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종훈 19세기발전소 대표·아키비스트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여성 선각자들이 개척한 희망의 길](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2302102269061002[1].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여성 선각자들이 개척한 희망의 길")
도전과 용기로 편견 넘어서다
1924년 11월 23일자 조선일보에 '첫 길에 앞장선 이들'이란 제목의 기사가 실려 있다. 극심한 차별을 받던 100년 전 조선의 여성 중에서 '첫 길'을 개척했던 여성 25분에 관한 기사가 매일 연재되기 시작한다. 그 험한 길을 개척했던 몇 분들에 대한 이야기를 찾아 시간여행을 떠나본다.
첫 번째는 동대문 부인병원 의사 안수경(安壽敬)이다. "7년 전에 아직 조선에서는 여자가 의원이 된다면 모두 다 코웃음을 하던 때 총독부 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 벌써 7년 동안이나 동대문 부인병원에서 산부인과를 맡아서 보는 것이다. 하루에도 30여 명씩이나 들어오는 환자, 난산(難産)이 되어 있는 부인들과 생식기에 병이 있어 잉태치 못하는 그 불행한 여자들에게 더 할 수 없는 은인이 되는 것이요, 특별히 그는 돈이 없어 고생하는 무료 환자들에게 가장 정답고 친절하게 위안을 주는 것이다...(하략)"
다음은 진성당의원 원장 정자영(鄭子英)이다. "경성부 수은동에 진성당(進誠堂)이라는 병원을 열고, 병들어 고생하는 어린 아이들과 여러 부녀들에게 벌써 1년 동안이나 몸을 바쳐 일하는 정자영 여사는 일찍이 동경여자의학전문학교를 졸업하고...(중략)...제 아무리 화타, 편작이 아닌 이상에야 백발백중(百發百中)으로 그렇게 죽어 가는 생명을 다 고칠 수는 없는 것인 즉, 아이의 병을 고치는 것은 의사도 되려니와 그 책임이 오히려 의사보다도 어머니에게 더 중한 것이라고 정(鄭) 의사는 말한다. 그리고 정자영 여사는 자기의 일생을 바쳐서 병든 부인들과 병든 아이들을 위하여 일하겠다고 한다."
다음은 여류 화가 박성환(朴聖煥)이다. "꽃 피는 창경원, 단풍 지는 창경원을 일요일마다 산보하시는 이는 반드시 물감통을 둘러 메고 삼각대를 엇메인 활발한 여자 하나를 볼 것이다. 그는 금년 봄에 동경여자고등사범학교 도화과를 졸업하고 현재 동덕여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박성환 양. 소학교에 다닐 때부터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가 그린 그림의 수효는 적어도 1년에 평균 50~60장 이상은 될 것이요...(중략)... 온 세상이 그 눈 앞에 그림 아님이 없고 접촉하는 모든 것이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않음이 없다 한다. 하여간 그는 행복스러운 사람이요 장차 무슨 큰 뭉텅이를 조선에 낳아줄 유일한 화가이다."
음악과 글에 뛰어난 정신여학교 학감 김필례(金弼禮) 여사도 소개됐다. "조선 문단에 깊이 감춰진 한 송이 장미화와 같은 김필례 여사. 그는 일찍이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동경 여자학원 중등과를 졸업하고 다시 전문부에 입학하여 영문과 일문과를 따로 따로 마친 것이다...(중략)...현재 정신학교에 학감으로 있고 또한 200여명 소녀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는 것이다. 그는 음악에 천재를 가진 그만큼 글 쓰는 천재도 가졌다. 여류 작가의 첫 화관(花冠)을 장식하였고 짧은 동기(冬期) 방학을 이용하여 각 지방에 순회 강연을 하였다 한다. 그는 열심 많은 여자요 조선 여자계를 인도하는 밝은 등불이라 할 수 있다."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여성 선각자들이 개척한 희망의 길](http://contents.dt.co.kr/images/202501/2025012302102269061002[2].jpg "[송종훈의 근대뉴스 오디세이] 여성 선각자들이 개척한 희망의 길")
이화학당 교사 김앨리스는 조선 음악계의 한 줄기 빛이라고 묘사됐다. "쓸쓸한 우리 조선 음악계에 한 줄기 빛이 되는 김앨리스(金愛理思)양. 그는 11년 전! 가장 처음으로 이화학당 대학부를 졸업하였고 5~6년 전에 나가사키(長崎) 활수여학교 음악부를 마치고 그 후 한 1년쯤 지나서 미국으로 건너 가서 3년 동안 음악을 연구하고 돌아온 후 현재 이화학당 대학부와 대학 예비과 학생들에게 피아노와 성악을 가르치는 것이다."
'바느질의 어머니'로 불리는 숙명여학교 교사 이진혁(李進赫) 여사 이야기도 흥미롭다. "18년 전에 숙명학교 기예과를 마치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18년 동안을 숙명여학교에서 1천여명의 작은 아씨들을 가르쳐서 아름다운 가정에 어진 어머니와 어진 아내, 더욱이 바느질 잘하는 부인들을 만들어 주었으니 과연 우리 조선의 유일한 바느질 어머니가 될 뿐 아니라...(하략)"
조선 여자 요리계에서 명성이 자자한 정신여학교 교사 방신영(方信榮)도 첫 길을 열은 여성으로 꼽혔다. "그는 14년 전에 정신여학교를 졸업하고 그 후에 광주(光州)와 군산(群山)과 김천(金泉) 세 지방 학교로 다니며 11년 동안을 여자 교육계에 몸을 바쳐 일하였으며, 3년 전에 자기의 모교인 정신여학교에 와서 학교 전체의 가사(家事)를 맡아서 가르치는 것이다. 음식과 의복, 빨래하는 법, 물들이는 법, 가사에 관한 일체를 수백 명 학생들에게 정답고 친절하게 가르쳐 주는 것이다. 그는 성질도 아름답고 재주도 훌륭하려니와 14년이라는 길고 긴 세월을 조선 여자 교육계에 몸을 바친 공로자이다."
다음은 조선 성악계에 가장 이름이 높다는 한기주(韓琦柱) 여사다. "그는 어려서부터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였고 차차 자라는 대로 더욱 음악을 사랑하게 되었다. 그는 13살 적부터 보통학교에서 자기 혼자 되나 못 되나 악보도 모르는 풍류를 눌러 보기 시작하였고, 그가 여자고등보통학교 사범과를 졸업할 때에는 벌써 그의 천재를 사람 앞에 발휘하게 되었다. 그는 6년 전에 동경으로 건너가서 우에노(上野)음악학교 사범과에 입학하여 성악과 피아노를 배우고 작년 봄에 그 학교를 마치고 조선에 돌아온 후 현재 여자고등보통학교 부속 보통학교에서 음악 전부를 맡아 가르치고, 자기 집에서 피아노를 열심히 연습하는 중이라 한다...(하략)"
의사로, 기숙사 사감으로, 바느질 교사로, 화가요 음악가로, 문학으로 또는 요리로 각 분야에서 세상의 첫 길을 열었고 그때 뿌린 그 씨앗들이 지금의 오늘을 만든 것이리라. 그들의 업적과 용기를 기억하면서 암울한 시대의 진정한 선구자였던 '첫 길에 앞장선 여성들'에게 다시 한번 거듭 머리 숙여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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