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임기 첫날부터 전기차 보조금 폐지, 멕시코 관세 부과 등 완성차 업계에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정책을 쏟아냈다. 이에 따라 현대자동차·기아 등 국내 주요 완성차 업체들은 이르면 내달부터 부과될 관세 등에 대응해 공급망을 재편해야 할 상황에 처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0일(현지시간) 바이든 전 행정부의 전기차 의무화 정책 폐지를 지시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하며 소비자의 진정한 차량 선택을 제한하는 규제 장벽을 없애야 한다고 지시했다.
그는 이 일환으로 "전기차를 다른 기술보다 우대하고 다른 종류의 자동차를 너무 비싸게 만들어 개인, 민간 기업, 정부 단체의 전기차 구매를 사실상 의무화하는 불공정한 보조금과 기타 잘못되고 정부가 강요하는 시장 왜곡의 폐지에 대한 검토"를 명시했다.
또 2030년까지 미국에서 판매되는 모든 신차의 50%를 전기차로 하겠다는 바이든 전 대통령의 행정명령도 폐기했다.
그간 외신과 업계 등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감세 등 공약 이행에 필요한 재원 확보를 위해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의 각종 보조금을 없앨 수 있다는 의견이 줄곧 제기됐다. 이 우려가 현실이 되며 완성차 업계의 타격이 불가피해 보인다.
특히 전기차 판매를 늘리고 있는 현대자동차·기아에 직접적인 피해가 예상된다. 현대차·기아는 지난해 미국에서 전기차, 하이브리드차 포함 친환경차를 34만6441대를 팔아 전년 대비 24.6% 증가하며 연간 최다 판매 기록을 세웠다. 올해도 현대차가 플래그십 대형 전기 스포츠실용차(SUV) '아이오닉 9'을 미국 시장에 출시하는 등 전기차 드라이브를 걸 계획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트럼프 행정부의 반(反) 전기차 정책은 현대차·기아에겐 불행이나 다름없다. 현대차·기아의 전기차 중 보조금 혜택을 받는 차량은 EV6·EV9 등 2종에 불과하지만, 전기차 보조금 폐지로 인해 전체 시장 규모가 줄어든다는 점은 부정적이기 때문이다. 업계에서는 전기차 보조금이 폐지될 시 선두업체인 테슬라를 제외하곤 판매량에 큰 타격을 입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또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캐나다와 멕시코에 25%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밝혔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백악관에서 기자들과의 문답을 통해 "멕시코와 캐나다에 25% 관세를 부과하는 것을 고려하고 있다"며 " 2월 1일부터 이뤄질 것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전부터 멕시코와 캐나다가 불법 이민자와 마약 유입 방지에 노력을 하고 있지 않다며 취임 첫날 25% 관세를 부과하겠다고 공언한 바 있다. 이날 당장 25% 관세 부과에 서명하지 않았으나, 무역 문제를 살펴보는 광범위한 지침을 발표할 것으로 로이터 통신 등 현지 언론은 예측했다.
관세 부과가 현실화될 시 멕시코에 생산기지를 둔 국내 자동차 업체들의 타격이 예상된다. 멕시코엔 기아, 현대모비스, 현대트랜시스 등 현대차그룹의 공장이 다수 위치해 있다.
기아는 몬테레이에서 연간 25만대를 생산 중이며, 이 중 15만대가량을 미국으로 수출하고 있다. 현대모비스 멕시코 법인은 기아 멕시코공장과 현대차 앨라배마공장, 기아 조지아공장 등에 모듈과 램프 등을 공급 중이다. 미국 공장에 납품되는 양은 매우 적은 것으로 알려졌다.
보편적 관세도 여전히 고려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자신의 보편적 관세 공약에 대해 "아직 준비가 되지 않았다"며 "우리는 그것을 조속히 부과할 것"이라고 밝혔다.
관세 장벽이 높아짐에 따라 현대차·기아 등 국내 완성차 업체들은 미국 현지 생산을 늘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현대차그룹은 미국 조지아주에 전기차 전용 공장인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를 건설했으며, 이곳을 활용해 현지 투자를 늘리고 고용인원을 창출할 계획이다.
이호근 대덕대 미래자동차학과 교수는 "트럼프 1기 행정부 때 관세를 5%에서 25%로 올린다고 했다가 현대차그룹이 공장 설립을 약속하면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예외 조항을 끌어다가 낮춰준 바 있다"며 "현대차가 트럼프 취임식 때 100만달러를 기부하는 등 친트럼프 전략을 펼치고 있는데, 추후 투자나 공장 설립을 약속해 관세 부과에서 회피할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김필수 대림대 미래자동차학부 교수는 "미국우선주의가 미국에 공장을 짓고, 미국 사람을 쓰라는 정책"이라며 "조지아주 전기차 공장을 활성화하고 투자를 늘리는 것은 반대로 국내 일자리가 빠져나가는 것이며 국내 산업 발전에 악영향이 있을 수 있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