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병일 플루토미디어 대표
![[예병일 칼럼] 대통령이란 무엇인가](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2102102269058001[1].jpg "[예병일 칼럼] 대통령이란 무엇인가")
그 열흘 전인 지난 9일 미국 워싱턴DC 국립대성당.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장례식에 조 바이든 대통령을 비롯해 전직 대통령인 버락 오바마, 조지 W. 부시, 빌 클린턴, 도널드 트럼프(현 대통령)가 모였다. 5명의 대통령들이 한 자리에 참석한 것이다.
공화당인 부시가 오른쪽 옆자리에 앉으러 다가오자 민주당인 오바마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고, 부시는 오바마의 배를 툭 치며 친근하게 인사를 건넸다. 공화당인 트럼프도 민주당 오바마의 왼쪽 옆자리에 앉아 웃으며 대화를 나눴다. 트럼프는 민주당의 상징색인 파란 넥타이를 매 상대 당을 존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대통령'이라는 명칭이 훈훈하게 느껴진 장면이었다.
카터(39대)의 장례식에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이 6번째로 등장해 추도사를 낭독했다. 2006년 12월 향년 93세로 별세한 제럴드 포드 전 대통령(38대)이었다. 정확히는 포드의 셋째 아들인 스티븐 포드가 걸어 나와 부친이 사망하기 전에 미리 써 둔 제럴드의 추도사를 대독했다.
퇴임 후 '절친'이 된 포드와 카터는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기로 약속했다. 1913년생으로 1924년생인 카터보다 나이가 11살 많은 포드는 2006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카터는 포드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했다. 이제 카터가 세상을 떠났고, 포드가 추도사를 할 차례였다.
"잠시 운명적으로 지미와 나는 경쟁자였지만, 그 이후 오랜 멋진 세월 동안 우정은 우리를 결속시켰습니다...지미가 나보다 10년이나 더 젊으니, 대비책으로 지미에 대한 내 기억을 아들 스티브에게 맡깁니다."
사실 포드와 카터, 두 사람은 1976년 대통령 선거에서 서로를 비방하며 치열한 선거전을 벌인 라이벌이었다. 하지만 퇴임 후 둘은 그야말로 친구가 되었다. 계기는 1981년 안와르 사다트 이집트 대통령의 장례식에 참석하기 위해 대통령 전용기를 함께 타고 다녀온 것이었다.
"1981년 여름, 우리 둘은 다시 함께 있게 되었습니다. 솔직히 말해, 나는 카이로로 가는 그 긴 비행이 얼마나 어색할지 궁금했습니다. 정말 긴 비행이었지만, 돌아오는 여정은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대서양 상공 어딘가에서 지미와 나는 정치를 초월하는 우정을 맺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치열한 선거전 과정에서 서로에게 했던 모든 거친 말들을 잊기로 했습니다."
실제로 그들은 이후 깊은 우정을 쌓아 나갔다. 힘든 일에 대해 전화로 위로하는 친구, 아내들과 자녀들도 가까워지는 친구, 그리고 마침내 서로의 장례식에서 추도사를 하는 친구가 되었다. 두 전직 대통령은 25개 프로젝트의 공동 의장을 맡았고, 1983년 이스라엘을 비판하는 리더스 다이제스트 기사를 함께 썼으며, 1996년 캘리포니아에서 마약 합법화에 공동으로 반대했다.
포드는 추도사를 하겠다는 그 약속을 무덤에서 지키며 이렇게 마무리했다. "지미, 우리의 재회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밀린 할 이야기가 많지요. 감사합니다, 대통령님. 오랜 친구여, 안식처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Jimmy, I'm looking forward to our reunion. We have much to catch up on. Thank you, Mr. President. Welcome home, old friend.)
미국 정치도 요즘 양극화가 심각한 문제다. 하지만 전직 대통령들은 여전히 모이고 있고, 당을 떠나 친근하게 대화하는 모습을 보여주곤 한다. 가끔은 카터와 포드의 정파를 떠난 우정처럼, 분열된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여준다. 반면 한국의 정치는 오랜 세월 대부분의 대통령들이 구속되거나 검찰 수사를 받는 비극이 반복되고 있다. 최근에는 좌우, 보수진보 진영간 갈등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카터와 포드는 사다트 장례식 현장에서 맞닥트린 '죽음'을 통해 서로 가까워졌다. 1981년 이집트의 불안정한 정치 상황 때문에 그들은 방탄복을 입어야했는데, 눈앞에 어른거리는 죽음을 생각하며 자신들의 의견 차이가 얼마나 사소한 것인지 깨달았다.
한국의 정치인들도 '인간의 유한성'과 '대한민국의 미래'를 생각하며 겸손해질 수 있을까. 나는 언제 갑자기 죽을지 모르는 한 인간일 뿐이며, 내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알지는 못한다고 자각할 수 있을까. 그럴 수 있다면 지금의 전쟁 같은 정파적 대립은 사라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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