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권여당이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재판장인 문형배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에게 '재판에서 빠지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헌법재판관 임기 6년 중 약 석달을 남긴 문 권한대행에 대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 친분설'을 연일 내세우면서다. 일부 허위주장에 헌재가 "명백히 사실에 반(反)한다"고 공박하기도 했다.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22일 오전 10시 서울 종로구 헌재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여당 의원들과 함께 항의방문해 헌재 사무처장 면담을 시도했다. 그러나 헌재 측은 "합의된 바 없다"며 출입을 불허했다. 지난 19일 윤 대통령에 대해 내란수괴 등 혐의 구속영장을 발부한 서울서부지법을 새벽 중 윤 대통령 지지자 100여명이 습격한 데 이어, 오후 중 헌재 월담자 2명이 체포되는 등 헌재에서도 긴장이 고조된 바 있다.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한 권 원내대표는 대통령 탄핵심판을 우선 심리 중인 헌재를 비난했다. 친윤(친윤석열) 강성지지층을 고려한 행보로 보인다. 그는 "감사원장·법무장관 등의 탄핵심판을 대통령 심판보다 먼저 하거나 같이 해야하지만 헌재 재판 일정을 보면 대통령 탄핵심판만 성급하게 빨리 진행되고 있다"며 "비상계엄 선포의 원인으로 지목되고 있는 '남용된 탄핵소추권'에 대해 먼저 결론을 내려야한다"고 했다.
또 "이런(재판일정) 이면에는 문 대행의 편향된 가치관이 작용했다고 생각한다"며 "문 대행은 평소 정부·여당 비판을 많이 하고, 이 대표와의 친분을 굉장히 과시했다"고 문 대행의 신상을 공격했다. 이어 "2020년 이 대표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상가에 방문했고, 이를 자랑삼아 헌재 관계자들에게 얘기할 정도"라며 "이 대표와 친분이 있는 사람이 재판장으로서 재판을 진행하는 건 공정성을 기하기 어렵다"고 몰아세웠다.
이 대표를 "실질적 탄핵소추인"으로 규정한 권 원내대표는 "내 주장이 사실이라면 문 대행은 (윤 대통령)재판을 기피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자 헌재는 이날 오후 출입기자단에 "다수 기사에서 인용된 권 원내대표의 '2020년 이 대표 모친이 돌아가셨을 때 문 대행이 상가에 방문했다'는 취지의 발언은 명백히 사실에 반한다"며 "문 대행은 이 대표의 모친상에 문상을 한 적이 없으며 조의금을 낸 사실조차 없다"고 공지했다.
권 원내대표는 지난 21일 당 원내대책회의 발언에서부터 문 대행에 대해 '이재명 친분설'을 거론했고, 이날 헌재 측의 면담 거부에 "전례가 없었다"며 "헌재의 공정성과 신뢰성을 훼손하는 일"이라고 비난했다. 국민의힘 원내지도부·법사위원 등은 보름여 전인 지난 6일에도 국회 탄핵소추단 측의 형법상 내란죄 쟁점 철회를 재판부가 받아들이고 비상계엄 헌법 위반을 심리하는 움직임에 반발해 헌재를 항의방문한 바 있다.
그러나 2017년 박근혜 대통령 탄핵소추위원일 당시의 권 원내대표가 뇌물죄·강요죄 등 쟁점을 철회하고 헌법위반 행위 중심으로 탄핵소추의결서를 재작성한 선례가 불거져 논란이 됐다. 그는 이 대표와 '친분'으로 오르내린 일도 있다. 지난달 18일 당대표 권한대행으로서 여야 대표 회동할 당시 권 원내대표는 이 대표의 '중앙대 법학과 2년 선배(80학번)'이자 '고시원 옆방 선배'이고, 부인이 과거 이 대표에게 소개팅을 주선한 인연으로 주목받았다.
한기호기자 hkh89@dt.co.kr
지난 1월21일 오후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에서 열린 윤석열 대통령 탄핵심판 3차 변론에서 재판장인 문형배 헌재소장 권한대행이 발언하고 있다.<헌법재판소 제공·연합뉴스>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를 항의 방문한 국민의힘 권성동 원내대표가 22일 오전 헌재 측과 협의가 되지 않아 방문이 무산된 가운데 정문에서 입장을 밝히고 있다.<공동취재·연합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