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대국 대상 수출 통제안 제시
클라우드 접근 차단 가능성도
한국, 틈새 활용 전략 모색해야
클라우드 접근 차단 가능성도
한국, 틈새 활용 전략 모색해야
'예측 불가'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대표적인 면모 중 하나이자, 때때로 그가 상대방에게 우위를 점하고자 활용하는 특성이기도 하다. 다만 인공지능(AI) 분야에 있어선 트럼프 2기를 맞아 취할 노선이 비교적 분명한 편이다. AI 산업 진흥 및 규제 완화로 선두를 더욱 굳혀나가는 동시에, 위협적인 추격자인 중국에는 제재 등으로 격차를 더욱 벌리려 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 14일(이하 현지시간) 조 바이든 대통령은 퇴임에 앞서 AI 관련 데이터센터 및 에너지 인프라 건설을 가속하기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에너지부와 국방부에 대규모 데이터센터 건립을 위해 민간기업에 임대할 수 있는 연방정부 부지를 선정할 것을, 내무부에 새 데이터센터를 지원하기 위한 청정에너지 인프라 건립에 이용할 수 있는 토지를 파악할 것을 각각 지시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바이든 행정부가 2023년 10월 제정한 AI 규제 관련 행정명령을 취임하자마자 폐기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해당 행정명령은 연방정부의 AI시스템 구매·이용에 대한 관리·책임, 미국 기업들의 AI모델 결함 및 보안책 보고 의무 등 AI안전성을 위한 내용이다. 트럼프는 이에 대해 "혁신을 저해하고 급진 좌파 사상을 강요한다"고 평했다. 이뿐 아니라 바이든의 퇴임 전 행정명령까지 손볼지는 미지수다.
트럼프는 1기 때 '미국의 AI 리더십 유지' 목적으로 서명된 행정명령 등을 통해 AI 분야에선 비교적 자유방임의 입장을 취했다. 전문가들은 큰 틀에서 이런 규제 완화 기조가 2기에도 이어질 것으로 전망한다. 트럼프가 딥페이크 확산에 대해 "우려할 만한 일"이라 했지만, 그 역시 연설문 등을 다듬는 데 AI를 활용했다고 언급한 바 있다.
다만 1기 때 화웨이에 내린 철퇴로 대표되는 중국 때리기는 더 강해질 가능성이 점쳐진다. 최근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지난해 세계 3대 AI학회인 신경정보처리시스템학회(뉴립스), 국제머신러닝학회(ICML), 표준학습국제학회(ICLR)에 채택된 논문을 저자와 소속 연구기관 등으로 분석한 결과, 저자 수가 많은 상위 10개 기관은 미국 6곳, 중국 4곳으로 미중 AI 패권 경쟁이 그대로 반영됐다.
AI, AI반도체 등 첨단 분야 대중 제재는 이미 미국에서 초당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AI 기술은 경제뿐 아니라 안보 분야 글로벌 리더십과도 직결되는 사안으로 평가되기 때문이다. 바이든 행정부도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중국 수출 제한에 이어, 우회 도입을 막기 위해 특정국가 대상 그래픽처리장치(GPU) 수출 물량 상한까지 정하는 방안까지 추진했다. 여기에 선거운동 기간 중 AI가 "슈퍼파워"라며 중국과의 경쟁을 강조했던 트럼프가 돌아왔다.
최근 미국 싱크탱크 브루킹스는 중국이나 비우호 국가 등이 미국 빅테크의 클라우드 서비스를 통해 AI에 접근하는 것에 대해서도 새로운 트럼프 행정부가 조치에 나설 가능성을 제기했다. 나아가 지난 5월부터 검토해온 오픈모델의 대중 수출 제한 조치 또한 트럼프 2기에 현실화될 가능성이 있다. 중국 인민해방군 군사과학원(AMS) 등에 소속된 중국 연구원들이 메타의 오픈모델 '라마' 기반으로 군사용 챗봇을 만들었다는 소식이 지난해 11월 나오기도 했다.
미국 내 AI 규제를 유지·완화하는 방향으로 정립하면서 수출길도 어느 정도 열어주는 것을 전제로 주요 기업들도 이런 정책에 보조를 맞출 것으로 보인다. 챗GPT 개발사 오픈AI는 지난 13일 '경제 청사진'이란 제안서를 통해 중국과의 AI 경쟁에서 앞서기 위한 투자와 지원을 촉구했다. "칩, 데이터, 에너지는 AI 승리의 열쇠"라며 "미국이 경쟁우위를 확보할 수 있도록 모든 주에서 똑같이 적용될 수 있는 규칙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 행동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픈AI는 "글로벌 펀드에는 AI 프로젝트에 투자될 약 1750억달러(257조원)가 대기 중"이라며 "미국이 이를 끌어들이지 못한다면 중국이 지원하는 프로젝트로 흘러 들어가 중국의 글로벌 영향력을 강화할 것"이라 지적했다. 또한, AI모델에 대한 수출 통제안을 제시하며 기술 오용 가능성이 높은 적대국의 접근을 차단하는 한편 "동맹국과 파트너에게 첨단 AI모델을 제공해 중국이 아닌 미국 기술 기반 AI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미국의 집중견제에 대해 중국은 독자적인 AI생태계를 구축·확대해가는 식으로 이에 대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반도체 분야에선 대중 제제 실효성 논의가 불거진 적도 있을 정도로 소기의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중국 국무원의 차세대 AI발전계획 등을 통해 2030년에는 미국을 제치고 글로벌 AI 중심지로 자리잡겠다는 포부로, 중국정부 발표에 따르면 이미 AI 관련 기업만 4500여 곳이다. 이런 'AI 굴기'와 사이버전장 확대에 따라 미중 AI 갈등은 갈수록 첨예해지고, 이 가운데 트럼프 특유의 예측 불가능성도 심화할 것으로 예측된다.
우리나라는 이들 간 틈새를 잘 활용해야 한다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공급망 재편과 경제 블록화 등 흐름에 기민하고 적절하게 대응하면서도, 제3세계의 소버린AI 수요 등을 공략하며 AI 분야 역량과 영향력 확대를 꾀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핵무기에 이어 국제정세를 좌우할 요소로도 평가받는 AI인 만큼, 트럼프 2기 동안 취하는 행보가 더 먼 미래까지 결정지을 수 있다.
김상배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트럼프 2기 미국은 AI 분야 규제완화와 기술혁신을 바탕으로 중국과의 AI 패권경쟁에 대응해 경쟁력 제고에 주력하는 정책을 펼칠 것으로 보인다"며 "AI가 미래 국력의 요체로 강대국 패권경쟁의 대상으로 부상하는 상황에서 우리도 좀 더 종합적인 AI 국가책략(statecraft)을 모색해야 한다. 특히 미중 AI 패권경쟁이 가속화되면서 중견국으로서 한국에 닥칠 문제에 대한 선제적 고민과 대응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팽동현기자 dhp@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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