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우선 통상정책 각서' 공개
"외국의 차별적 과세 조사" 언급
OECD 국제 최저한세 철회선언
보복세금 위해 90년전 법규 소환
"외국의 차별적 과세 조사" 언급
OECD 국제 최저한세 철회선언
보복세금 위해 90년전 법규 소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사 첫머리에 "(미국은) 더 이상 이용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선언했다. 대선 과정과 당선인 시절 수십 차례에 걸쳐 관세 폭탄을 예고했던 터라 세계 각국은 덤덤했다.
그러나 취임 이틀째인 21일(현지시간) 진짜 폭탄이 터졌다. 미국인이나 미국 기업에 불리한 과세를 하는 모든 국가에 보복을 검토하라는 지시를 내각에 내린 것이다. '관세전쟁'이 아니라 더 포괄적인 '세금전쟁' 선전포고다.
이날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과 맺은 조약을 준수하지 않는 국가나 미국 기업에 불균형한 영향을 미치는 세금 조약을 시행 또는 그럴 가능성이 있는 국가가 있는지 조사하라"고 재무장관에게 지시했다. 그러면서 60일 이내에 미국이 그에 대응해 채택할 만한 '보호조치 또는 기타 조치 권고안'을 대통령에게 보고하라고 명령했다.
이는 백악관이 트럼프 대통령 취임 직후 20일 공개한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글로벌 조세 합의' 각서에 "OECD의 글로벌 조세 합의가 미국에서 강제력이나 효력이 없음을 명확히 함으로써 미국의 주권과 경제적 경쟁력을 되찾는다"는 조치에 따른 것이다. 같은 날 공개한 '미국 우선주의 통상정책' 각서에도 "재무장관은 상무장관, 미국무역대표부(USTR)와 협의해 미국 법전(USC) 제26권 제891조에 따라 외국이 미국 시민이나 기업에 차별적 또는 역외적 세금을 부과하는지 여부를 조사해야 한다"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의 이 조치는 OECD가 다국적 기업의 세금 회피를 방지하기 위해 채택한 '글로벌 최저한세' 합의에서 미국이 탈퇴하겠다는 선언이라고 보도했다. 이 합의의 대상에 구글, 애플, 메타, 마이크로소프트, 넷플릭스 등 미국의 빅테크들 뿐 아니라 미국 제조업체들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2023년 OECD가 도입한 제도로 다국적 기업이 본사 소재 국가에서 15% 미만의 세금을 내는 경우 다른 나라에서 15%에 미달하는 세율만큼 과세할 수 있게 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미국 제조업의 부활을 위해 제조업 법인세를 15% 이하로 조정하길 원한다. 이 경우 '글로벌 최저한세'가 걸림돌이 되기 때문에 아예 합의에서 빠지겠다는 것이다.
글로벌 최저한세는 미국 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방해가 된다. 미국 기업들은 첨단기술기업에 6.25%의 초저율 법인세를 부과하는 아일랜드에 많이 진출해 있다. 아일랜드에 진출한 미국기업에 대해 제3국이 글로벌 최저한세에 따라 추가 세금을 물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는 '미국 최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에겐 참을 수 없는 일이다. 그래서 90년 동안 켜켜이 먼지에 쌓여 있던 미국 법전 속 891조 조항을 불러냈다. 일명 '90년 된 모호한 조항'으로 불리는 이 법규는 미국 국민이나 기업을 차별적으로 대하는 국가의 국민이나 기업에 의회 승인 없이 징벌적 세금을 매길 수 있도록 대통령에게 권한을 부여하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은 앞서 취임 첫날 2월 1일부터 멕시코와 캐나다 수입품에 대해 25%의 추가 관세를 부과토록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중국에 대해서도 다음달 1일부터 모든 수입품에 우선 10%의 추가 관세를 부과할 것이 유력하다. 여기에 더해 유럽연합(EU)에 대해 추가 관세도 예고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21일 "중국만 미국을 악용하는 것이 아니다. EU도 아주 아주 나쁘다"고 말했다.
트럼프의 무차별적인 관세와 세금 공세에 대해 FT는 "미국이 글로벌 세금 규정에 폭넓게 도전할 의사가 있음을 EU 회원국과 영국 한국 일본 캐나다를 포함한 OECD 협정 서명국에 예고한 것"이라고 해석했다.
이규화기자 david@d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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