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주주 제안 감소세
상장사 안건 가결비율 5%p 상승
DI동일 등 선제적 대응 증가 영향
상장사 안건 가결비율 5%p 상승
DI동일 등 선제적 대응 증가 영향
상장사들이 다음달 개막하는 정기 주주총회 준비에 돌입했다. 하지만 행동주의 펀드들의 캠페인으로 떠들썩했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조용한 분위기가 감지된다.
지난해부터 기업들이 행동주의펀드에 선제적 대응에 나서며 주주안건을 적극 수용하는 상장사들이 등장했고, 주주제안 안건 가결률이 올라가는 등 "국내 자본시장이 조금씩 선진화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13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 펀드들이 정기 주총을 활발하게 캠페인을 진행하던 과거와 달리 올해는 도리어 캠페인 수가 줄은 것으로 나타났다. 더불어 주주안건을 수용하는 상장사들이 나타나고 있다.
행동주의펀드의 활동 대상 기업은 2020년 10곳에서 2023년 77건으로 급증한 바 있다. 실제 주주제안까지 이어진 곳도 31곳에서 47곳으로 늘었고, 안건 수는 110건에서 165건으로 증가했다.
다만 이 같은 증가세는 지난해 멈췄다. 지난해 행동주의펀드 등이 주주제안을 한 기업은 41곳, 안건 수는 154건으로 집계됐다. 주주제안 안건이 가결된 비율도 1년새 16.4%에서 21.4%로 증가했다.
업계에선 국내 상장사들이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 운동을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졌다고 입을 모았다. 이전엔 행동주의펀드를 '기업 사냥꾼'으로만 대하고 주주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면, 이제는 회사의 비전을 위해 함께 논의할 수 있는 협력자로 바라본다는 것이다.
행동주의펀드 관계자는 "과거엔 회사에 미팅을 제안하면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는데 이제는 첫 미팅 자리에 최고경영자(CEO)가 나오는 경우도 있다"며 "이전엔 대화가 되지 않아 주주총회에만 집중했는데, 이제는 대화가 가능하니 평소에 목소리를 내는 분위기로 바뀌었다"고 덧붙였다.
업계에선 활발해진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의 움직임이 상장사를 변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행동주의펀드와 소액주주의 입김이 거세지자 상장사들도 이들의 의견을 적극 수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기업들이 주주제안이 나오기 전 선제적으로 대응하고 있는 것도 긍정적인 요인으로 꼽힌다. 최근 국내 상장사의 사례를 살펴보면, DI동일과 고려아연, 호전실업, 아시아제지 등이 대표적이다.
앞서 DI동일의 소액주주들은 자금 대여 과정에 석연치 않은 부분이 있다며 김창호 DI동일 감사위원의 교체를 위한 임시 주총 소집을 청구한 바 있다. 임시 주총에서 김 감사의 해임안은 부결됐지만, 지분 4%를 보유한 국민연금도 감사 해임안에 찬성하며 소액주주의 편을 들었다. 이에 DI동일은 고수하던 입장을 바꾸고 감사위원의 겸직 문제를 올해 1분기 안에 해소하겠다고 나섰다. 이와 함께 감사위원회 설치, 주주환원책도 제시했다.
MBK파트너스, 영풍 연합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고려아연도 유상증자로 소액주주들에게 비난을 받았으나 현재는 소액주주에게 지지를 받고 있다.
고려아연은 오는 23일 예정된 임시 주총 안건으로 집중투표제 도입과 소수주주 보호 관련 정관 명문화, 분기배당 도입 주주친화정책, 사외이사의 이사회 의장 선임 및 이사 수 상한 설정 등 이사회 독립성 강화, 효율성 증대 방안 등을 상정했다.
이밖에 얼라인파트너스자산운용이 두산밥캣에 요구한 기업가치 제고 방안, 팰리서캐피탈의 SK스퀘어 이사회 구성원 추가 요구 등도 올해 주총에서 주목받을 것으로 보인다.
소액주주플랫폼 액트를 운영하고 있는 이상목 대표는 "고려아연 경영권 분쟁이 아니었으면 집중투표제가 나올 수도 없었을 것"이라며 "회사와 주주가 화합을 하는 케이스가 많아지면서 이제는 정말 밸류업할 때가 됐다는 걸 느낀다. 국내 자본시장이 조금씩 선진화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영·김남석 기자 jy1008@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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