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석유화학 기업들이 전례 없는 위기에 실적 부진과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이중고에 처하고 있다. 정부가 기업 자율성에 초점을 맞춘 사업 재편을 추진 중이지만 과잉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 전환을 위해선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13일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LG화학의 지난해 연간 영업이익 추정치는 전년 동기 대비 54.52% 감소한 1조1504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4분기는 석유화학부문의 중국발 공급 과잉 영향으로 전년 대비 적자 전환이 예상된다.
롯데케미칼은 지난해 7643억원의 영업손실을 냈을 것으로 전망된다. 연간 기준으로는 2021년 1조5356억원의 흑자를 낸 이후 3년 연속 적자를 이어가고 있다.
한화솔루션은 지난해 4003억원의 손실로 적자 전환했을 것으로 보인다. 경기 둔화에 따른 기초소재(PE, PVC, 가성소다, TDI) 수요가 둔화해 케미칼 부문의 영업적자가 지난해 누적된 영향으로 풀이된다.
최근 국내 석유화학 산업은 전례 없는 위기 상황이다. 중국의 공격적 증설로 공급과잉은 지속되는데 수요 역시 부진하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경기 부진이 예상 보다 장기화하고 있는 데다 석유화학제품 수요와 밀접하게 관련된 부동산과 건설 경기 침체도 지속돼 수요도 살아나지 못하고 있다.
올해 전망도 어둡다. 나이스신용평가는 지난 10일 올해 회사채 발행에 나설 예정인 LG화학에 대해 장기신용등급을 기존 'AA+'로 유지하되 등급전망을 기존 'Stable'(안정적)에서 'Negative'(부정적)로 하향 조정했다. 부정적 전망은 향후 6개월에서 1년 이내에 신용등급을 강등할 가능성이 높다는 의미다.
나신평 측은 "다각화된 사업 포트폴리오에 기반을 두고 있지만 최근 석유화학 업황 부진이 장기화되며 전지부문 의존도가 높아지고 있다"며 "석유화학부문은 2023년 이후 적자기조가 유지되고 이익기여도가 매우 낮아졌다"고 평가했다.
이미 다수의 석유화학 업체들은 실적부진의 직격탄을 맞았다. 지난해에만 여천NCC(A 안정적→A- 부정적), SK피아이씨글로벌 (A 부정적→A- 안정적, 효성화학(A- 부정적→BBB+ 안정적), 롯데케미칼 (AA 안정적→AA 부정적), SK스페셜티 (A+ 안정적 →A+ 하향검토) 등의 신용등급이 하향 조정됐다.
정부 역시 이 같은 상황을 고려해 기초 범용제품에서 스페셜티 위주로 사업재편을 유도하기 위해 세제 혜택, 관세 인하 등 인센티브 정책을 포함한 경쟁력 강화 방안을 발표했다. 석유화학 산업을 대상으로 기업활력 제고를 위한 특별법 등을 활용해 인수합병 등 선제적 사업재편을 유도하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업 자율성에 초점을 맞추기보다는 과잉설비 감축과 고부가가치 전환을 위해서는 강력한 실행력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단순히 권고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목표와 실행 방안을 통해 기업들이 올바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의미다.
한 석화업계 관계자는 "석유화학 산업은 기업들이 대규모 자본 투자를 이미 한 산업이기 때문에 설비 감축이나 사업 전환은 기업 입장에서 부담이 크다"며 "강력한 정책적 유인이나 규제 없이는 기업들이 스스로 결정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박한나기자 park27@dt.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