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 시절, 서태지에 빠져 지내며 음악 PD(프로듀서)를 꿈꿨다. 20대에 PD의 꿈을 이뤄 이른바 '서태지 성덕(성공한 덕후)'이 됐고, 분초를 다투는 PD의 삶을 살다 20대 끝자락에 퇴사해, 문화예술 아이템으로 창업했다. PD 생활, 퇴사, 창업. 누가 쫓아오기라도 하듯 바쁘게 살았다. 결국 번아웃이 왔고 쉼에 대한 갈증이 증폭됐을 때, 강원도로 피신했다. 거기서 파도를 보며, 오롯이 나만의 시간을 갖는 새로운 라이프스타일을 만났다. 이렇게 찾은 회복의 경험을 전파하는 것을 업으로 삼겠다 결심했다. 파도를 보며, 하늘을 보며 회복하는 삶도 있다고 알리는 것, 이것이 그녀의 일이다.
강릉과 서울 성동구에서 사업장을 운영 중인 한귀리(사진/42세) 대표의 이야기다.
서울 성동구 도심 속에 들어선 프라이빗 욕실, '위크엔더스 바스'에서 만난 한 대표는 조금 느린 말투, 여유로운 표정으로 기자를 맞아주었다.
원래 꿈이 음악 PD였고, 그 꿈도 이룬 그녀는 지금 낯선 길을 개척해 나가고 있다. 한 대표는 지속가능한 삶을 찾아 헤매는 현대인들의 여정에 '역참'과도 같은 공간을 제공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올랐을 때, 쉬어갈 수 있는 공간과 콘텐츠를 제공하는 것이다.
한 대표는 "CJ ENM에서 PD, 브랜딩 일을 하다 퇴사 후 예술가, 소규모 창작자들과 이들의 콘텐츠가 필요한 사람들을 연결하는 스타트업을 창업하기도 했고, GS숍에서 직원 대상으로 문화행사를 기획하는 일을 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그는 "첫 회사는 경쟁이 심한 문화 속에서 분초를 다투는 생활을 했고, 두 번째 회사에선 임직원들에게 어떻게 하면 동기를 잘 부여할 수 있을까 고민하며 콘텐츠를 만들면서 바쁘게, 치열하게 살았다. 일을 좋아해서 저를 스스로 몰아가기도 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이어 "그러다 나 자신이 소진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고, 번아웃을 겪으면서 쉼에 대한 소중함과 갈증이 느껴졌다"고 덧붙였다.
한 대표의 삶을 바꿔놓은 것은 두 번째 퇴사 후, 주말 강원도에서 경험한 서핑이다.
그는 "서울에서 기업 미팅으로 꽉 채워진 삶을 살다가 바다에서 서핑하는 삶을 경험하면서,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라이프 스타일을 만났다"면서 "그 때, 바다에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던 것 같다. '은퇴 후 나이들면 한적한 곳에 살자'가 아니라, 바다가 너무 고픈 바로 지금 그곳에 가서 살자는 결심을 했다"고 말했다.
결국 한 대표는 바다로 갔다. 2019년 강릉에 숙박, 서핑, 요가가 가능한 서비스를 제공하는 '위크엔더스'를 창업했다. 오래 된 여인숙을 개조해 호스텔로 만들었고, 요가·서핑을 결합한 1박2일 프로그램 '리트릿(retreat) 오롯이, 나'를 운영하고 있다.
한 대표는 "바다에서 하는 서핑은 요가, 명상과 결이 비슷하다. 무엇보다 바다에서 파도를 기다리는 게 명상과 닮았다"라며 "일상에서 떨어져서 쉼에 초점을 맞춰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곳이려면 바다가 필요하다고 생각했고, 그래서 강릉에 자리를 잡았다"고 설명했다.
이어 그녀는 "번아웃이 온 사람들이 이런 경험을 누리면, 삶의 균형을 찾게 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덧붙였다.
일에 치여 살고, 어딘가로 훌쩍 떠나려니 준비해야 할 게 많아 망설여진다는 현대인들을 위한 장소와 프로그램을 제공하는 게 위크엔더스가 하는 일의 핵심이다. 몸만 훌쩍 떠나와 쉼의 시간을 가져보라는 것이다.
한 대표는 자신의 경력들이 이 일을 하는데 큰 자산이 된다고 말한다.
그녀는 "콘셉트를 잡아 기획하고, 이걸 누구한테 보여줄 것인지 정해 사람들을 모으고, 분위기를 만들어 하나의 경험을 디자인한다는 점에서 이 일은 PD의 일과 닮았다"고 언급했다.
이어 "GS숍에서 사내 직장인 대상으로 리프레시 프로그램을 기획했던 경험이 직장인의 애환을 보다 잘 이해하게 해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녀의 기획·실행은 멈추지 않는다. 최근 한 대표는 서울에도 사업장을 냈다.
'프라이빗 욕조'를 빌려주는 '위크엔더스 바쓰'를 서울 성동구에 열었다. 도심에서 동네 목욕탕이 점점 없어지고, 욕조가 없는 집이 많아지고 있는 점에 착안해, 오롯이 혼자만의 목욕 시간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사업화한 것이다.
한 대표는 "바다를 도심 한가운데 옮겨 놓으면 좋겠다 싶어, 큰 욕조 하나를 중심에 배치해 1인 목욕탕을 만들었다"고 말했다.
이어 "강릉 위크엔더스는 20~30대 초반 고객들이 와서 리트릿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함께 밥도 먹는 경험을 즐기고 있고, 서울 위크엔더스 바쓰는 20대 초반 고객도 많이 찾아오고 있다. 부모님을 모시고 오는 고객, 친구들과 함께 오는 중년 고객 등 고객 스펙트럼이 다양해졌다"고 전했다.
위크엔더스 바쓰는 몸만 오면 다 해결되는 콘셉트다. 목욕 가방은 필요없다. 각종 목용 용품이 한 대표가 직접 써보고 엄선한 것들로 구비돼 있다. 방수책까지 비치돼 있다. 오롯이 나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욕실에는 잔잔한 음악이 흘러나오게 했다.
좋아하는 '쉼'을 비즈니스로 삼은 한 대표는 피로를 해소할 타이밍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그는 "타이밍을 놓치면 피로는 겹겹이 쌓여, 나중엔 공수를 많이 들여야 회복할 수 있게 되더라"라며 "틈틈이 잘 쉬자는 게 저의 철칙"이라고 웃으며 얘기했다.
바다의 자유로움을 닮은 삶을 살고 싶어, 자신의 일터를 작은 '바다'로 만들고 있는 한 대표다. 그는 지금, 지친 표정의 현대인들에게 메시지를 띄우고 있다. 잠깐 시간을 떼어 내라고, 오롯이 나를 위한 '틈'을 만들라고, 스스로에게 회복의 기회를 주자고 말이다. 그녀가 선사할 '회복의 바다'가 계속해서 확장될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김수연기자 newsnews@dt.co.kr
![[오늘의 DT인]TV 찢고 바다로 간 PD, `회복` 전도사로 제2의 삶…한귀리 위크엔더스 대표](//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1302109932102003[1].jpg "[오늘의 DT인]TV 찢고 바다로 간 PD, `회복` 전도사로 제2의 삶…한귀리 위크엔더스 대표")
![[오늘의 DT인]TV 찢고 바다로 간 PD, `회복` 전도사로 제2의 삶…한귀리 위크엔더스 대표](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1302109932102003[1].jpg "[오늘의 DT인]TV 찢고 바다로 간 PD, `회복` 전도사로 제2의 삶…한귀리 위크엔더스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