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당국이 기업공개(IPO)에 나선 기업의 청약에 참여한 뒤 상장 당일 주식을 파는 기관 투자자 줄이기에 나섰다.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제도를 도입하고, 수요예측 참여자격을 강화하는 등 기관 투자자가 IPO 제도 개선의 주요 타깃이 됐다. 다만 일각에서는 기관 투자자의 시장 참여율이 줄고, 상장 당일 유동성 문제 등 부작용에 대한 우려도 나온다. 또 상장심사를 담당하는 금융당국이나 유관기관에 대한 제도 개선도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 한국거래소 등은 21일 'IPO·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를 개최하고 IPO 제도 개선 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금융당국과 유관기관 등은 기관투자자의 허수성 청약 해소를 위해 주금납입능력제도를 도입하고, 기술특례상장 주관사에 대한 풋백옵션 적용, 공모가 산정 관련 내부기준 마련 의무 강화 등 IPO 시장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을 꾸준히 추진해 왔다.
하지만 여전히 단기차익 목적의 IPO 참여가 지속되고, 공모가 산정에 왜곡이 발생되고 있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기관투자자가 공모주 배정을 위해 높은 공모가를 제시하고, 중장기 투자가 기대되는 기관투자자도 상당수가 상장일에 매도하는 등 시장 전반에 단기차익 목적 투자 분위기가 확산됐다는 것이다.
이에 당국은 IPO시장에 기업가치 기반 투자 분위기가 조성될 수 있도록 기관 투자자의 중장기 투자 확대를 유도하고, 합리적인 공모가 산정 기반을 마련하기로 했다.
이번 제도개선으로 기관투자자 배정물량의 40% 이상이 의무보유 확약 건에 우선배정된다. 올해 하반기 30%로 시작해 단계적으로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의무보유확약 건이 미달될 경우 주관회사에 공모주 취득의무를 부과해 30억원 내에서 공모주의 1%를 가져가도록 했다. IPO 우선배정제도도 도입된다. 의무보유확약에 대한 6개월 확약 가중치를 신설해 최대 7점의 가점을 부여하고, 정책펀드도 15일 이상 의무보유 확약을 해야만 현행 공모주 우대배정을 허용하기로 했다.
이 같은 확약을 위반한 기관 투자자에게는 IPO 참여를 제한하는 등 관련 제재도 강화하기로 했다.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는 자격도 강화한다. 현행 고유재산 수요예측 참여요건을 펀드나 일임 등 위탁재산에도 동일하게 적용한다. 등록한 지 2년이 넘은 곳은 수요예측 참여 전 3개월 일평균잔액이 50억원이 넘거나, 참여 전 3개월 일평균잔액이 300억원을 넘어야 수요예측에 참여할 수 있다.
재간접펀드나 외국 기관투자자 역시 참여 요건이 강화된다. 재간접 구조는 투자펀드의 주금납입능력에서 피투자펀드 출자 금액을 제외하고, 거래실적이 없거나 실체 파악이 되지 않은 외국 기관투자자는 공모주 배정에서 제외한다.
현재 홍콩과 싱가포르, 유럽 등에서 시행하고 있는 코너스톤 투자자 제도도 도입해 장기 투자가 예상되는 특정 투자자의 사전 배정을 허용할 방침이다.
합리적인 공모가 산정을 위해 주관사의 역할도 확대된다. 공모주 배정에 대한 내부기준에 의무보유 확약 우선배정 방법, 가중치 부여기준 등을 필수요소로 구체화하고 주관사가 사전에 취득하는 물량의 의무보유도 강화된다.
코스닥 IPO를 주관할 때 주관회사의 투자기간이 6개월 미만인 발행사 지분의 경우 괴리율에 따라 최대 6개월의 의무보유 기간이 부여된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제도 개선 방안이 기관과 주관사에 과도한 제약을 부과해 시장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투자업계 관계자는 "기관이 과도한 공모가 산정이나 단기 투자 분위기 조성에 일정부분 책임이 있는 것은 맞다"면서도 "시장논리가 아닌 과도한 규제를 이용한 가격 통제는 시장 위축을 불러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당연한 기관 투자자에게 무조건적인 '장기투자'나 '버팀목' 역할을 강제하는 것이 부당하다는 것이다. 주관사에 과도한 책임을 부여한 것이 또 다른 시장 왜곡을 불러올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의무보유확약 증가로 유통물량이 줄어들며 나타날 수 있는 상장일 가격변동 확대에 대한 대응책과 배정물량 확대 등 규제와 함께 기관 투자자에 대한 유인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날 패널토론에 참여한 유승창 KB증권 본부장은 "의무보유확약이 확대되면 주관사의 부담은 커지고, 공급 감소로 인해 모험자본 생태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며 "주관사의 수익이 나빠지면 유치에 어려움을 겪을 수 있고, 이는 IPO 퀄리티 저하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짚었다. 또 공모심사에 직접 참여하고 있는 금융당국의 역할 강화 내용이 빠진 것도 불합리하다는 지적도 있다.
금감원은 공모가 산정에 직접 개입하지 않고 있고, 상장 기업의 예상실적 등 상장심사 당시 살피는 내용도 근거가 충실히 기재되고 있다고 설명했지만, 파두 등 '뻥튀기 상장' 논란이 이어지고 있는 상황이다.
업계 다른 관계자는 "공모 과정에 당국이나 유관기관도 분명히 개입하고 있는데 기관 투자자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김남석기자 kns@dt.co.kr
정은보 한국거래소 이사장이 21일 IPO 및 상장폐지 제도개선 공동세미나에서 축사를 하고 있다. [한국거래소 제공]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