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현철 논설실장
![[강현철 칼럼] `사법의 정치화`가 부른 민주주의의 위기](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2002102269058001[1].jpg "[강현철 칼럼] `사법의 정치화`가 부른 민주주의의 위기")
근본적인 문제는 '사법의 정치화'를 우려하는 국민들이 많아졌다는 점이다. 이로 인해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는 추락했다. 문재인 정권 이후 수면위에 떠오른 사법의 정치화는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등장 이후 노골화됐다. 법원이 헌법과 법, 법관의 양심에 따라 투명하고 공정하게 사법절차를 진행하는 게 아니라, 편파적이고 판사 개인의 정치적 성향에 따라 판결을 내린다는 논란이 빈번해졌다. 법원이야 그렇지 않다고 강변하고 싶겠지만 상식선에서 봐도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판결이 적지 않았다.
당장 윤 대통령 재판과 이재명 대표 재판을 비교해보자. 법원은 윤 대통령 재판이 이제 시작인데도 두차례의 체포영장을 통해 강제 체포한 데 이어 증거인멸 우려가 있다며 구속했다.
반면 이 대표에 대해선 쌍방울 불법 대북 송금·백현동 개발특혜·위증교사 등 혐의에 대해 2023년 9월 청구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피의자의 방어권을 보장하고, 증거인멸 염려가 적다는 이유에서다. 이 대표에 대한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선고는 기소 후 2년2개월만에 이뤄졌다.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법상 1심 6개월, 2심 3개월, 3심 3개월 내에 판결이 나와야 하는데 법원이 법을 지키지 않았다.
사법부는 더구나 민주당이 이 대표에 유죄판결을 내린 법관에 대한 탄핵소추 협박도 서슴지 않았는데도 '꿀먹은 벙어리'였다. 이러니 '무권유죄, 유권무죄'라는 얘기가 나온다. 사법부는 "지연된 정의는 정의가 아니다"는 비판이 거센데도 이 대표의 재판 지연에 대해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다가 최근에야 선거법 항소심 재판부가 이 대표 사건을 집중 심리하기로 결정했다. 법원은 지난 17일 열린 '대장동·백현동·위례신도시 개발 비리 및 성남FC 사건' 재판에서도 이 대표가 오전만 출석하고 오후에는 불출석하는 것을 용인했다.
윤 대통령 수사도 '사법의 정치화' 논란에 기름을 부었다. 민주당의 '검수완박'(검찰수사권 완전박탈)에 따라 내란죄 수사는 경찰에만 있는데도 법원은 공수처의 '편법' 체포영장과 구속영장 신청을 허가했다. 공수처는 관할법원인 서울중앙지법이 아니라 서부지법에서 영장을 편법 발부받아 '판사 쇼핑'이라는 비아냥을 들었으며, 체포영장도 중앙지법이 아닌 서부지법에서 받았다.
또 체포영장 집행을 위한 한남동 대통령 관저 진입시 관저를 경호하는 수도방위사령부 55경비단의 허가를 받아야 했는데도 허가를 받지 않고 관인을 무단 사용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공수처의 수사가 정당하다는 의견도 적지 않지만, 논란을 자초해 스스로 권위를 무너뜨린 건 사법부다.
탄핵심판을 진행하는 헌법재판소도 '정치 재판' 의혹에서 자유롭지 않다. 탄핵소추 이유에서 '내란죄'를 빼라고 국회 탄핵소추단에 조언하고, 탄핵심판을 맡는 재판관의 남편이 국회 탄핵소추단의 일원인 변호사의 회사에서 일하는 '이해충돌'이 분명한데도 아무런 조치없이 재판을 구렁이 담넘듯 진행하고 있다.
영국 싱크탱크 레가툼이 발표한 '2023 번영 지수'에 따르면 우리나라 사법시스템에 대한 신뢰지수 순위는 세계 167국 중 155위로 사실상 꼴찌다. OECD 자료에 있어서도 법원과 사법시스템을 신뢰한다는 한국인은 49.1%로, 20개 조사대상국 가운데 15위에 그쳤다. 윤 대통령의 비상계엄을 비호할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재판은 상식선에서 국민이 납득하게끔 이뤄져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의 법원은 이와는 거리가 멀어보인다.
예전 군의 하나회와 같은 우리법연구회라는 사조직 출신 판사들이 사법의 정치화에 앞장 선다는 비판이 강하다. 확정된 판결에 대한 재심은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하는 데도 무더기 재심을 통해 과거 판결에 대한 자기부정도 이어진다. 4·3, 여순 사건 등에서 억울한 희생자에 대한 명예회복은 불가피하지만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건국의 역사, 정통성마저 부정당하고 있다. 남로당 같은 공산주의 세력에 맞서 싸웠던 순국선열의 고귀한 희생은 사라져 버렸다. 사법부에 의한 역사 지우기, 역사 고쳐쓰기다. 게다가 간첩 등 반국가 사범의 형량은 잡범보다 오히려 낮다.
사법부가 민주주의 마지막 보루라는 건 이제 빛바랜 사전에나 나오는 말이 됐다. 자기 혁신이 없다면 '짬짜미 재판', '제왕적 사법부'에 대한 비판은 '사법부 게이트'로 이어질지도 모른다. '사법의 정치화'가 부른 민주주의의 위기다.
강현철 논설실장 hckang@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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