 탐사선과의 교신 지원도 가능할 것으로 보고 있다.

이상률 항우연 원장은 "여주 심우주안테나는 우리나라 글로벌 우주협력의 상징과 같은 역할을 통해 심우주 탐사의 전략적 자산으로 활용가치가 매우 높다"고 말했다.

여주(경기)/글·사진=이준기기자 bongchu@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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