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이오도 `AI격변`...`AI데믹` 안 몰리려면

입력: 2025-01-16 15:26 강민성 기자

폰트

기자 구독

지난 13일 개막한 세계 최대 제약·바이오 투자행사 '2025 JP모건헬스케어 콘퍼런스'에선 AI(인공지능) 기반 신약개발 플랫폼, AI 헬스케어, 의료 로봇이 화두였다. 일주일 전 열린 IT전시회 'CES 2025'의 연장 행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만큼 AI는 바이오헬스케어 산업 전반의 패러다임을 바꾸는 이슈로 부상했다.

특히 CES의 스타였던 AI칩 강자 엔비디아가 행사 첫날 무대에 올라 AI 이슈를 주도했다. 행사 첫날 아침 진행된 엔비디아 발표장에는 시작부터 청중들이 몰려 북새통을 이뤘다. AI 파워가 바이오 파워로 이어진 것이다.

킴벌리 파월 엔비디아 헬스케어부문 부사장은 자사 AI신약 플랫폼을 앞세워 신약개발 방식을 바꾸겠다고 선언했다. AI와 디지털트윈 기술을 의료·헬스케어 분야에서 적용해 임상시험의 생산성과 효율성을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다. 디지털 트윈은 현실 세계의 사물을 가상세계에 똑같이 구현한 후 시뮬레이션을 통해 현실에서 발생 가능한 문제점을 예측하고 해결하는 것을 말한다. 파월 부사장은 "범용 컴퓨팅 플랫폼을 통해 모든 병원과 병실이 가상 세계인 '물리AI'로 통합될 것"이라며 "LA 화재와 같은 재난 시에도 가상 세계가 접목돼 의료서비스의 공백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는 "전 세계 수십만 개의 수술실, 수백만 개의 병실, 수십억 개의 의료기기가 로봇화될 것"이라면서 "AI, 가속 컴퓨팅, 생물학적 데이터의 결합이 의료 산업을 바꿀 것"이라고 전망했다.

엔비디아는 생명공학 기업 일루미나, 임상연구 회사 아이큐비아, 1000만명의 환자 데이터를 보유한 메이요 클리닉과의 협업 사실도 발표했다. 막강한 기업들과 임상연구, 유전체 분석, 디지털 병리학 등 다방면에 걸쳐 전략적 제휴를 맺으며 의료 산업에 대한 영향력을 키울 것으로 보인다. 청중들은 엔비디아의 AI 기반 신약개발 속도전에 집중하며 앞으로의 전망을 눈에 담으려고 애썼다. 이들은 발표 내용을 놓치지 않기 위해 발표 화면을 사진으로 찍거나 아이패드에 내용을 그대로 받아적었다.

AI와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바이오헬스케어 혁신은 엔비디아만 공들이는 영역이 아니다. 구글, 오픈AI,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애플 등 빅테크와 AI 공룡들이 너나 할 것 없이 AI를 통한 바이오헬스케어 혁신 물결에 올라타 투자를 집중하고 있다. AI를 활용해 단백질 구조 예측 문제를 해결한 공로로 2024년 노벨 화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구글은 세계 최대 제약기업이 될 수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엔비디아 부사장은 의료·헬스케어 분야 AI생태계가 자사 전체 산업 분야 중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고 말했다. 빅테크들은 AI 기반기술의 진화뿐 아니라 이를 통해 바이오·헬스케어 전반을 바꾸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들 기업에 비해 국내 기업들은 아직 제조 중심의 프레임에 머물러 있다. 신약개발을 통해 전통 글로벌 제약사들을 쫓아가는 것도 힘겨운 상황이다. 삼성바이오로직스와 셀트리온은 이번 행사에서 주로 생산공장 증설과 미국발 바이오 공급망 변화에 대한 대응전략 계획을 내놨다. 정형남 삼성바이오로직스 ADC 개발팀장은 현지에서 가진 간담회에서 "AI는 데이터가 많이 쌓여야 한다. 아직 시작해보진 않았지만 필요한 부분에 하나씩 AI를 접목해보려 한다"고 말했다.

SK바이오팜이 AI 뇌전증 관리 플랫폼으로 미국 시장에서 승부하겠다고 선언한 것은 의미가 있다. 이동훈 SK바이오팜 사장은 "개발중인 AI 뇌전증 관리 플랫폼 '제로(ZERO)' 웨어러블 기기로 기술을 고도화하고 AI 신약 연구 개발 플랫폼인 '허블(HUBLE) 플러스'를 활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신테카바이오는 바이오 빅데이터를 이용해 의약품 후보물질을 찾도록 돕는 'AI 언어모델 기반 플랫폼'을 개발해 이번 행사에서 35건 이상의 협업 미팅을 가진 것으로 알려졌다. 파로스아이바이오 등 AI 기반 신약개발 회사들도 행사에 참가해 글로벌 시장의 문을 두드렸다.

AI와 디지털헬스라는 큰 변화의 파도는 K-바이오·헬스 산업의 결정적 기회가 될 수 있다. 전체 AI 투자의 양에선 한국이 미국과 빅테크를 따라가기 힘들더라도 바이오·헬스 같은 특화 산업에서 경쟁력을 갈고닦으면 글로벌에 통하는 무기를 가질 수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진단키트부터 백신·마스크 제조실력으로 글로벌에 위용을 떨친 K-바이오가 AI 시대에도 비상하길 기대한다.

샌프란시스코(미국)=강민성기자 kms@dt.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