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동주의펀드 KT&G 1조원대 주주대표소송
현금 아닌 자사주 출연으로 '우호지분' 확보
"이사 충실대상 '회사' 한정…손해증명 한계"
사측 "일방적 허위주장…공익·복지 상생 취지"
현금 아닌 자사주 출연으로 '우호지분' 확보
"이사 충실대상 '회사' 한정…손해증명 한계"
사측 "일방적 허위주장…공익·복지 상생 취지"
회사 측은 비영리법인에 대한 자사주 출연이 사회공헌이나 복지 증진 등 '상생활동'의 일환이라고 설명하지만, 경영권 방어 수단으로 활용되거나 주주가치 훼손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20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행동주의펀드 플래쉬라이트캐피탈파트너스(FPC)는 KT&G 전직 이사들이 자사주를 무상이나 저가로 기부하는 결정으로 회사에 1조원대 손해를 끼쳤다며 주주대표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KT&G 21명의 임원이 2002년부터 17년간 1조원에 달하는 자사주를 산하 재단이나 사내복지근로기금 등 비영리법인에 기부한 행위가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고 주장하고 있다.
주주대표소송은 발행주식의 100분의 1 이상에 해당하는 주식을 보유한 주주가 회사를 대신해 이사의 책임을 추궁하기 위해 제기하는 소송이다. 주주대표소송 판결은 회사가 판결을 받은 것과 동일한 효력을 가지게 돼 승소하더라도 배상금은 회사에 돌아간다.
FCP는 KT&G의 자사주 기부가 2002년 민영화 당시부터 치말하게 계획됐다고 주장하고 있다. 17년간 이어진 자사주 출연으로 산하 재단 등이 최대주주인 기업은행(7.30%)보다 많은 12% 이상(2023년 말 기준)을 확보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KT&G 측은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다하고 근로자의 복지 증진 등 상생 동반성장을 위한 목적으로 공인법인 등에 자사주 일부를 출연했을 뿐, 이 같은 자사주 출연이 회사의 손해를 끼쳤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라고 반박했다.
절차적으로도 이사회 결의와 투명한 공시 등 법령상 요구되는 제반 절차를 모두 준수해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현금이 아닌 자사주 출연이 기업의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한 꼼수라는 지적이 나온다. 자사주를 회사가 보유할 때는 의결권이 없지만, 재단 등으로 넘어가면 의결권이 부활해 주주총회에서 표를 행사할 수 있다. 회사 돈으로 매입한 자사주로 최고경영진 등의 의사결정에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KT&G 측은 자사주를 출연할 경우 비영리법인이 배당을 활용해 사회공헌활동을 지속할 수 있어 현금이 아닌 자사주를 활용했다고 설명했지만, 일반주주의 입장에서는 의결권 부활과 함께 배당 대상 주식도 많아져 이득이 줄어든다.
지난해 HL그룹의 지주회사 HL홀딩스가 발행주식의 4.6%에 해당하는 자사주를 재단법인에 무상 출연하기로 결정하며 주주가치 훼손 문제가 제기되기도 했다. 당시 회사가 주주가치 제고를 목적으로 매입한 자사주의 대부분을 재단법인에 출연하며 지배주주의 경영권을 강화하고, 주주의 이득을 줄인다는 지적이 나왔다.
전문가들은 FCP가 주주가치 훼손이 아닌 회사의 손실을 사유로 소송을 제기한 것은 현행 상법의 한계 때문일 것으로 봤다. KT&G의 자사주 출연은 사실상 주주의 가치를 훼손한 것이지만, 현재 상법은 이사의 충실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하고 있어 명분이 부족했다는 것이다.
이상복 서강대 로스쿨 교수는 "법원은 간접손해가 아닌 직접손해만 살펴보는 경향이 있다"며 "이사회의 결정이 회사나 주주에 직접적인 손해를 끼쳤는지를 따져봐야 하는데, 주가 변동과 함께 사회공헌활동으로 인한 회사의 이미지 변화 등을 고려해야 하고, 17년간 이어진 자사주 증여나 매각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쳤는지도 파악하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를 고려하면 승소 가능성이 높아 보이지는 않지만, 주주 입장에서는 상법상 이사의 문제를 지적하기 위해서는 이 방법밖에 없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다만 이번 소송이 이사의 충실의무를 회사에서 주주까지 확대하는 개정 논의에 힘을 실어줄 수 있을 것으로 봤다. 상법이 개정되면 이사회의 결정이 주주에게 미친 영향까지 법적으로 따져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기업이 보유한 자사주를 처분할 때 산하 재단이나 비영리법인에 넘겨줘도 아무런 법적 문제가 없다"며 "일반 주주 입장에서는 회사의 돈으로 사들인 자사주를 넘기면 의결권과 배당권만 살아나 손해를 입게 되고, 사실상 회사나 지배주주만 이득을 보는 셈인데 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방법이 전혀 없는 상황"이라고 강조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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