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진이 the삶(더삶) 대표
![[기고] 美·中 `고래 싸움`에 낀 대한민국](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2002102369036001[1].jpg "[기고] 美·中 `고래 싸움`에 낀 대한민국")
이에 중국 정부는 "미국이 수출 통제를 남용하고 있다"며 그것이 '경제적 강압'에 해당한다고 비판했다. 그리고 곧바로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의 미국 수출을 금지했다. 갈륨, 게르마늄, 안티몬은 모두 반도체 제조 과정에 필요한 물질이다. 태양광 패널, 적외선 탐지기, 군사용 레이더 같은 군용 제품에도 사용된다. 갈륨과 게르마늄이 없으면 미국의 그 유명한 F35 전투기 생산에 차질이 빚어질 수도 있다. 중국은 세계 갈륨 공급의 98%, 게르마늄 공급의 60%, 안티몬 공급의 48%를 점유한다.
그러나 당장 중국에서 갈륨과 게르마늄을 수입하지 못한다고 해서 미국이 휘청거리지는 않는다. 또 미국 상무부의 140개 기업 명단에 오른 중국 반도체 기업들도 장비를 미리 수입해놓았기 때문에 큰 타격은 없다고 밝혔다. 미국의 대중 HBM 수출 통제로 정작 곤란해진 것은 한국 기업들일 수도 있다.
세계 HBM 시장은 과점 상태로 SK하이닉스가 54%, 삼성전자가 41%, 마이크론이 5%를 점유하고 있다(2023년 기준). 미국의 '해외직접생산규칙'(FDPR)에 따르면 다른 나라에서 만든 제품이라도 미국산 기술이 사용된 경우 미국의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한다. 그리고 한국은 미국이 지정한 FDPR 면제국이 아니다.
또 미국 상무부의 수출통제 명단에는 중국 최대 D램 제조업체인 창신메모리(CXMT)는 포함되지 않았다. 창신메모리는 최근 공격적인 생산 확대로 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위협하고 있으며, HBM2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그런데 미국은 창신메모리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한국 업체들의 대중 수출을 막았다.
창신메모리가 명단에서 빠진 것은 일본 정부의 반대 때문이라는 설도 있고, 세계 반도체 시장에서 SK하이닉스와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미국의 의도가 반영되었다는 설도 있다. 미국이 대중 무역전쟁을 벌이면서 한국을 지렛대로 활용한다는 것만은 확실하다.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는 말도 있지만, 트럼프 1기의 중국과 트럼프 2기의 중국은 다르다. 뉴욕타임스(NYT)는 트럼프 2기 때 관세를 부과하더라도 중국이 받을 충격이 1기 때보다 덜할 것으로 예상했다. 2018년 미국과 제1차 무역전쟁을 치르고 나서 중국이 대미 무역 의존도를 상당 부분 낮췄기 때문이다.
글로벌 공급망에서 차지하는 중국의 비중도 8년 전과 다르다. 물론 트럼프의 보편관세가 실현되는 날에는 중국 경제가 큰 피해를 입겠지만, 그럴 경우 미국 경제에도 엄청난 부작용이 예상된다. 각종 소비재 가격 상승으로 미국 가계의 경제적 부담이 커지고 GDP 성장률이 낮아질 것이다. 요즘 미국인들은 내년에 관세 때문에 물가가 상승할 것을 우려해 식용유, 커피, 휴지 같은 생필품을 사재기하고 가전제품을 미리 교체하고 있다.
트럼프 당선 요인 중 하나가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미국인들의 생계비 위기(cost of living crisis)였다. 2기 트럼프 행정부에서 정책 실패로 인플레이션이 심각해지는 순간 트럼프의 권력 기반도 흔들리기 시작할 것이다. 그래서 트럼프가 중국 상품에 고율의 보편관세를 실제로 부과할 가능성은 높지 않다.
자세히 보면 미국과 중국은 '무역전쟁'을 벌이는 양상이긴 하지만 아직은 수위를 조절하고 있다. 그래서 중국보다 한국이 걱정이다. 트럼프 2기 행정부가 관세를 강화할 경우 한국의 대미 수출은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지난 몇 년간 대미 무역흑자에 크게 기여한 자동차 수출은 이미 빨간불이 켜졌다. 농식품 업계도 걱정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미국에서 없어서 못 판다는 불닭볶음면은 그동안 관세를 면제받았지만 앞으로는 10~20%의 관세가 붙을 수도 있다.
이런 우려 때문인지 트럼프가 관세 발언을 할 때마다 원-달러 환율이 치솟는다. IMF는 최근 내년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2%에서 2.0%로 하향 조정했다.
트럼프는 예측 불가능한 인물이고, 미국은 비록 예전 같지 않더라도 초강대국의 힘을 바탕으로 언제든지 방향을 전환할 수 있다. 바이든의 중국 반도체 제재도, 트럼프의 관세 인상안도 결국에는 중국과의 협상카드로 사용될 가능성이 있다.
반면 미국의 '동맹국'들에게는 카드가 많지 않고 정책 전환의 폭도 넓지 못하다. 외교든 통상이든 계속 미국에 의존하고 끌려 다니다 정신을 차려보면 국내의 산업 기반은 허물어져 있고 일자리는 없어질지도 모른다. 시민들의 에너지가 대외정책에도 신선한 바람을 불어넣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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